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특별인터뷰/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

새해를 맞아 본지와 취임 후 첫 인터뷰를 가진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은 “불교를 불교답게 하는 근간은 수행”이라며 종도들의 수행정진과 올바른 불교관 확립을 당부했다.

"내가 가진 건 모든 생명들의 피땀 덕분"

 

= 총무원장에 취임하신지 어느덧 2개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성심을 다해 위로하고 희망의 법문을 설하는 모습에 많은 불자들이 감동하고 있습니다. 총무원장으로서의 소감과 근황을 들려주십시오.
 “날마다 바빴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서류를 결재하고, 업무파악을 최대한 빨리 해야 했기에 정신없이 지냈습니다. 총무원장이라는 직책을 수행하려면 몸이 세 개쯤은 있어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결코 만만한 자리가 아닙니다. 여하튼 저에게 주어진 소임은 불철주야 종단과 불교발전을 위해 사는 일입니다. 종단을 전체적으로 그리고 심도 있게 바라보며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구상 중에 있습니다. 최근엔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평창을 찾아 선수단을 격려했는데, 그 길에 오대산 상원사를 참배했습니다. 상원사 선방에서 1년간 정진한 적이 있는데 그때 아침마다 적멸보궁에 올라 차를 공양했지요. 이번에 다시 올라가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 포항지진 현장을 찾아 이재민을 위로하고 이튿날은 목포로 달려가 세월호 유가족을 보듬은 일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쓸쓸히 삶을 마감한 무연고자들을 위한 천도재도 감동이었습니다. 우리 나이로 일흔여섯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이고 진심어린 보살행은 불자들에게 환희심과 긍지를 자아냅니다. 
 “아픈 사람들이 도움을 원하는데 내가 뭘 잘났다고 안 갈 수 있겠습니까. 부족한 나지만 그분들에게 위안이 되고 보탬이 된다면 나의 안위와 사정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시간이 없더라도 무조건 다니려 합니다.”

= 건강이 염려되기도 합니다. 
 “건강합니다. 어쩌면 건강에 대해 무심한 것이 건강의 비결이겠습니다. ‘이렇게 대충 먹어도 되나’, ‘너무 잠을 적게 자는 것 아닌가’하는 이런저런 걱정들이 스트레스가 되어 건강을 해치는 것이라 봅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마음 가는대로 사는 편입니다. 인생이란 게 원래 인연 따라 사는 겁니다.”

‘수행 안 하면 불자 아니다’ 
불교를 건강하게 하는 근본
출가하는 순간 스님은 ‘공인’
단 한 푼이라도 중생에 써야

= ‘수행가풍과 승풍 진작’을 종단운영의 첫 번째 기조로 천명하셨습니다. 취임법회 직후 우정국로 ‘노천법문’에서도 “수행하지 않으면 불자가 아니다”라며 “언제든 수행하고 어디서든 수행하라(無時禪無處禪, 무시선무처선)”고 일갈하셨습니다. 불자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근본은 곧 수행이라는 가르침인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또한 구체적인 수행의 방법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사부대중, 그러니까 부처님 제자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수행입니다. 이름이 스님이건 신도이건, 수행하지 않으면 불제자가 아닙니다. 수행은 부처님이 가르친 가치를 이 땅에 실현하는 근본입니다. 수행을 통해 얻는 정진력이 바탕이 되어야만 참다운 불사와 참다운 포교가 가능합니다. 아무리 겉모습이 스님이더라도 수행하지 않고 사무를 하면 속인들이 겪는 이해갈등에 똑같이 빠집니다. 행정을 하든 봉사를 하든 복지를 하든, 불자로서의 수행력을 기반으로 두고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종도들이 수행을 게을리 하거나 소홀히 하는 순간, 불교는 불교답지 않게 됩니다. 종교다운 색채를 잃어버립니다. 밥을 먹을 때든 돈을 벌 때든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어느 때든 어느 곳에서든 불자로서의 심성을 가꾸고 세상을 향해 밝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총무원장 이전에 종단의 어른으로서 일관되게 강조해 오신 덕목이 바로 ‘신심(信心) 원력(願力) 공심(公心)’입니다. 사부대중이 이 세 가지만 잘 지키면 한국불교의 중흥은 당장에 실현된다는 지론이십니다. 신심 원력 공심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서로 간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신심’ ‘원력’ ‘공심’은 솥을 받치는 세 개의 발과 같습니다. 불교를 불교답게 하는 근간입니다. 신심은 수행자로서의 신앙심이고, 원력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를 가늠하는 수행자의 목적의식이며, 공심은 대중과 사찰, 종단을 섬기는 마음입니다.
 먼저 신심은 내가 부처임을 확실히 믿고 그 믿음에 따라 정진하는 마음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유위법(有爲法)의 구속되고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 무위법(無爲法)의 대자유로 나아가라는 겁니다. 유위법은 ‘나다 너다 크다 작다’ 나누고 가르는 분별의 마음입니다. 유위법에 갇힌 중생은 자기 생각대로만 이해타산의 잣대로만 세상을 바라봅니다. 자기에게 이로우면 선이라 받들거나 탐닉하고 이익이 되지 않거나 손해를 끼치면 악이라고 매도합니다. 그러나 내가 부처님이라고 진정으로 믿는다면, 차별하거나 갈등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부처이면, 세속적인 오욕에 집착하거나 얽매이면 안 됩니다. 그래서 신심은 무에서 유를 창조합니다. 무한한 가치를 창조합니다. 위대한 마음의 보물창고를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이 철저해야만 진리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신심을 밖으로 드러내 밝히지 않는다면 세상은 조금도 밝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엔진과 기름이 없는 자동차가 무용지물이듯이, 동력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수행자에게 동력이란 바로 원력입니다. 원력이 없는 수행은 힘이 없습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는 승려로서의 목적의식이 뚜렷해야 합니다.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활발발하고 당당하게, 거리낌 없이 전진할 수 있습니다.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겠다는 출가의 초발심이 언제나 활화산처럼 솟아난다면, 스님이 스님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심이란 공적인 것을 최우선에 두는 마음입니다. 나를 내가 아니라 오로지 우리를 위해 쓰는 마음입니다. 스님들은 머리를 깎는 순간부터 이미 공적인 인간입니다. 나의 사사로운 이익이나 명예를 취하지 않고, 중생과 종단과 불교에 헌신하는 것이 출가수행자 본연의 의무입니다. 부처님이 출가자의 무소유를 주장하신 이유는 삼라만상 모두가 본래 무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님들은 이러한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일에 모범을 보이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불교가 위기라면, 그것은 공심의 결여에서 비롯됩니다. 수행자가 아니라 그저 생활인으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누구 못지않게 눈앞의 이익에 한없이 작아지진 않는지 끊임없이 자문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불제자에게 요구되는 제일의 덕목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하심(下心)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거창한 무언가를 논하기 전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불자의 삶입니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은 수많은 생명들의 피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 당연히 얻는 권리가 아닙니다.”

교단 파괴. 금권 비방 ‘난무‘
기존의 선거풍토 지속되면
한국불교 끝내 무너질 것  
‘적폐’ 반드시 고쳐야 한다 

= 제35대 총무원장 선거에서 당선돼 사부대중의 존경과 환호를 받으며 종단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셨습니다. 한편으로 이번 선거는 금권 및 비방선거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종단의 주요 소임자 선출제도에 대한 입장을 듣고 싶습니다.
 “1994년 종단개혁 이후 세간의 선거제도가 종단에 본격적으로 도입됐습니다. 20여년이 흐른  이즈음, 선거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제방에 많습니다. 최악의 폐단은 교단의 화합을 깼다는 것입니다. 선거를 하면 필연적으로 경쟁자가 생기고 응당 특정 후보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나뉩니다. ‘저 사람은 나에게 표를 던지지 않았다’는 분별심과 증오심은 웬만해선 없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분열이 일어나고 보복을 꿈꾸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상대가 있으면 기어이 상대에 대한 비방을 하게 됩니다. 사실이건 아니건 개의치 않고 우선 표를 얻어야겠기에 모략하고 중상합니다. 이번에도 다반사였습니다. 그것이 과연 승가다운 것입니까? 십중대계(十重大戒) 가운데 하나가 ‘사부대중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경고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게 요즘의 선거풍토입니다. 무분별한 흑색선전으로 불자들에게 종단에 대한 혐오감을 일으키고 국민들의 불신을 초래한 죄를 갚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겠습니다.
 또한 위계질서를 무너뜨렸습니다. 50년 중노릇한 사람과 5년 중노릇한 사람이 동일한 1표로 취급받습니다. 물론 민주주의사회에서 평등은 훌륭한 가치이지만, 오랜 세월 장로들의 경험과 연륜을 중요시해온 것이 승가의 전통입니다. 지도자는 집단 구성원 모두의 존경과 신뢰를 받을 때 자신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고 아울러 그 집단의 위상이 올라가게 마련입니다. 달라이라마가 선거로 뽑힌 사람입니까. 무엇보다 선거의 가장 무서운 폐해는 절대 지도자를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선출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선거를 한번 치르면 종단의 자산이 사정없이 유실됩니다. 신도에게 받았건 불자가 아닌 이에게 받았건 스님이 받은 돈은 모두 삼보정재입니다. 자기가 아니라 오직 중생과 불교와 대중을 위해 써야 합니다. 일반인들이 평생 만져보지 못할 액수의 돈이 뿌려진다는 이야기까지 돕니다. 제불보살이 통곡할 일입니다. 종단에 이런 행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민 앞에서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는 지경입니다.
 심지어 양심의 가책도 없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일말의 책임감조차 느끼지 않습니다. 인성이 이러할진대 어떻게 무슨 명분으로 신도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라고 할 자격이 있습니까. 단언컨대 이와 같은 선거문화가 만연하고 잔존하는 한 한국불교에 희망은 없습니다. 불교를 망치자고 하는 일이 선거입니다. 반드시 고칠 것입니다.”

= 조직적인 음해와 금품살포 등 선거법 위반 사례가 적잖이 드러났습니다. ‘용서하고 포용해야 아름다울 것’이란 의견이 있는 반면 ‘관용과 자비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엄존합니다.
 “취임사를 통해서도 밝혔듯이 저의 인사원칙은 ‘대탕평(大蕩平)’입니다. 여전히 확고합니다. 그러나 전제조건은 잘못을 저지른 이들의 진실한 참회입니다. 표를 돈으로 산 행위, 근거 없이 후보를 비방한 행위에 대한 솔직한 인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이후에 탕평의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집단이든 상벌이 분명해야만 그 집단이 성공하는 법입니다. ‘내가 하는 일은 무조건 정당하고 남이 하는 일은 무조건 잘못됐다’는 위선을 뿌리 뽑기 위해서라도 그래야 합니다.”

인터뷰는 지난해 12월19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총무원장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총무원장 스님은 1시간여에 걸쳐 종단 운영기조와 평소 소중히 생각하는 인생의 가치에 대해 밝혔다.

4차 산업혁명? 부처님 법대로
살면 언제든 어디서든 행복해
국민이 만들어낸 정부라면
끝까지 국민 위한 정부여야

= 후보 시절 내놓은 종단운영 10대 기조에서 보듯 총무원장으로서의 포부도 크시고 그에 따라 해야 할 일도 많으실 것입니다.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고 계신 종책과 사업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10대 기조에 대한 로드맵을 만들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10대 기조의 1번도 2번도 3번도 스님이 스님다워지는 것을 목표에 두어야 합니다. 스님다운 덕성과 정체성을 갖춘 뒤에,  무슨 일이든 시작하는 것이 정도입니다. 자기를 내려놓고 자기를 비우고 종단에 참여하겠다는 자세가 한국불교 중흥의 핵심입니다. 스님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할 때에도 항상 ‘나한테 잘하려 하지 마라. 부처님에게 잘하고 중생에게 잘하라’고 당부합니다. ‘여러분이 그간 나에게 잘해주지 않았어도 나는 이렇게 잘 살아왔지 않느냐’라고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분들과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등의 비약적인 발달로 인해 ‘더 이상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 없는 현실이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불자들은 무엇을 준비해야하겠습니까?
 “4차 산업혁명이 오든 5차 산업혁명이 오든 부처님 법대로만 살면 전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물질문명이 풍요롭다고 인간이 과연 행복할까요? 수 천 년 인류의 역사를 통해 이미 입증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부유하다고 명예롭다 해도 자신의 불성을 찾지 못하면 영원히 불행하고 결국엔 불행합니다. 마음속에 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이라는 ‘탐진치’가 있는 한 어디에 살든 지옥입니다. 청정심을 회복한 대자유인이라면 어디에 살든 행복합니다. 오히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불교는 더욱 빛을 발할 것입니다. 진리는 내 마음에 있다는 원리를 일러주는 종교는 없으니까요. 인간세상이 제아무리 천변만화한들, 우주의 중심축인 자성(自性)은 변하지 않습니다.”

건강에 무심해서 건강한 듯
행복보다 나를 찾는 게 먼저
세상살이는 누구에게나 시련
정성 다하는 게 유일한 ‘묘책’ 

= 출가수행자로서의 반듯하고 진솔한 삶이 대중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무엇이셨는지요. 아울러 사람들에게 어떠한 삶을 권하고 싶으십니까.
 “견성(見性)입니다. 천지만물의 근원이자 무한한 지혜와 자비의 근원인 자성을 똑똑히 보는 것입니다. 그게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이니까요. 물론 자성을 통찰하기 위한 길은 쉽게는 가지지 않습니다. 그저 정성스럽고 열정적으로 사는 것이 방법이고 지름길입니다. 육감에 의해 감성에 의해 향락에 의해서는 자성을 절대 못 찾습니다. 삶에는 특별한 묘책이나 도리가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 정성스럽게 하면 기어이 잘 됩니다.”

= ‘촛불민심’이 만들어낸 문재인 정부가 집권 2년차를 맞았습니다.
 “12월초 7대 종교지도자들과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함께 오찬을 했습니다. 다들 지난해 겨울 촛불집회에 대해 찬사를 보냈습니다. 다만 저는 ‘이건 시작일 뿐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핵 문제로 인한 한반도의 위기가 어느 때보다 심각합니다. 주변 열강들이 우리들의 명운을 저들 마음대로 흥정하고 타협하는 모습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몹시 언짢습니다.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국가와 민족을 보위할 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진실로 국민이 만들어낸 정부라면 국민들에게 정말 잘 하는 정부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대통령이 ‘통 큰’ 정치를 하기 바랍니다. 어느 한 진영에 소속된 대통령이 아닙니다. 진보와 보수를 다 품어야 합니다. 귀를 넓게 열어 수많은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문답을 주고받는 총무원장 설정스님(왼쪽)과 불교신문 사장 초격스님.

= 마지막으로 불자와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당부가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중생이 사는 세상은 본래 어디나 만만치가 않습니다. 시련과 극복의 연속이 인생입니다. 그 길에서 가장 소중한 일은 나를 찾는 일입니다. 목표를 세우고 야망을 품기 전에 먼저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나를 알면 어떤 일을 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돈 명예 애정을 쫓아가면 끝내 자기를 잃어버립니다. 자기를 잃어버렸다는 건 모든 걸 탕진했다는 겁니다. 상황에 좌지우지되지 말고 우뚝하게 걸어가십시오, 자기가 우주의 주인입니다.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주어진 일에 정성을 다 하십시오. 혹자들은 ‘꿈같은 소리’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제가 경험하고 성찰한 인생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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