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는 기도객이 며칠 동안 절에 머물렀다. 가는 날 아침, 차담을 나누다 차실에 있는 ‘원각도량하처 현금생사즉시(圓覺道場何處 現今生死卽是)’라 쓰여진 시계판에 관심이 모였다. 이 글은 해인사 팔만대장경각의 법보전에 있는 주련이다. 기념품으로 받은 시계에 숫자를 대신한 이 열두 글자로 시계판을 바꾼 것인데 아마 특이했나 보다. 부처님께서 평생 동안 설법하신 팔만대장경을 모셔둔 곳에, 오직 이 두 줄의 게송만이 걸려 있으니, 바로 부처님 가르침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원만한 깨달음 즉, 우리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바로 이 자리가 그곳이다’라고 답을 하고 있다. 

우리네 중생들은 늘 무엇인가를 충족시키기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 고비만 지나면 곧 행복한 날이 올 거야’라는 희망을 가지고, 다음에 올 행복을 기다리면서 지금 이 순간까지 살아왔다. 그러나 ‘나중 행복’이란 없다. ‘지금 행복’해야 나중에도 행복하다. 지나가는 사람도 이름을 불러야 돌아보듯이, 일상 가운데 가득하지만 스쳐 지나가는 행복도 ‘행복아~’하고 불러들여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비로소 나의 행복이 되는 것이다. 

작년 새해와 올해 새해가 다른가? 지난해를 돌아보면 늘 미련과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쉬운 그 마음은 지금의 마음일 뿐이다. 오직 행복하기 위해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온 지난해 삶의 연속이, 결국 지금 새해를 다시 맞은 내 모습인 것이다. 행복을 따로 구하지 말라. 불행하지 않으면 바로 그곳이 행복한 자리다. 마주 오는 바람은 역풍이지만, 돌아서면 순풍이다. 올해는 업그레이드용 한글판 시계를 하나 더 만들어야겠다. ‘행복세상어디 지금이곳여기’로 말이다. “스님, 지금 몇 시에요?” “네, 今시 幸분(지금 행복)입니다.” 

 

[불교신문3360호/2018년1월13일자] 

동은스님 삼척 천은사 주지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