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저에 대한 걱정 모두 내려놓으세요”

전생에 부처님의 아버지였던 나꿀라삐따장자는 부처님과 스님들이 숭수마라기리 부근의 베라깔라 숲에서 지내는 동안 아내와 함께 날마다 부처님을 뵈러 왔다. 그는 부처님을 아들처럼 생각했고 삼보에 귀의한 후에도 부처님에게 친근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면 부처님께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이야기하기도 했고 아내와 함께 수시로 스님들이 머무는 곳을 청소하거나 물을 길어놓았다. 하지만 나이가 많았던 그는 매일 베라깔라 숲을 오고가는 것이 힘에 부쳤고, 오랫동안 병을 앓고 난 어느 날 부처님을 찾아와 늙고 약해져가는 서러움을 토로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몸은 아파도 마음은 아프지 않아야 한다는 법문을 들려주셨다. 그동안 마음속에서 도저히 떨칠 수 없었던 슬픔과 괴로움의 원인을 알아차린 나꿀라삐따장자는 기운을 차렸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다시 상태가 나빠진 나꿀라삐따는 의사조차 치료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다. 

“만약 당신의 걱정이 제가 
마음의 평온을 찾지 못할까봐 
염려하는 것이라면 
그것도 내려놓으세요 

당신이 계실 때나 
당신이 떠난 후에나 저는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부처님을 찾아가 질문을 드리고
가르침을 들을 것입니다”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꿀라마다의 얼굴과 목소리는 
점점 밝아지고 
장자 또한 상태가 좋아져…   

아내 나꿀라마다의 눈물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마친 채 마지막 진료를 마치고 떠난 의사를 배웅한 나꿀라삐따장자의 아내의 얼굴은 눈물로 가득했다. 6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서로를 아끼고 사랑해온 남편이 오늘밤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금방이라도 숨을 거둘 것 같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슬퍼하는 자식들 앞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그녀였다. 하지만 잠시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자 그때서야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던 것이다. 

장자의 아내 나꿀라마따는 터져 나오는 슬픔을 참기 위해 가냘픈 가슴을 움켜쥐고 숨을 가다듬었다. 방 안에는 나꿀라삐따가 시시각각 밀려오는 고통을 참으며 신음하고 있었고, 거실에서는 아들과 딸들이 모여 숨죽인 채 흐느끼고 있었다. 잠시 후 간신히 안정을 찾은 그녀는 언제나 남편이 꼭 잡아주었던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때 보드랍던 두 손은 이제 자글자글한 주름과 검버섯이 가득했다. 나꿀라마다는 늙음으로 가득한 자신의 손을 보면서 육신이란 언젠가는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법문에 의지해 울컥울컥 넘어오는 고통을 마주했다.

나꿀라마다는 두려웠다. 그녀는 두려움을 끌어안고 슬퍼하는 대신 두려움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마음속에 꽁꽁 숨어있던 괴로움과 두려움의 원인이 보였다. 괴로움의 원인은 남편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고 두려움의 원인은 홀로 남겨질 것에 대한 불안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부처님께서 수많은 가르침을 주셨음에도 어리석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한 채 비통한 눈물바람 속에 남편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평온해졌다. 두려움과 고통을 극복한 나꿀라마다는 남편이 죽음과 싸우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서로에 대한 애착을 내려놓고…

침대에 누워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던 나꿀라삐따장자는 아내를 알아보고 손을 내밀었다. 나꿀라마다는 남편의 곁에 앉아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고통으로 흐릿했던 나꿀라삐따장자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남편의 고통스러운 얼굴과 눈물을 본 나꿀라마다는 그의 귀에 입술을 대고 차분한 목소리로 천천히 속삭였다.

“여보, 모든 걱정을 내려놓으세요. 저에 대한 애착도 모두 내려놓으세요. 애착을 가지고 죽음을 맞는 것은 괴로움을 더할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애착을 붙들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나무라셨습니다.”

아내의 입에서 ‘부처님’이라는 소리를 들은 나꿀라삐따장자는 희미해져가는 정신을 잡았다. 남편의 눈빛이 조금 반듯해지자 나꿀라마다는 그의 손을 더욱 꼭 잡고는 계속해서 말했다.

“여보, 아마 당신은 ‘내가 떠나고 나면 나꿀라마다는 어쩌면 좋을까. 아들과 딸들이 잘 보살펴줄 것인가’하는 생각에 괴로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아무 걱정도 하지 마세요. 저는 실 잣는 일에 능숙하고 충분히 혼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식들도 잘 다스리고 집안일도 빈틈없이 꾸릴 수 있습니다.”

나꿀라마다의 이야기를 들은 후 나꿀라삐따장자의 눈빛은 맑아졌고 거칠었던 숨소리도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나꿀라마다는 계속해서 말했다.

남편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설하다

“여보, 당신은 아마 이런 생각 때문에 지금 괴로울 지도 모릅니다. ‘내가 떠나고 나면 나꿀라마다는 다른 사람과 재혼을 할 것이다’ 그런 걱정일랑 마세요. 막내가 태어난 후, 우리 부부는 이미 56년을 남매처럼 살아왔습니다. 당신과 내가 애욕을 탐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서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걱정도 버리세요. 당신이 만약 그런 생각을 가지고 죽음을 맞는다면 부처님께서 경멸하실 것입니다.”

나꿀라삐따장자는 아내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꿀라마다는 남편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만약 당신이 떠난 뒤 내가 부처님과 스님들을 뵈러 가지 않거나 법문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걱정 마세요. 저는 당신이 없더라도 부처님을 뵈러 갈 것이고 스님들을 더욱 정성껏 보필할 것입니다. 계 또한 잘 지킬 것입니다. 만약 당신의 걱정이 제가 마음의 평온을 찾지 못할까봐 염려하는 것이라면 그것도 내려놓으세요. 당신이 계실 때나 당신이 떠난 후에나 저는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베라깔라 숲에 계신 부처님을 찾아가 질문을 드리고 가르침을 들을 것입니다.”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꿀라마다의 얼굴과 목소리는 점점 밝아졌다. 나꿀라삐따장자 또한 점점 상태가 좋아져 반듯하게 누워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찾은 장자의 삶

한편 거실에서 흐느끼고 있던 부부의 아들과 딸들은 방안이 조용해지자 의아한 눈으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혹시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신 것인가?”

“어머니께서 너무 충격이 커서 차마 울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계신 것인가?”

상황을 모르는 자식들이 서둘러 방으로 들어왔을 때, 그들의 눈에 비친 것은 나꿀라마다와 나꿀라삐따가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침대에 앉아 손을 꼭 맞잡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자식들을 뒤로하고 나꿀라마다는 남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마지막 당부의 말을 했다.

“여보, 아무 걱정 하지 마세요. 지금 당신은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떠나고 나면 나꿀라마다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계율을 의지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할 것이다’라는 걱정을 하고 있다면 염려마세요. 저는 당신과 함께 삼보에 귀의하였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계를 지키고 스님들을 의지하며 마음의 위안을 챙길 것이고 평온은 잃지 않을 것입니다. 저에 대한 걱정은 아무 것도 붙들고 떠나지 마세요. 부처님께서는 집착을 가지고 죽음을 맞는 것을 나무라셨습니다. 당신이 만약 그런 생각을 가지고 죽음을 맞는다면 부처님께서 경멸하실 것입니다.”

나꿀라마다가 이야기를 마치자 나꿀라삐따장자는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그를 괴롭히던 모든 고통에서 벗어났다. 다음 날 나꿀라삐따장자의 임종을 확인하러 온 의사는 그가 하룻밤 사이에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얼굴이 좋아진 것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부처님의 칭찬을 받다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난 나꿀라삐따장자는 의사가 지어준 약을 먹고 다시 건강을 회복했다.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자마자 장자는 곧바로 베라깔라 숲에 계신 부처님을 찾아갔다. 그리고 나꿀라마다가 임종을 눈앞에 두었던 자신에게 해준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장자여, 그러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아내를 둔 것은 진실로 그대에게 큰 이익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내를 칭찬하시자 나꿀라삐따장자는 주름진 얼굴 가득 웃음을 지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안거를 마친 부처님과 스님들은 베라깔라 숲을 떠나 다른 곳으로 향했다. 여러 지역을 거쳐 스라바스티의 기원정사에 도착했을 때, 부처님께서는 나꿀라삐따장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숭수마라기리로 가서 그의 장례식에 직접 참석하셨고 그 자리에 모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늙어가고 죽어가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하여 법문을 하셨다. 훗날 부처님께서는 나꿀라삐따장자를 떠올리며 말씀하셨다.

“여래의 재가 제자 중에서 여래를 보자마자 귀의한 사람은 나꿀라삐따장자 부부였다. 여래와 친근한 이들 중에서는 나꿀라삐따장자가 으뜸이다.” 

[불교신문3353호/2017년12월13일자] 

 

글 조민기  삽화 견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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