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팥죽 드세요!” 한국불교종단협의회는  22일 동지를 맞아 서울 북인사마당에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동지 팥죽 나눔 축제’를 개최했다. 사진은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사진 왼쪽)이 시민들에게 팥죽을 나눠 주고 있다. 김형주 기자

동지는 ‘작은설’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동지를 기점으로 짧아지던 낮이 길어지면서 새로운 해가 시작하는 것으로 여겼던 까닭이다. 서양에서는 짧아진 해가 다시 길어진다고 생각해 ‘태양이 부활하는 날’로 삼아 축제를 열었다고 한다. 태양의 궤도에 따른 풍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크게 다르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옛날부터 동지는 큰 명절이었다. 중국 <여씨춘추>에서는 동지는 음양이 다투는 때라 군자는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음양이 안정되길 기다려야 한다는 기록이 있고, <사기>에서는 동짓날 천자가 태산에서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후한 <사민월령>을 보면 11월 동지 때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예를 올렸음을 알 수 있다. 동진 법현스님이 천축을 순례하고 기록한 <고승법현전>에 따르면, 411년 장안으로 돌아온 스님은 416년 동재(冬齋)를 지냈다. 동재는 동지에 사감(寺監)이 주지 스님을 대신해 법좌(法座)에 올라 스님들에게 계경(戒經)을 설해 그 실행을 재촉하는 법회로, 당시 사찰에서도 동지 때 법회를 봉행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고려 때도 동짓날 신하들이 왕에 하례했다고 한다. 또 <고려사>에는 동지 전후에 팔관회를 봉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11월 보름 개경에서 행해지던 중동팔관회(仲冬八關會)를 동지의례로 보기도 한다. <신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고려 태조 원년에 유사가 신라 때도 중동이 되면 팔관재를 성대히 베풀고 국가 태평을 기원했다”고 해 이 시기가 동지이자 곧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때였을 것이란 추정도 있다.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는 풍습
양나라 때 ‘형초세시기’서 유래

우리나라 고려문집에 기록 남아
팥죽에 꿀을 타 제사상에 올리고
벽사역할 기대해 문에 뿌리기도

오늘날 불교대표 나눔행사 정착
팥죽, 달력 선물하며 의미 새겨

지난 16일 중앙신도회가 마련한 평창올림픽 성공기원 동지팥죽 나눔 행사. 불교신문 자료사진

동지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팥죽이다. 동짓날을 기려 제사를 지냈던 것은 이제 잊혔지만 동지팥죽은 우리에게 여전히 익숙하다. “동지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동지팥죽을 먹어온 까닭이다. 이런 전통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중국과 우리나라 세시풍속을 기록한 책들에는 동지와 팥죽에 대한 기록이 전해진다. 동지팥죽에 대한 가장 빠른 기록은 6세기경 중국 양나라의 종름이 쓴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중국 사람들은 동지 때 해의 그림자를 재고, 팥으로 죽을 쒀 악귀를 쫓았다. 당시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 죽어 악귀가 됐는데 그가 팥을 무서워해 팥죽을 쒀 물리쳤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팥이 확인되는 건 청동기시대 유적에서부터니 팥은 한반도 역사만큼 오래된 작물이라 하겠다. 팥만큼 팥죽도 오래된 역사를 가졌겠지만 언제부터 팥죽을 먹는 문화가 있었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동짓날 팥죽을 먹었다는 기록은 고려시대 문인들이 남긴 여러 문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덕경 부산대 사학과 교수는 논문 ‘조선의 동지팥죽과 그 사회성’에서 “고려말 <익제집>에 의하면 동짓날은 흩어진 가족들이 모여 두죽(豆粥)을 끓이고 채색 옷을 입고 부모님께 장수를 기원하며 술을 올리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여겼다”며 “동지에 집집마다 팥죽을 쑬 정도로 대중화된 것을 보면 적어도 고려시대 중기 이전에 동지 팥죽의의 절일(節日) 음식이 정착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은설이란 별칭답게 당시 동지는 오늘날 명절날 풍경과 다르지 않다.

2015년 동짓날 조계사에서 달력을 나눠주는 모습. 불교신문 자료사진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이런 풍습은 사라지지 않는다. 팥죽이 명절 별식으로 자리 잡은 후에는 다양하게 활용된 것이다. <동국세시기>에는 동짓날 풍경이 상세히 묘사돼 있다. 당시에는 꿀을 타 제사상에 올리기도 했고, 동지 제사가 끝나면 팥죽을 벽이나 대문에 뿌렸다. 상서롭지 못한 기운을 막고 잡기를 물리치기 위해서다. <해동죽지(海東竹枝)>를 보면 20세기 초에도 팥죽을 문에 뿌려 귀신을 쫓으려 했다는 것으로 보아 이런 전통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는 팥죽의 어떤 성분에 기대했다기보다, 팥의 붉은 색이 양(陽)을 뜻해 음의 기운인 역병이나 귀신을 쫓아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밤이 길어 음기가 성해지면서 양의 기운인 붉은 팥죽으로 이를 다스리려고 했다는 것이다. 조선 영조 때는 공공씨 얘기를 맹신하지 말라며 백성들에게 팥죽을 문에 뿌리는 걸 금지했을 정도라고 하니, 팥죽이 벽사(辟邪)의 기능을 한다는 믿음이 성행했음을 보여준다. 요즘도 아이 돌잔치에 수수팥떡을 해 나눠먹으면서 액을 물리치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거나, 이사나 개업 때 팥 시루떡을 돌리는 것 또한 팥의 벽사의 의미가 오늘까지 이어온 것이라고 하겠다.

다만 동짓날이 음력 11월 초순에 든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는다고 한다. 동지가 초승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하는데, 애동지 때 팥죽을 쑤면 좋지 않다는 속설도 있다. 대신 애동지 때는 팥 시루떡이나 찰밥을 해먹기도 했다는 것이다.

달력을 주고받은 전통도 확인할 수 있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동짓날 임금은 신하에게 달력을 하사했다. 관상감에서는 책력과 달력을 만들어 왕에게 진상하면, 왕은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금으로 된 옥새를 찍고 황장력(黃粧曆)과 청장력(靑粧曆) 백장력(白粧曆)을 백관에 나눠줬다고 한다. 관리들도 서로서로 달력을 선물했는데, 동짓날에는 서리가 관원에게 역서를 바쳤다고 한다. 관청에서는 백성들에게 책력을 나눠줬다. 책력은 천체를 관측해 월식, 일식, 절기 등을 기록해놓은 책으로,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는 요긴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달력을 선물했던 건 단옷날 임금이 신하들에게 부채를 선물했던 것에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풍습은 불교에서 여전히 이어오고 있다. 불교에서도 동지는 중요한 명절로 여기고, 동지불공을 올렸다. 스님들은 사찰을 찾아오는 이들을 먹이기 위해 며칠 전부터 팥을 불려 죽을 쑤었다. 찹쌀가루로 빚은 새알심까지 더해진 팥죽은 추운 겨울 몸을 녹이고 속을 달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동지불공을 올리기 위해 절에 온 불자들은 부처님 전에 팥죽을 공양하고 기도하고 입고 있던 헌 옷을 태우는 소대의식(燒臺儀式)을 행한다. 이는 액을 소멸하고, 새해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불공이 끝난 후에는 절에서 팥죽을 싸와 이웃과 나눠먹으면서 건강과 안녕을 발원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전국 사찰과 신행단체들은 동짓날인 지난 22일 불자들과 팥죽을 쒀먹고 새해달력을 나누는 행사를 가졌다. 동지를 전후에 불교계 안팎에서 행해지는 보시행은 연말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나눔 문화로 정착하는 추세다. 세시풍속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는 가운데 불교계가 나서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것은 물론 현대적 의미까지 더해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회장 설정스님, 조계종 총무원장)는 지난 22일 동지 팥죽나눔축제를 전국적으로 개최했다. 종단협 소속 사찰 133곳이 동참해 이웃에게 팥죽을 공양하고, 동지 때 버선을 나눠신던 전통을 이어 양말을 선물했다. 제6교구본사 마곡사(주지 원경스님)는 22일 공주터미널에서 시민들에게 팥 시루떡 3000인 분을 나누고, 고수지 시각장애인 80가구에 떡국 3kg을 전달했다. 논산 관촉사는 논산고속터미널 앞에서 팥죽 7000인 분과 달력을 공양했다. 안산시 불교연합회(승현스님)는 지난 17일 안산 다문화공원에서 다문화가족들에게 팥죽을 공양했다. 또 부산연제구불교연합회(회장 무관스님)도 지난 17일 부산시청등대광장에서 2000인분의 팥죽을 시민들과 나눴다. 조계종 포교원 포교부장 가섭스님은 “동지는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 세시풍속이지만, 전통적인 가족문화가 변하고 생활이 바빠지면서 현대인들이 풍습을 잇기 쉽지 않다”며 “사찰에서 팥죽을 이웃에 공양하고 달력도 보시하면서 전통을 잇는 동시에 나눔을 실천하는 불교계 대표행사로 자리매김 하고 있어 의미 있다”고 말했다. 

[불교신문 3356호/ 2017년 12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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