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인터뷰]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 대원스님

‘나’ 바로 볼줄 알아야 지혜 증득
화두참선 수행에 승속 따로 없어

출재가 구분않는 정진 회상 이뤄
뜻 있는 납자들과 3년 정진 돌입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 대원스님은 보닞와의 송년인터뷰에서 "자기 자신을 바로 볼 줄 알아야 지혜를 증득할 수 있다"며 화두 참선이 첩경이라고 강조했다.

20명의 납자가 쇠퇴일로에 있는 간화선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다짐으로 3년의 불철주야 용맹정진을 이어가는 공주 학림사 오등선원. 북풍한설의 한 겨울에도 이어지고 있는 구도정진을 이끄는 이는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 대원스님(오등선원 조실)이다. 계룡산 자락에서 회상을 이룬 대원스님은 “잠 안자는 화두참구가 7일도 어려운데 3년을 이어가는 납자들이 있으니 참으로 대견하다”며 “한국불교의 미래가 여기에 있다”고 자신했다.

“닭의 해가 저물고 개의 해 무술년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개가 도적을 물리치듯이 새해를 맞는 불자들이 마음의 도적인 삼독심을 물리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세납 76세 노장의 목소리에 힘이 담겼다. 자상하기로 이름난 스님이지만 “어떻게 해야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형형한 눈빛으로 “공부해야 한다”고 답을 내놓는다.

대원스님은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스님은 “지혜를 증득하려면 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자기 자신의 마음자리를 잊지 말고 나라는 존재를 바로 볼 줄 알아야 한다”며 “그럴 때 중생심이 사라지고 대승보살심이 살아나 보시섭 애어섭 이행섭 동사섭의 사섭법으로 중생을 지혜로 이끌 수 있고, 일체가 화합이 이루어져 평화로운 세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해가 벌써 다 갔다고 한탄하기 보다는 새해에는 마음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길 바란다”고 거듭 당부했다.

용맹정진 대중과 함께 하는 대원스님의 일과는 하루 종일 정진대중에 맞춰져 있다. 소참법문과 법거량 외에도 대중의 정진에 작은 영향이라도 미칠 수 있는 일이라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챙겨야 한다. 3년 결사에 임하는 대중에 거는 기대가 남달라 직접 챙기는 일을 즐거움으로 여기고 있다.

세월이 묵었다고 어른 대접을 받을 수는 없다. 현묘한 도리가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밝게 빛나듯 정진에 정진을 거듭한 눈 푸른 납자의 안목은 반드시 드러나기 때문이다. 3년 결사 대중을 이끌 수 있는 선지식으로서 수십 년 납자를 제접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은산철벽도 꿰뚫으려는 구도열로 치열하지 않았다면 수마를 물리치며 정진하는 대중을 이끌어가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원스님은 은사 고암스님과의 법거량을 꺼냈다.

조계종 3, 4대 종정을 지낸 고암스님은 “장부로 태어나 불법 만난 것은 큰 복이니, 정법을 바로 공부하고 중생견해를 타파하여 깨달음을 얻는 것이 부처님 은혜를 갚는 것”이라며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중이 아니다”고 강조할 만큼 엄한 공부를 시킨 스승이다.

고암스님이 해인총림 방장으로 있던 1973년, 대원스님은 저녁 방선을 마치고 방장실로 나아갔다. 대원스님은 법거량 중 “잣나무 꼭대기 위에서 손을 놓고 한걸음 나아갔을 때 어느 것이 너의 본래면목이겠느냐”는 고암스님의 말씀에 크게 깨달은 바 있어 박장대소하고 웃었다. 고암스님은 “무엇을 알았길래 그리 웃느냐?”하고 물었다. 이에 대원스님이 “한 입으로는 다 말할 수 없습니다”하고 답하니, 고암스님은 “다시 말해보라”고 재촉했다. 이에 대원스님은 “설사 천언만구(千言萬句)를 다 이른다 해도 이 속에 있어서 상신실명(喪身失命) 합니다” 하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앉았다.

고암스님은 “눈 푸른 납자는 속일 수 없다”며 다시 마조도일 선사의 일원상 공안을 물었다. 대원스님이 막힘없이 답하자 오도송을 일르라 했다. “忽聞栢頭手放語(홀문백두수방어) 廓然鎖覺疑團處(확연쇄각의단처) 明月獨露淸風新(명월독로청풍신) 凜凜闊步毘盧頂(늠름활보비로정).” 대원스님의 오도송을 굳이 풀이하자면 이렇다. “홀연히 잣나무 꼭대기에서 손을 놓고 반걸음 나아가라는 말을 듣고 확연히 의심뭉치가 녹아 깨달았네. 명월은 홀로 드러나고 맑은 바람은 새로운데 늠름히 비로자나 이마 위를 활보함이로다.” 그길로 고암스님은 대원스님에게 인가하는 전법게와 함께 학산(學山)이란 당호를 내렸다.

대원스님은 오등선원의 선불장을 출가는 물론 재가불자들에게도 열어주었다. 재가불자에게 더욱 수행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해 온 스님의 사상이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생활 속의 수행을 여쭈자 경책도 마다하지 않았다. “불자들이 절에 가서 기도하면서 간절히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업 잘 되게 해달라. 건강하게 해달라. 시험에 합격하게 해달라. 마음을 비우는 공부를 해야 하는데, 전부 욕망을 채우려고만 합니다. 공부나 도와는 거리가 멀어요. 그것을 안다면 지금부터라도 진짜 공부를 해야 합니다.”

급소를 찌르는 듯 정문일침(頂門一鍼)이 이어졌다. “잘 살고 싶지요? 부귀도 누리고 싶고 권력과 명예도 얻고 싶겠지요. 사바세계에 사는 목적이 마치 그것인 양 살아갑니다. 누구나 누리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실력이 안되는데 서울대 보내달라고 하면 그 역시 부정을 저지르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대원스님은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진짜 공부는 마음공부에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내가 나를 모르고 산다면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해도 모든 것이 모래 위의 집이고 뜬구름 같은 것입니다. 나의 마음에 눈뜨고 산다면 실수할 일이 없고 시작도 멋지고 중간도 멋지고 끝도 멋지게 됩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이 돼야 중생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순수한 자성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머무는 바 없는 마음을 쓰는 사람이 되려면 오로지 화두참선해야 합니다.”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 대원스님.
  • 대원스님은

1942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16세 때인 1957년 상주 남장사에서 고암스님을 문하로 출가했다. 고봉, 성능, 호경, 혼해스님 등 당대의 강백들에게 교학을 이수했으며, 상원사, 망월사, 동화사, 김룡사, 범어사, 칠불암, 통도사 극락암 등 제방선원을 다니며 효봉, 동산, 고암, 경봉, 향곡, 전강, 성철, 구산, 월산스님 등 당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지식들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고암스님과 월산스님으로부터 신흥사와 불국사에 주석하며 납자들을 지도해달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스스로 정진하는 것을 본분으로 삼아 거절하고 전국을 운수했다.

1986년 계룡산 자락 옛 제석사 터에 학림사를 세우고 선불장 오등선원을 열어 회상을 펼치고 있다. 오등선원의 ‘오등’은 <전등록>, <광등록>, <속등록>, <연등회요>, <보등록> 등 다섯 개의 어록을 묶은 <오등회원(五燈會元)>에서 유래했다. 선가의 전심법요가 이 곳에 있음을 상징한 것이다. 30여 성상을 납자들의 화두정진을 위해 헌신해 왔으며, 안거 결제는 물론 산철 결제도 끊임없이 이어가며 1년 365일 죽비소리 그치지 않는 수행으로 선풍 진작에 진력해왔다. 학림사는 오등선원과 함께 재가불자들을 위한 시민선원을 열어 간화선 대중화와 승속을 막론하는 수행도량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과 학림사 오등선원 조실로 있으면서 납자들을 제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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