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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에세이] 향일암에서 온 편지 

 

동백 아래서 나에게 쓴
편지를 또 읽어 본다 
편지 쓰던 시간이 생각나 
무안해진다

내 생각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일 
이 흥미진진한 일을 
자주, 오래 해 보련다

향일암이 보낸 편지를 받았다. 절 마당에서 내가 나에게 쓴 손편지다. 이 편지는 “소중한 삶과 아름다운 인연을 이어가는 방편이고, 너와 나를 찾아가는 수행일 수 있습니다. 나에게 혹은 인연 있는 소중한 분께 가슴에서 우러나는 손 글씨 편지를 보내 보세요”라는 빨간 우체통에 붙은 문구를 보고 가슴 두근거리며 쓴 것이다.

막상 편지지를 앞에 놓고 보니 나에게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먼 하늘만 바라보다 몇 자 적었다. 드문드문 꽃송이 올린 동백나무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나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말을 어떻게 걸어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을 동백꽃에 들켰다. 동백꽃과 눈이 마주쳤을 때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자신에게 할 말이 없다는 미안함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렇게 쓴 편지는 서울에서 여수 향일암까지 여정과 새해 소원을 비는 내용이 전부였다. 

향일암에서 온 편지를 받고 한 해가 지나간다. 한 해를 보내는 동안 나는 나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내면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밖으로만 향하던 나의 관심을 안으로 들여놓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은 무엇보다 머쓱한 일이다. 온전히 나의 내면에 살아 꿈틀대는 진실과 거짓을 다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나를 충분히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나는 퍼즐의 몇 조각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 몇 조각의 앎마저 부정하고 속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많았다.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보니 나도 모르게 선함으로 위장하고 있는 어둠의 무리가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설익은 상상을 해 본다. 사람 마음이 투명하여 타인에게 다 보인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혹 머지않은 미래에 뇌 스캔이 보편화하여 내 생각을 누구나 알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것 또한 무시무시한 해일 아닌가. 나의 오만, 욕심, 거짓덩어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소름 돋는 시간일 것이다.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면 순간순간 선과 악이 얼마나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지 모른다. ‘된다, 안 된다’를 놓고 벌이는 갈등은 상상을 초월한다. 

나에게 말 걸기는 꽃을 한 송이 피우는 일이다. 허공에서 허우적대는 나팔꽃 줄기 같은 마음을 기둥으로 옮겨, 해가 잘 들고 바람 잘 통하는 뜰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다. 이런 기회는 흔하게 오지 않는다.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현실에서 내면으로 들어서기란 쉽지 않으니 말이다. 내일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걱정하다 보면 내 몸이 가야 할 길을 만들기도 버겁다. 그러니 마음 가는 길까지 닦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힘이 든다고 나를 놓아버릴 수는 없는 일이기에 나의 중심에는 늘 내가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고 주문처럼 중얼거린다. 향일암 동백나무 아래서 나에게 쓴 편지를 또 읽어 본다. 편지를 쓰던 시간이 생각나 무안해진다. 그러나 지금은 나를 바라보는 내가 편안해졌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만 나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없지. 내 생각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일. 이 흥미진진한 일을 자주, 오래 해 보련다. 내 속의 깊은 물에 빠져보는 일 주저하지 않으리.

※ 필자는 제주 한림에서 출생, 경기대 예술대학원 독서지도학과를 졸업하고 2016년 <시조시학>으로 등단했다.

[불교신문3359호/2018년1월10일자] 

김양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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