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이 낙엽 지듯 육신을 훌훌 털고 열반에 드셨다. 생전에 당신이 즐겼던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 풍족했으니 나그네길이 참 가볍고 즐거웠을 것이다. 은사 스님이 세연(世緣)을 정리하시고 떠나는 길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한 생의 역사가 한줌의 재로 화(化)하는 다비장에서 최후의 가르침을 배웠다. 고온의 불꽃이 사그라들어도 여전히 식지 않는 것은 심장이었다. 우리의 오장육부 가운데 가장 늦게까지 타는 것이 심장이라고 들었는데 새삼 확인한 셈이다.

인도의 갠지스강 화장터에서도 그랬다. 어느 때가 되면 펑펑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을 현지사람들은 심장이 사라지는 소리라고 전했다. 그러니까 심장은 마지막 순간에 비로소 친지들과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인생을 기억하고 추모해주는 인연들에게 남기는 고마움의 인사인지도 모른다. 

겨울철에 장작불을 지펴보면 옹이가 많은 나무는 타들어가면서 펑펑 소리를 낸다. 나는 그것을 나무의 심장이 소멸하는 의식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옹이는 성장과 아픔을 견뎌내고 한 생의 마디마다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심장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 마디가 있으므로 생의 불꽃은 더 간절하고 치열해진다. 나무도 이러할 진데 신산(辛酸)이 없는 삶이 있겠는가.

은사 스님의 심장도 그 도리를 일러 주었다. 당신의 90평생 수행 길에서 늘 따스한 가슴을 지니고 살았노라 전하는 법문이었다. 그리고 남아 있는 너희들은 숨이 멎을 때까지 따스한 가슴으로 살아야 한다는 부탁이기도 했다. 단순히 심장이 뛰고 있다고 해서 살아 있는 것은 아닐 테니 무엇보다 따스한 가슴을 지녀야 살아있다고 정의할 수 있다.

달라이라마는 ‘부드러운 친절과 자비심을 베푸는 것이 그대로 자기의 종교다’라고 말했다. 가슴 따뜻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 그것이 참 쉬우면서도 어렵다. 은사 스님의 마지막 당부는 이제 내 삶의 숙제가 되었다. 

[불교신문3352호/2017년12월9일자] 

청주 마야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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