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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용성진종조사 ] <44> 조선글 화엄경②공동기획 : 용성진종장학재단(총재 도문)
  • 글 신지견 그림 배종훈
  • 승인 2017.12.07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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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대사님, 사람이 
이 광막한 우주공간을 
과학 실험실에서만 볼 수 있는 
원자보다도 더 미세한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글을 읽었는데 
화엄경도 그런 내용입니까?”

“난 그런 책을
보지 못해서 모르겠으나 
모든 것이 텅 비었다는 
소리 같이 들리는구먼.”

“불교에 ‘미진’이란 말이 있소….” 

그만 두자. 백상규는 백상규고 나는 나다. 낸들 왜 한문을 못 읽겠나, 조선글이라 해도 라플라스미분방정식보다 더 어려운 내용이었다. 싯다르타 태자가 네란자라 강에서 목욕을 하고, 세나니의 딸 수자타가 정성스레 끓여온 우유죽을 마신 후 앗삿타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인데, 은엽이 보기에 그 내용을 조선글로 바꿔놓아도 어렵기는 매 한가지였다. 아니 어려운 개념이 인간이 할 상상의 한계 그 너머에 있었다. 참깨 들깨도 노는데 아주까리라고 못 놀겠느냐, 그래도 한몫 끼려고 해보았으나 그 장단에 춤추기가 여간 어려웠다.

겉으로는 잔잔한 것 같았지만 속으로는 얽매고 찍어맨 곰보도 저 잘난 맛에 사는 법이거늘, 은엽은 자존심이 을크러져 입술을 조금만 움직여도 쭉 찢어져 피가 솟을 것 같았다. 어찌 생각하면 얼토당토 않는 일을 가지고 혼자 이리 뒤채고 저리 뒤채다 늦게 잠이 들었다.

쿵—!

집이 통째로 무너지는 소리 같았다.

쿵—!

누가 종을 치는가? 하긴 멀지 않는 곳에 보신각이 있다. 하나 아무 때나 보신각종을 때리지는 않는다. 그놈의 고양이, 송아지만한 고양이가 골목길을 삘삘거린 것을 본 은엽은 2층 지붕 끝에서 고양이가 양철통 위로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얼른 눈 치운 넉가래를 들고 쫓아나갔다. 그때였다. 하늘에서 벼락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 머릿속에 문자가 들었으면 몇 개나 들었느냐!’

앗!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고 잠을 깼다. 꿈이었다. 맞아, 내가 <화엄경>에 대해 뭘 안다고 백상규가 조선글로 풀어쓴 내용을 진드기가 아주까리 흉보듯 이렇고 저렇고 이죽거릴 자격이나 있나, 이런 걸 참나무에 곁낫걸이라고 하는 게지…. 

이튿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봉익동으로 백상규를 찾아갔다.

“어쩐 일이오? 아침 일찍…,”

학교로 학생들 가르치러 갈 시간 아니냐는 소리 같았다.

“뜸들일 것 없이 단도직입으로 묻겠습니다.”

백상규가 슬쩍 쳐다보더니 다탁 너머로 방석을 내주었다. 그러고는 다탁을 마주 놓고 앉았다.

“선사께서 쓰신 조선글 화엄경을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화엄경이 뭡니까?”

이게 삼 년 남의집살고 주인 성 묻는다는 소린가? 백상규가 다관을 든 채 한 번 더 쳐다보았다. 교수 은엽이만한 학식을 갖춘 사람도 드물거늘, 끝없는 것으로 말하면 다시 끝이 없이 크고, 작기로 말하면 아예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버린 것을 몰라 묻는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답을 해줘야 하나….

“오뉴월 더위에 보면 암소 뿔이 물렁물렁 곧 빠질 것 같지요?”

은엽이 어리둥절했다.

“암소 뿔 물렁거린 것이 화엄경입니까?

이죽거린 어감이 풍겨져 나왔다.

“두더지 너는 나비 되지 말라는 법이 있소.”

어쩌는가 보려고 한 번 더 눙쳤다. 

“제가 화엄경을 잘못 물었습니까?”

“오리를 홰에 올린다고 닭이 되지 않소.”

심술이 났는지 입술을 비틀었다.

“대사께서 언제 이렇게 콘크리트가 되셨습니까?”

“암소 뿔은 그래도 안 빠지지.”

“벙어리한테 말을 하라고 협박하는 꼴일세.”

“허! 그놈의 입….”

백상규가 껄껄 웃었다. 그러고 물었다.

“화엄경이 뭐냐고 물었소?”

“네!”

“바로 그대요.”

“네—?”

귀를 쫑긋 세웠다.

“그대가 바로 화엄경이라.”

“지금 파리잡습니까?” 

“보살은 지금 나한테 막 대들고 싶지요? 그 마음이 화엄경이라, 이 세상 저리 많이 널려있는 것 모두가 화엄경이지….”

은엽의 귀에는 동문서답이었다.

“그럼 화엄경이 철 그른 동남풍이겠네요?”

기어이 어깃장을 놨다.

“흐흠! 그렇게 말하면 안 되고…, 사납고 착한 것도 마음이고, 기쁘고, 흐뭇하고, 달콤한 것도 마음이고, 귀찮고 성가시고 고단한 것도 마음인데, 아주 평등하더라, 그 말이오.”

“꽃피고 나뭇잎 푸르고 나비 날고 산새 우는 것도 화엄경입니까?”

“바로 그것이 화엄경이오!”

“그러니까 그게 바람 잡는 베주머니군요?”

이렇게 나오는 데야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 읽어 보지도 않고, 콩마당에 간수 치러 왔수?”

홧—! 화엄경을 다 읽지 않고 온 것을 어떻게 알까? 은엽은 앉음새를 고쳐 앉았다.

“사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씀드립니다만, 읽다가 딱 걸린 데가 있어서 죽 쑤어 식힐 틈도 없이 뛰어왔습니다.”

“그게 운남바둑이자 연(緣)이란 게지.”

“운남바둑이요?”

“못 알아들었으면 토 달지 말고 딱 걸린 데가 무엇인지 그거나 물으시오.”

“화엄경이 백명선이 헛문서 같습디다.”

“요즘 부처가 정신이 없다더니 죽은 딸네 집에 갔는가. 그래 무엇이 백명선이 헛문섭디까?”

“일체국토가 한국토로 들어가고 한국토가 일체국토로 들어간다는데, 그게 하늘에 집짓는 소리 아닙니까?”

“허허허…, 하늘에 집을 지으면 실체가 있겠소?”

“있긴 뭐가 있어요?”

“그것이 화엄경이요.”

은엽은 여전히 머릿살만 뱅뱅 돌리는 소리로 들렸다. 

“첫 마수에 외상 먹어본 사람이 고양이 달걀 굴리는 법을 아는 거라.”

나이가 들수록 느는 것이 잔소리라고 지금 백상규가 쌀함박을 긁는가.

“노루를 보면 그물 짊어진다더니 어찌 그런 말만 골라서 하세요?”

“안 짊어진 것보다 나으니까….”

백상규의 그 말에 은엽은 퍼뜩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그렇겠네요.”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네요가 뭐요? 의당히 그리 해야지!”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일체국토가 한국토로 들어가고 한국토가 일체국토로 들어간다는 말은 한문 화엄경 ‘일체국토입일국토 일국토입일체국토(一切國土入一國土 一國土入一切國土)’를 풀어쓴 말이요, 어찌 그것뿐인가, 모든 세계가 털 하나에 들어가고, 털 하나가 모든 세계에 들어간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한 몸에 들어가고, 한 몸이 생명 있는 모든 몸속에 들어간다. 셀 수 없는 긴 시간이 재깍하는 한 찰나에 들어가고 재깍, 한 찰나가 셀 수 없이 긴 시간 속에 들어간다 그 말이오.”

“하이고 골치야! 그게 믿어져요?”

“안 믿어지면 여긴 뭐 하러 왔소?”

갑자기 목소리의 톤이 지금 바쁘니 빨리 가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이걸 어떻게 눙쳐야 백상규 입에 호떡을 붙여놓을까, 침략전쟁의 당사국이기는 했지만 일본의 학문과 과학은 서구에 가까이 접근해 있었다. 학문과 과학의 소비자는 대학과 같은 교육기관이면서 그 분야의 교수들이었다.

은엽은 가끔 학교로 보내져온 <네이처(Nature)>라든가 <사이언스(Science)>를 접근할 기회가 있었다. 서구의 과학이 ‘태초 하느님이 우주에 불어넣은 물체를 작용하는 힘의 기본량은 몇 만 년이 지나도 100만분의 1도 줄어들지 않는다’고 한 데서 출발했다. 그리고 곧 우주 뒤에 감추어진 힘과 중력의 법칙, 전기가 어떻게 공간을 뚫고 자기에 영향을 미치는지 밝혀지기 시작했다.

1905년 상대성이론이 발표되었으나 불행하게도 그 내용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어 빈 홀태질만 계속되던 시기에 물질은 ‘원자(atom)’로 이루어져 더는 쪼갤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알갱이라고 주장한, 기원전 그리스 사상가 데모크리토스(Dmokritos)의 원자설을 돌턴(Dalton)이 실험으로 뒷받침했다. 그 뒤 영국의 러더퍼드(Rutherford)가 돌턴의 이론이 헛소리임을 증명했다. 그리고 러더퍼드가 알아낸 것은 원자 속에 원자의 10만분의 1밖에 안 되는 양성, 중성, 중성미자가 전자에 묶여 해와 달과 별들이 우주를 돌듯 원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모형임을 밝혀냈다. 이어 고에너지 환경에서 만들어진 중성미자가 매초에 650억 개나 1제곱센티미터(㎠)의 우리 피부를 통과하고 있다는 이론이 나왔다. 은엽은 그만큼 정교하게 실증적 검증을 거친 과학은 믿는 편이었지만, 화엄경도 같은 비중으로 믿어도 될지 확실한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렇다면 백상규는 그 점을 어떻게 생각할까?

“저, 대사님, 사람이 이 광막한 우주공간을 과학 실험실에서만 볼 수 있는, 원자보다도 더 미세한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글을 읽었는데, 화엄경도 그런 내용입니까?”

“난 그런 책을 보지 못해서 모르겠으나, 모든 것이 텅 비었다는 소리 같이 들리는구먼.”

“우리가 하나하나 확인할 수 없어서 그렇지 이론상으로는 텅 빈 거나 마찬가지랍니다.”

“불교에 미진(微塵)이란 말이 있소. 또 미진보다 일곱 배나 작은 금진(金塵)이 있는데, 이것들로 세상의 모든 물질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이 미진이나 금진이 우리 몸뚱이는 말할 것 없고 납덩이로 성벽을 쌓아 놓아도 걸리는 것 없이 감쪽같이 뚫고 나간답디다.” 

[불교신문3352호/2017년12월9일자] 

글 신지견 그림 배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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