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서구로 간 붓다’ 학술대회…인문학자들 서구불교 조명

동국대 경주캠퍼스 원효관에서 학술대회 모습.

세계적 권위를 지닌 <옥스퍼드 영어사전(The Oxford English Dictionary, OED)에 불교 관련 단어가 등장한 것은 1681년 이후다. 12세기 중엽 또는 그 이전부터 영어권에서 사용돼온 단어를 총망라한 OED에는 1681년 Buddha를 시작으로 1796년 Dharma, 1801년 Buddhism(Bodhism)이 수록됐다.

동국대 인문학연구소(소장 박용희)와 불교사회문화연구원(원장 김성철)이 12월 6일 ‘서구로 간 붓다 - 서구의 불교 수용과 변용’이란 주제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남철호 경남과기대 교수는 이같은 사실을 밝히면서 “이미 19세기 이전에 영국 사회에서 (동양의)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는 반증”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남철호 교수는 ‘빅토리아 시기 영국 불교학과 그 의미’란 주제발표를 통해 “영국은 서구 국가들 중에서 학술사적으로 불교 연구에 가장 긴 역사를 갖고 있으며 커다란 역할을 한 나라였다”면서 “19세기 빅토리아(Victoria, 1837~1901, 여왕) 시기는 불교가 ‘발견’ 및 ‘창안’된 시기였다”는 연구 결과를 밝혔다. 당시 불교 담론은 동양 사회뿐 아니라 19세기 영국인을 비춰주는 거울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남철호 경남과기대 교수

19세기 영국에서는 식민지 개척을 위해 동양으로 진출한 동인도회사 관리 브라이언 호지슨, 윌리엄스 존스, 토마스 데이비스 등의 체험이나 증언을 계기로 불교 연구가 진행됐다. 그 결과 1881년 팔리경전협회가 창립되어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남철호 교수는 “빅토리아 시기 불교 인식 형성의 배경은 영국과 이국적이고 감각주의적인 식민지 인도의 현실 사이의 극단적 대비에서 이루어졌다”면서 △오리엔탈리즘적 요소 작용 △영국 사회에 대한 비판과 창조적 대안 모색을 이유로 꼽았다. 

이어 남교수는 “빅토리아 시기 심각했던 종교적 이념갈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당시는 ‘의심의 시대‘로 전통적인 기독교 신념의 타당성이 도마에 오른 시기로 불교는 중요한 문제 제기 방식으로 등장했다”고 강조했다. 

“가톨릭을 혐오하는 개신교도들은 붓다를 인도의 종교 개혁가로 마르틴 루터와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새로 유포된 불교의 가르침은 종교적 대안을 갈구하는 이들에게 크나큰 호소력을 가졌고 기독교에 맞선 무신론과 세속주의의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이날 이경일 경성대 교수는 ‘프랑스에서의 불교 연구 - 문헌학적 발전과 불교 이해의 심화’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프랑스는 유럽에서 불교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가장 활발한 나라”라면서 “그 배경은 불교 실용주의로 정의되는, 불교 교리를 자국의 사회 상황에 맞게 적용한 자기화의 과정을 꼽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경일 경성대 교수

이경일 교수는 “이른바 ‘근대’ 시작 이후 서구인들의 불교에 대한 관심의 증가는 원천적으로 식민주의적 팽창의 산물”이라면서 “서구에서 불교에 관한 최초의 연구서는 1817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오즈래의 <동아시아의 종교적 선지자 부두에 관한 연구>”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 교수는 “이전부터 부처(부다, 부두)라는 말은 선교사들에 의해 언급되어 왔다”고 덧붙였다.

이경일 교수는 “이 시기에 등장하는 불교라는 용어는 서구 오리엔트학이 발명해 낸 산물”이라면서 “아시아인들은 부처의 가르침을 규정하기 위해 다르마 혹은 다마라는 말을 써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세기 중반 이후 프랑스 지식인들 사이에서 ‘불교 이성론’이 등장했다는 것이 이경일 교수 견해이다. 보들레오와 빅토르 위고 등이 그리스드교에 대항하는 논의로 불교에 관심을 기울였고 르낭, 미슐레 같은 무신론적 지식인들은 불교적 무신론과 이성론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에서의 불교 이성론은 19세기 말에 이르러 쇠퇴의 길을 걸었다. 이경일 교수는 “불교는 계몽주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환멸과 부정에 대한 도피처로 이해되었으며 점차 낭만주의적 혹은 신비주의적 경향을 띠었다”면서 “서구 유물론에 반대하는 상징적 사상성을 가지고 갱생하려고 시도하는 신비주의적 그룹이 이러한 경향을 확산시켰다”고 말했다.

1929년 동양에서의 수행 결과를 담은 <티베트의 신비와 마법사>를 출간한 알렉산드라 다비드 닐.

이 교수는 20세기 초 인도, 티베트, 일본을 방문한 알렉산드라 다비드닐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알렉산드라 다비드닐은 1929년 동양에서의 수행 결과를 담은 <티베트의 신비와 마법사>를 출간했는데, 경험과 실용주의로 특징되는 새로운 불교 경향을 본격화하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알렉산드라 다비드닐은 “명상은 불교적 삶의 심오한 토대이며 불교적 원리의 토대 자체도 그 창시자인 싯다르타의 명상으로부터 유래한다”고 강조했다.

이경일 교수는 “명상이 자신에 대한 자각을 가능케 하는 영적인 길임을 주장하는 불교 실용주의자가 프랑스 대중들 사이에서 특히 1960년대 이후 불교 이해의 지배적인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독일에서의 불교연구 - 초기 두 불교문헌학자를 중심으로(박용희, 동국대) △러시아 불교 - 톨스토이의 불교수행과 이해(장영숙, 대구 가톨릭대학교) △서구 기독교 지식인의 불교인식 - 독일 예수회 신학자 요셉 달만을 중심으로(김필영, 경북대) △하와이 초기 한인사회와 도진호(최대희, 대구 가톨릭대) △미국불교의 전래와 확산(김주관 , 동국대) 라는 주제의 논문도 발표됐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원효관에서 학술대회에는 김영규 경주캠퍼스 교수회장, 장성재 경주캠퍼스 인문대학장, 김성철 불교문화대학원장, 박용희 인문학연구소장, 석길암 교수를 비롯해 스님과 학생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학술대회에 앞서 열린 개회식에서 김영규 교수회장은 “불교가 세계로 가야하는 이유와 세계가 불교를 필요로 하는 점을 살피는 큰 담론의 장이 되길 바란다”면서 “이번 주제는 개인적으로도 흥미롭고 좋은 문제라 생각하고, 향후 더 발전하는 절차탁마의 장이 되리라 믿는다”고 축하했다.

김성철 동국대 불교사회문화연구원장(불교문화대학장)은 “그동안 서구불교를 다룬 논문이 발표된 적이 있었지만 불교학자가 아닌 인문, 인류학자들이 서구불교를 조명하는 이번 학술대회의 의미는 크다”면서 “서양불교가 확장되는 상황에서, 서구사회에 불교가 도입될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살펴본 인문학자들의 연구 성과는 길이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성재 동국대 경주캠퍼스 인문대학장은 “서양은 중세 이래 과학과 종교가 분리됐기에 오늘날 과학 중심 사회에서 종교의 설 땅이 없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면서 “그런 점에서 불교는 신앙 중심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마음의 진리를 찾는 사상으로 오늘날 과학과 흡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장성재 학장은 “심리학 (등 인문학)에서도 불교의 연기법과 공사상, 마음에 대한 탐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이번 학술대회가 서양에서 불교를 어떻게 수용했는지, 그리고 오늘날 어디로 가는지를 살펴본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용희 동국대 인문학연구소장은 “이번 주제를 염두에 두고 공부한지 (오랜)시간이 됐다. 출발점에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의미가 있다”면서 “(이러한 논의에 대해) ‘지구적 지성사’라 이름 붙였는데, 지구적 차원에서 지성의 상호 역사적 흔적을 찾고, 특히 동양에서 기원한 불교가 거대한 지성으로 서구에 끼친 영향을 살핀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원효관에서 이날 학술대회에는 김영규 경주캠퍼스 교수회장, 장성재 경주캠퍼스 인문대학장, 김성철 불교문화대학원장, 박용희 인문학연구소장, 석길암 교수를 비롯해 스님과 학생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불교학자들이 아닌 인문학자들이 참여한 이번 학술대회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 등 서구사회에서 불교를 어떻게 수용하고 변화시켰는지 연구한 다양한 논문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불교학과 인문학의 소통에 기여하고, 근세 서구 불교학의 단초를 점검한 자리였기에 불교학의 외연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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