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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쓰는 화두-'한국불교'] ① 글을 시작하며 -정화 개혁 넘는 전망은?종단 넘어 한국불교로 향하면 보이는 새로운 것들

 

정화 독신비구승 주체되어
청정승단 형성 목표로 삼아
1980~90년대 종단 개혁운동
엘리트 승려 주도 근대 민주화
시대별로 주체와 목표 뚜렷해 

종단 내부 지속적 개선 노력 불구
새 시대 선도할 주체·목표 없어
한국불교 전체 문제로 눈 돌리면 
사부대중이라는 새로운 주체 뚜렷  

정화와 개혁은 종단 내부의 화두다. 이제 한국불교 전체로 눈을 돌려, 봉암사 결사에서 나왔던 ‘부처님 법대로 살자’가 한국불교 화두가 되어야한다. 사진은 1950~60년대 정화운동 모습. 불교신문 자료사진

대한불교조계종은 1950~60년대 정화(淨化), 1980~90년대 개혁(改革)을 통해 현재와 같은 체계를 만들었다. 정화를 통해 종단을 만들고 20년이 지나 개혁이 화두로 떠올랐다. 한 세대가 지나는 시점이었다. 개혁이 전면에 등장하고 24년 째를 맞았다. 정화와 개혁으로 조계종의 변신은 끝을 맺은 것일까? 

정화는 일제강점기 산물을 극복하려는 불교 내부 ‘투쟁’이다. 일제식민지 체제는 경제적으로는 봉건적 주지제를 온존하면서 문화적으로 일본화를 강제했다. 불교는 사찰령을 통해 총독부 교구본산 말사로 이어지는 하향식 통치를 했다. 교구본사를 비롯 주요 말사의 토지소유를 인정하되 일본 불교식 대처를 강제했다. 대처승들은 토지를 기반으로 부와 명예 권력을 취득했다. 이를 따르지 않은 비구승들은 대처승들이 관심두지 않는 깊은 산속 암자에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근현대 고승들의 수행터가 온통 암자인 까닭은 이 때문이다. 

해방 후 기득권 세력으로 정착한 대처승들은 변화를 거부했다. 하지만 간화선수행으로 단련된 수좌들의 세력과 영향력을 무시하기에 늦었다. 이들을 따르는 단월(檀越)도 많아졌다. 청정비구승은 구한말 혜성처럼 등장한 경허스님이 되살린 간화선으로 수행해 토지와 사찰은 없었지만 그들이 가는 길이 부처님의 정법(正法)임을 확신했기에 거침이 없었다. 이승만 정부가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있던 한민당 계열인 권력화 된 대처승을 축출하기 위해 정화를 이용한 측면이 있다해도 자생적으로 성장한 비구승이 없었다면 정화는 불가능했다. 이들은 독신비구승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재가신도와 사회의 지지를 획득했다. 

정화-개혁으로 임무 완수?

1980~90년대 개혁은 정화의 부정적 산물을 해결하려는 소장 승려들의 ‘투쟁’이었다. 정화 주체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자생적으로 성장했다. 정화는 뚜렷한 목적과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정치권력의 개입, 수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무리한 추진 등으로 인해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무자격 승려의 교단 내 침투, 신생 중앙집권체제와 전통적 수행 방식 간의 괴리, 사회의 현대화와 교단의 전통고수 등 상호 모순된 점이 곳곳에서 노출됐다. 현대교육을 받고 패기에 찼던 소장승려들은 전통 방식에 매몰돼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종단 기득권자들과 맞섰다. 정화의 긍정적 측면보다 부정적 면을 더 많이 목격한 젊은 승려들은 그들의 선배와 스승과 달리 현대적 교육과 문화 소양을 갖추었다. 선(禪) 보다 교학을 중시했고 산중 수행보다 현대식 교육을 갈망했다. 

이들의 불만은 1980년 10·27 법난을 계기로 폭발했다. 산에서 내려와 도심으로 향했고, 전통강원이 채우지 못한 교육열망을 중앙승가대학을 설립해 해결하고자 했다. 그들의 선배가 권력의 눈치를 본 반면 이들은 저항했다. 봉건적 교단 운영에서 벗어나 근대화된 법으로 운영하기를 원했다. 1994년 개혁으로 종단은 비로소 근대적 조직 체계를 갖추었고 고질병으로 지적받던 폭력적 양상을 보이던 분규도 사라졌다. 승려 교육과 계율도 체계적으로 정비됐다. 

1994년 개혁 이후 24년이 흘렀다. 그동안 종단 3대 지표인 승가교육, 포교, 역경은 괄목할 성장을 했다. 교육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정비됐다. 가장 취약하던 대사회 포교역량도 놀랄 정도로 커졌다. 수많은 불교서적과 영상이 쏟아지고 있다. 성공적인 개혁은 불교의 사회적 위상을 강화했다. 정부와도 대등한 위치에 섰다. 

개혁 성공 불구 여전히 문제 노출

하지만 신도 수가 줄어든다는 통계가 나오고, 종단 내 갈등은 잦아들지 않고, 간화선 수행체계는 끊임없이 도전을 받는다. 그렇다고 지향점이 뚜렷하지도 않다. 정화는 대처승 등 일본 잔재 청산, 개혁은 종단 근대화 민주화라는 방향이 분명했다. 주체도 있었다. 정화는 간화선을 수행하는 독신 비구승, 개혁은 현대 교육을 받고 민주적 소양을 갖춘 소장 엘리트 승려가 변화를 이끌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개별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지만 수 십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교류를 통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조직을 갖추었다. 그리하여 결국 새로운 종단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지금은 그와 같은 주체가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의 근원인지도 불분명하다. 변화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조직이 있어야하고 내세우는 목표가 분명해야하며 지속적이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갖춘 조직이나 일정한 흐름을 가진 주체가 승단에는 없다. 

정화를 주도했던 독신비구승은 전국의 암자나 토굴에서 수행했고 선학원을 중심으로 모였다. 독신비구승 중심의 승단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개혁주도세력들은 사회민주화 운동에 몸담았고 정토구현전국승가회, 대승불교승가회, 선우도량, 실천불교전국승가회라는 조직으로 모여 사회민주화, 종단민주화 합리적 종단운영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정화를 주도했던 20~30대, 개혁 주도층이었던 30~40대처럼, 지금의 30~40대는 일정한 목표를 갖고 조직을 갖추지 않았다. 숫자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40대 후반 이상의 비구승이 절반을 넘는다. 그러나 정화를 주도했던 독신비구승도 대처승에 비하면 10분의1에 불과했지만 변화를 이끌어냈다. 

1994년 종단 개혁 당시 모습. 불교신문 자료사진

과거와 달리 주체 불분명

조직이 운동을 이끄는 한 요소이기는 하나 과거에 비해 통신 교통이 발달한 상황에서 온라인 등으로 과거 조직운동을 대신할 수 있다. 그러나 온라인 상에서도 특정한 주장을 갖고 흐름을 형성하는 실체가 없다. 조직과 흐름이 존재하지 않다보니 목표 역시 하나로 특정되지 않는다. 

2012년 봄 이후 종단 집행부를 비판하는 하나의 흐름이 상존하지만 이들을 새로운 변화를 이끌 주체로 보기는 어렵다. 이들의 비판은 총무원장 퇴진에 국한돼 있다. 운동이라기 보다는 권력 투쟁적 성격이 강했다. 대안이 없거나 이미 집행부에서 실현 중에 있거나, 기존 제도권에서 수렴 가능한 내용들이었다. 새롭게 성장한 신진세력이 아닌 기존 집행부에 몸담았거나 그 주변에 있던 승·재가 중심이었다는 점에서도 운동 주체로 부족하다.

물론 새로운 운동이 필요한 시대가 지났다고 볼 수도 있다. 정화와 개혁을 통해 근본적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사회 변화에서도 볼 수있는 현상이다. 봉건제에서 근대화로 이전은 시민 혁명을 통해서만 가능하지만 그 이후에는 혁명이 아닌 지속적 개혁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과 같다. 종단 역시 정화를 통해 대처승단을 비구승단으로 바꾸고 개혁을 통해 제도의 근대화 민주화를 달성했기 때문에 근본적 변화 보다 보완과 수정이 필요하다. 주체도 제도권의 종회 총무원 등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새로운 세력의 형성을 필요로 하지 않다. 종단은 1994년 개혁 이후 종회와 집행부를 통해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수정을 가하고 있다. 

‘부처님 법대로’가 새 목표

그러나 눈을 바깥으로 돌리면 전혀 다른 답이 나온다. 종단을 넘어 한국불교 전체로 시선을 넓히면 종단 안에서는 보이지 않던 주체가 눈에 들어온다. 가야할 길도 분명해진다. 정화와 개혁은 종단 내부 문제이며 출가자가 주체다. 범위가 한국불교가 되면 주체는 사부대중으로 넓어진다. 목표도 종단 내부가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 정법(正法)구현이라는 본질적인 문제가 드러난다. 비구 대처, 소장 개혁세력과 기득권 세력의 구분은 종단의 변화에 필요하지 불교의 본질은 아니다. 종단이라는 울타리를 걷어내면 정법을 실천하는 자와 그렇지 못 한 자의 구분만 남는다. 비구승이냐 대처승이냐, 조계종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 대로 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문제만 남는다. 

정화와 개혁 역시 부처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려는 고민과 몸부림에서 나왔다. 그러나 정화 개혁은 피안으로 건너가는 ‘반야용선’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며 도달점이 아니다. 정화와 개혁의 뿌리인 봉암사 결사에서 나왔던, ‘부처님 법대로 살자’가 우리가 도달해야할, 걸어가야 할 진짜 목적지인 셈이다. 

교단 안에 머물던 변화의 주체와 방향을 한국불교 전체로 넓혀야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래서 이제 우리의 화두는 ‘한국불교’가 되어야 한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현재 전개되는 다양한 현상 속에 가려진 진실을 살펴보며 한국불교가 가야할 길을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불교신문3360호/2018년1월13일자] 

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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