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 은행잎이 떨어져 우주의 별똥별처럼 우수수 한꺼번에 날리고 있다. 저마다 아름다웠던 만물이 생장과 소멸이라는 자연의 법칙 속에서 올 해도 어김없이 1년의 끝을 맺는 것이다. 봄인가 싶더니 어느 새 조락(凋落)의 계절, 버스 정류장 옆 담벼락을 넘어가는 담쟁이의 남은 잎들도 태연한 체 붉어진 낯으로 겨울의 책장을 급히 넘기고 있다. 

비를 맞고 바람을 견디며 뿌리째 엉키기도 했을 담쟁이의 한 해, 지나가는 행인의 알 수 없는 속 깊은 눈물과 버스시간이 늦어 동동거렸을 누군가의 급한 여정도 맨발로 따라갔을 것이다. 나비가 앉았다 간 자리에서는 영영 만나지 못할 이별을 배웠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1년 동안 짓고 만들었던 허물은 얼마만큼의 깊이로 뿌리 뻗어 두터운 벽을 만들어 넘고 있을까? 입과 혀에서 나온 말의 상처는 얼마나 깊이 마음속으로 파고들어 샘이 되고 있을까? 혼자 우두커니 상념에 잠겨본다. 참회와 화해 없이 정상을 향해서만 뛰고 있지는 않았는지,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말만 앞세운 계획들은 없었는지. 풀 한 포기, 개미새끼 한 마리라고 함부로 짓밟고 뽑지는 않았는지 하나씩 되새겨 본다. 

모든 일이 부족한 성찰로 귀결될 한해겠지만 올 해가 가기 전에 사소한 다툼의 기미가 됐던 일이나 서운함을 남겼던 사람들에게 이해나 용서 구하는 일부터 먼저 해야겠다. 생로병사나 생장과 소멸의 변화는 사람만이 아닐 것이다. 만물은 무성하지만 각기 그 뿌리로 되돌아간다. “뿌리로 되돌아가는 것을 일러 고요함이라(歸根曰靜)”이라고 노자는 말했다. 새로운 만남과 숱한 이별의 지점 12월 달력 속에 남은 날짜를 검게 동그라미 칠해놓고 지난 한 해의 나를 냉 차게 돌려보내며 고요한 시간의 처음으로 돌아가 나를 한 그루의 나무로 새롭게 심어야겠다. 지진과 핵 위험 등으로 흔들렸던 국민의 안녕과 평화도 진심을 다해 빌어본다. 창밖은 바람이 분다. 몇 알 남지 않은 감나무 가지를 흔들어 동시(冬)를 떨어뜨린다. 차가운 평온이 하늘을 뒤흔든다.

[불교신문3353호/2017년12월13일자] 

김성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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