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받는 엄마 표정이 구겨졌다. 옆에서 나는 동생과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티브이에서 만화 주인공의 명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악당한테 로켓포를 맞고도 만화 주인공은 끄떡없었다. 현실에서라면 벌써 천 번은 죽었을 거다. 옆에서 동생이 깔깔 웃었다. 나는 엄마가 전화기를 내려놓자 물어보았다.
 “엄마, 누구 전화야?”
 엄마가 한숨을 쉬었다. 
 “현택아, 시골 할아버지가 많이 아프시데. 그런데 병원에 안 가신다고 고집을 부리는구나.”
 엄마가 작게 한숨을 쉬며 부엌으로 사라졌다.
 “형아, 저 주인공 말이야 천하무적이야. 안 죽어.”
 티브이 화면 속에서 주인공이 어떤 할아버지를 구하고서 웃고 있었다. 밥을 먹는 내내 엄마는 힘이 없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날 밤 자다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거실로 나왔다. 부엌에 작은 등이 켜져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나란히 앉아 얘기하고 있었다. 
 “한평생 엄마 속을 그렇게 썩이시더니. 그랬다고 아픈 것도 말씀하지 않으시고…….”
 엄마가 훌쩍거리며 말했다.
 “그래도 어쩌겠어. 장인어른 생각이 그러면 가시는 길옆에서 잘 보살펴 드려야지. 다행히 애들도 방학이니까 같이 내려가면 되겠네.”
 아빠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오줌보가 터질 것 같아 화장실로 갔다. 오줌을 누면서 시골 할아버지를 떠올려보았다.  시골에 가면 우리를 반갑게 반겨주시는 외할아버지. 하지만 항상 책을 읽으며 먼 산을 자주 보셨다. 할아버지는 나와 동생의 장난에 웃거나 미소를 지으시는 게 다였다. 
 다음날 짐을 싸서 엄마가 운전하는 차에 올라탔다. 엄마는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말이 없었다. 
 “엄마, 우리 시골 할아버지 집에 가는 거야?”
 동생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엄마가 입을 꾹 다문 채 운전을 했다.
 나는 오늘 학원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기분이 좋았다.
 “우리 지금 놀러 가는 거 아니야. 현택이는 내년에 중학교 가기 전 마지막 휴가라고 생각해.”
 엄마가 거울 너머 내 표정을 봤는지 한소리 했다.
 “할아버지 많이 아프셔. 어쩌면 이번 주를 못 넘기실지도 몰라.”
 동생이 엄마 말을 듣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뭘 못 넘기는데? 나처럼 줄넘기를 못 해?”
 나는 동생 머리에 가볍게 꿀밤을 날렸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엄마는 슬퍼 보였다. 나는 엄마 눈치를 보며 동생과 눈치껏 떠들었다. 
 시골집은 조용했다. 매미 소리와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 바람 소리만이 가득했다. 
 할아버지 집은 작은 마루를 사이에 두고 왼쪽에는 안방과 그 옆에 창고가 붙어 있다. 오른쪽에는 아주 작은 방과 그 뒤에 부엌과 화장실이 있다. 옛날 집을 고쳐서인지 책에서 보았던 초가집을 닮았다. 댓돌 위로 낡은 까만 고무신과 여자 신발이 올려져 있었다.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할머니 한 분이 할아버지 옆에 앉아 있었다. 
 “이제 오냐. 네 아버지가 전화하지 말랬는데 내가 했다. 귀찮게 하기 싫다며 유난을 떨어도 가는 길은 자식들이 지켜봐야지.”
 할머니는 조금 있다 나갔다. 할아버지는 하얀 이불을 가슴까지 올리고 눈을 감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눈을 떴다. 살며시 미소를 지었지만, 힘이 없는지 입술만 살짝 움직였다.
 엄마는 가만히 할아버지 옆에 앉아 이불 끝을 꼬집었다. 오히려 동생은 바싹 마른 할아버지 모습에 눈물을 글썽거렸다.
 “할아버지 많이 아파?”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엄마 옆에서 이불 끝에 달린 실밥을 뜯었다. 이불 밖으로 튀어나온 할아버지의 앙상한 팔이 마른 나뭇가지 같았다.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약해 보였다.
 동생은 잠시 눈물을 흘리더니 자신의 할 일을 다 한 듯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나도 슬그머니 동생을 따라 나갔다. 
 “서울 병원으로 가요.”
 엄마 목소리가 방 밖으로 튀어나왔다. 할아버지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마루에 앉아 마당 한쪽에 심어진 옥수수 자락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쳐다봤다. 매미 소리에 새가 지저귀었다. 집 뒤 작은 산에서 만난 바람이 뒷마루 창으로 몰려와 시원했다. 뒷마루 창이 액자 속 그림 같다. 엄마 목소리는 매미소리에 묻혀 더 들리지 않았다.
 나는 동생과 뒷마당으로 갔다. 쭈그리고 앉아 작은 샘물을 바가지로 퍼마셨다. 울타리를 타고 작은 포도송이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포도알은 작았지만 시큼하고 달콤했다. 동생이 재잘거릴 때마다 입속에서 보라 꽃이 피었다. 
 우리는 뒷산으로 연결된 오솔길로 올라갔다. 오솔길 옆으로 버섯들이 작은 통나무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솔길을 얼마나 올라갔을까. 먼저 올라간 동생이 길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무엇인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형아, 이것 봐. 새가 있어.”
 작은 새였다. 아직 솜털이 난 모습이 아기 새 같다. 어디선가 새 우는 소리가 요란했다.
 “형아, 아기 새가 엄마를 잃었나 봐. 우리가 찾아주자.”
 동생이 아기 새를 들어 올렸다.
 나는 가만히 아기 새의 깃털을 쓰다듬었다. 차갑다. 몸도 뻣뻣했다. 
 “이 새 죽었어.”
 내 말에 동생이 울상을 지으며 흙 위로 아기 새를 떨어트렸다.
 동생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이 얼굴을 찌푸리더니 뛰어갔다. 나는 아기 새를 묻어주고 싶었지만, 동생을 따라 뛰었다. 
 동생은 예전에 길에서 죽은 비둘기를 보더니 그 뒤로 죽었다는 말을 싫어했다. 한참을 뛰어 언덕 위 도라지꽃이 피어 있는 곳에 동생이 보였다. 동생은 꽃을 꺾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아직 피지 못한 도라지꽃 망울이 흔들렸다.
 나도 내려가는 길에 아기 새에게 꽃무덤을 만들어주기 위해 꽃다발을 만들었다. 
 동생과 나는 뒷산을 돌아다녔다. 한참 있다 배가 고파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에 아기 새를 찾았다. 어느새 아기 새 위로 개미 떼가 잔뜩 몰려있었다. 동생은 저만치서 나를 쳐다보며 빨리 가자고 손짓했다. 나도 모르게 눈을 찡그렸다. 
 도라지 꽃다발을 아기 새 위에 덮었다. 그러자 개미 모습도, 죽은 아기 새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집에 오자 엄마는 부엌에서 밥을 하고 있었다. 도마 위 칼질에 꼬마북 소리가 났다.
 할아버지는 가끔 엄마가 떠주는 물에 입술을 적셨다. 엄마가 바쁘면 내가 숟가락에 물을 떠서 한 방울씩 할아버지 입에 넣어주었다.
 할아버지는 점점 말라갔다. 뼈만 남은 얼굴에 깜깜한 밤처럼 깊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할아버지 많이 아파요?”
 문득 뭔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아 물었다. 할아버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다 그렇게 아프진 않구나. 참을 만하다.”
 엄마가 동네 할머니랑 하는 말을 들었다. 할아버지는 암이라고 했다. 이번 주나 다음 주면  돌아가신다고 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할아버지는 눈을 감고 잠을 잤다. 가끔 잠을 자면서 사람들 이름을 불렀다. 
 “어릴 적 노닐던 친구분들 이름을 부르는 것 같구나.”
 엄마가 말했다.
 할아버지의 어릴 적 모습이라니.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가끔 눈을 뜨고 한곳을 바라봤다. 눈동자가 마른 얼굴에서 툭 튀어나올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몸이 점점 말라갔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할아버지 모습이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익숙해졌다. 
 엄마는 지나가는 말로 할아버지한테 서울로 올라가자고 말했다.
 “여기서 일 치르기에는 저희 생각도 해주셔야지요.”
 엄마는 그 말을 할 때 벌서는 학생같이 고개를 숙이고 자신 없는 표정이었다. 할아버지는 엄마 말에 눈을 감았다. 
 동생과 나는 동네를 어슬렁거리거나 개울에서 수영하거나 뒷산을 올라가는 일이 전부였다. 
 할아버지는 깨어있는 시간보다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나는 가끔 밤에 잠을 자다 깼다. 모기장 너머 건너편 안방에서 엄마와 할아버지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멀리서 한밤을 알리는 개의 울부짖는 소리가 길게 나팔처럼 들렸다. 
 “너희 엄마를 꽃상여 태워 보내야 했었는데.”
 안방에서 할아버지 목소리가 힘없이 들렸다. 엄마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외삼촌 세 분이 번갈아 전화했다. 
 “이번 주말에는 내려오세요. 하실 말씀이 있데요. 엄마 고생시킨 것도 미안하고 우리 고생시킨 것도 미안하다고 말씀하세요.”
 엄마 눈가에 눈물이 반짝거렸다.  
 이제 할아버지는 물도 마시지 않았다. 산을 돌아다니다 내려왔을 때 엄마가 전화하고 있었다.
 “내일이나 내일 모레면 가실 것 같아요.”
 엄마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나는 할아버지가 누워계시는 안방 문을 가만히 열었다. 할아버지는 뒷산 까맣게 말라 푸석푸석 누워있는 나무 같았다. 
 그날 밤 한밤중에 오줌이 마려워 깼다. 얼른 마당 한쪽으로 뛰어가 오줌을 눴다. 열린 안방 문 사이로 할아버지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어머니, 어머니.”
 다음 날 서울에서 외삼촌 세 분과 외숙모들이 왔다. 큰 형들과 누나들은 오지 않았다. 나중에 온다고 했다. 엄마는 할아버지한테 막내딸이다. 시집도 늦게 가서 우리를 늦게 낳았다. 그래서 제일 큰 사촌 형은 벌써 장가를 갔다. 오늘내일 아기가 태어난다고 했다. 그러면 나는 삼촌이 된다. 아기가 나한테 삼촌이라고 부르면 왠지 간지러울 것 같다.
 어른들은 작은 안방에 꽉 들어찼다.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어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숨소리만이 작고 힘들게 들렸다. 이제 꿈도 꾸지 않는지 누군가의 이름도 부르지 않았다.
 어른들은 마루로 나와 다들 조용히 앉아 있었다. 매미는 딱 시끄럽지 않을 만큼 울었다. 매미 소리를 듣고 있자니 나는 졸음이 몰려왔다. 
 엄마가 옥수수를 쪄서 쟁반에 내왔다. 옥수수를 먹자 조금 졸음이 밀려갔다. 
 어른들도 마루에 앉아 옥수수를 하나씩 들고 먹었다.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것 같다. 열린 안방으로 할아버지가 보였다. 즐거운 음악을 감상하듯이 눈을 꼬옥 감고 입술이 살짝 올라가 있었다. 
  첫째 외삼촌은 마당 한곳에 놓인 고무호스의 물을 틀었다. 마른 마당에 물을 뿌리자 무지개가 떠올랐다. 동생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무지개가 떴다.”
 외삼촌이 웃으며 고무호스를 높이 쳐들었다. 구멍 끝을 손으로 막고 하늘로 물을 흩뿌렸다.  물줄기 사이사이 예쁜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갑자기 동생이 얼굴을 찌푸리며 하늘을 쳐다봤다. 동생은 돌처럼 꼼짝 않고 댓돌 위에 서있었다.
 “뭐 해?”
 내가 물었다.
 “하늘에 있던 무지개가 내려와서 하늘이 구멍 났나 보는 거야.”
 나는 어이가 없었다.
 “바보, 무지개는 어디에나 있어. 단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야. 보이면 무지개가 되는 거고. 무지개 색깔은 우리가 보이는 빛을 색으로 표현한 거란 말이야.”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책에서 본 내용을 얘기했다.
 동생이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물었다.
 “그럼 무지개에 검은색도 있어?”
 나도 모르겠다. 검정 무지개도 있을까?
 “물론, 안 보인다고 없는 건 아니야.”
 나는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다.
 “할아버지가 죽어도 있는 거야?
 동생이 옥수수가 잔뜩 낀 이를 드러내며 물었다.
 모두 조용해졌다. 어른들 눈동자가 흔들렸다.
 큰 외숙모가 동생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들이 많이 있단다. 지금 바람이 불잖니. 그런데 눈에는 보이지 않아. 하지만 우리는 느낄 수 있지.”
 “아 그럼 나중에 바람이 불면 할아버지가 옆에 왔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지?”
 동생은 가끔 엉뚱한 말을 너무 잘 한다. 동생은 고무호스를 들고 마당에 물을 뿌렸다. 마루에 앉아 어른들은 얘기했다. 
 옥수수를 먹고 나자 나는 또다시 졸렸다. 슬그머니 작은 방에 들어갔다. 팔베개를 베고 누웠다.
 얼마나 졸았을까. 잠이 깼다. 조금 전까지 꿈속에서 누군가의 뒤를 쫓아갔다. 
 무슨 꿈이었더라.
 까까머리에 키 작은 아이가 까만 고무신을 신고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계속 불렀던 것 같다. 아이는 쪽진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다른 손에는 작은 보따리를 들고 걸어갔다. 
 왜 불렀을까.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이는 불러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멀리 햇살 가득한 푸른 들판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었다. 아이는 은행나무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계속 불렀다. 아이는 작은 키였지만 나보다 걸음이 빨랐다. 쫓아가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햇살 속으로 아이가 사라졌다. 
 마루 저편 안방에서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아빠. 흑흑.”
 창문으로 뒷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지나갔다. 매미 소리도 지나갔다. 
 가만히 누워 까까머리 아이를 생각했다. 아무리 불러도 뒤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하지 않던 그 아이가 치사했다. 무언가 말을 해주고 싶었다. 나를 지나치는 바람 소리와 매미 소리에게 속삭였다.
 “그래, 잘 가.”
 소리들이 멀리멀리 그 아이한테 전해졌으면 좋겠다. 

이은정
방민호 서울대 교수
이은정 삽화=용정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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