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님' '승님' 시대에서 '비구니법사’ 탄생까지

“1인 다역 군승 끊임없는 탁마로 불성 키워야”

김봉식 1기 예비역 군법사

“육군보병학교에서 교육훈련을 받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50년이라는 격세지감을 느낀다. 지난 11월 49주년 군승의날 행사를 다녀왔는데 140여 명의 군승들을 보니 반세기만에 장족의 발전을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1968년 11월30일 1기 군승으로 임관해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김봉식 예비역 법사를 지난 9일 서울 자택에서 만났다. 팔순을 훌쩍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한 모습의 그는 50년 전의 일을 생생하게 풀어냈다.

대전 보문중고를 다닌 게 인연이 돼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출가했던 그는 운허스님 밑에서 <우리말 불교대사전> 편찬 작업을 거들었다. 그러다 “넓고 깊게 공부를 불교하라”는 스님 가르침에 따라 동국대에서 수학하다가 3학년 무렵 환계하고 결혼했다. 대학 졸업 후 불교종립학교인 동대부중 교법사로 재직하던 중 종단에서 군승을 선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했다. 영어와 불교교리시험, 면접을 거쳐 그와 함께 권오현, 이지행, 권기종, 장만수 법사가 선발됐다. 그는 서른셋으로 가장 연장자였다.

기독교와 천주교에만 있던 군종제도가 불교에도 마련됐다는 기쁜 마음과 베트남전쟁 파병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동참했지만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서로를 부를 호칭도 마땅치 않았다. 교육훈련 중에 간부후보생이나 조교들은 5명의 군승들에게 “스님” “대사님” “승님” 등 두서없이 불러댔다. 5명이 협의해 ‘법사’로 통일하고 서로를 김법사, 이법사로 부르자 다른 사람들도 따라 부르게 됐다.”

고된 훈련을 거쳐 임관한 그는 육군본부 군종감실로 파견됐다. 권기종 법사는 제1군사령부로 발령을 받고, 3명은 베트남으로 떠났다. 장만수 법사는 맹호부대, 권오현 법사는 백마부대, 이지행 법사는 십자성 부대로 갔다. “훈련 때 양쪽 발에 2kg 모래주머니를 하나씩 차고 구보하는 게 힘들었지만 임관 후도 어려웠다. 선임이 없으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군용 법요집이나 설법자료도 없고, 불자장병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법당도 없어서 황무지를 개척하는 심정으로 포교를 했다.”

육군본부에서 근무하던 그는 가장 먼저 추진한 일이 육군 중앙법당을 건립하는 일이었다. 총무원에서 불사금을 지원할테니 터만 확보하라는 얘기를 듣고 육군본부사령실 앞에 부지를 확보했다. 지금의 국방부 원광사 자리다. 정재계 내로라하는 인사들 부인으로 구성된 관음클럽이 크게 보시해 법당불사는 원만히 회향했다. 준공법회에는 당시 총무원장 청담스님과 박정희 대통령도 참석했다고 한다.

1968년 11월 군승으로 임관해
육군중앙법당 건립, 월남 근무
종단 군법사 지원 아끼지 말길

그리고 1년 뒤인 1969년 11월 베트남으로 갔다. 주월한국군사령부에 근무했는데, 군승활동을 날마다 보고하고, 사이공 시내에 한국인들이 법회를 봉행할 수 있는 절을 찾아 법회를 주관하는 게 주 업무였다. 테러의 위험 속에서도 안전하게 법회를 할 수 있게 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또 주월한국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불교고아원에 위문품도 전달했다. 야당계 불교인사를 만나 반한감정을 해소하기도 했다. 불교계 언론에서는 주월한국군에 대한 반감으로 한국군 비위사실을 침소봉대하는 일이 많았다. 그는 안광사 틱트리쾅 스님을 찾아가 한국군 입장을 전하며 이해를 구하는 업무를 이행했다.

18개월간 파견을 끝내고 돌아온 그는 육군사관학교 호국화랑사로 발령을 받았다. 매주 수요일 특별활동 시간이면 생도들이 법당에 가장 많이 왔다. 생활관을 벗어나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200여 명의 생도를 데리고 칠보사, 화계사, 조계사 등을 순례하며 불심을 심어줬다. 전역 후에는 다시 교법사로 돌아가 동대부중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는 “군승이 어려운건 1인 다역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계율이 청정한 스님, 국가관과 사생관이 투철한 군승, 장병들의 고충을 이해해주고 해결해줘야 한다. 부대 위문활동을 하고 군대교육기관에서 교육중이 장병들에게 위문품을 보내고 또 법당 불사도 해야 된다. 종단이나 군종교구 스님과 불자들이 군승에 대해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끊임없이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군승법사들의 끊임없는 탁마도 강조했다. “장병들에게 정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물론 심리적으로 불안하거나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손길을 내밀어 줄 수 있는 군승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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