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수술을 하고난 뒤 부득이 외출할 일이 생겼다. 거동이 불편한 상태에서 나들이옷을 찾아 입자니 신경 씌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요즈음 어느 온라인 회사에선가 패션에 최적화된 인공지능(AI)을 개발, 고객마다 각자 취향과 스타일에 맞는 옷에 액세서리까지 챙겨준다던가? 그런 도우미가 곁에 있다면 모임에 나갈 때 아쉬운 대로 ‘촌티’는 면할 수 있으련만, 하고 뜬금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문명의 이기가 얼마나 더 많아져야 인류는 만족할 수 있을까?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이용한 제4차 산업혁명이 뜨거운 감자로 회자되고 있는 요즈음 문득 떠올리는 영화가 있다. 앤드류 스탠튼 감독이 앞으로 700년 뒤, 인간의 모습을 가상하고 만든 ‘월-E’라는 영화다. 인류는 힘들고, 위험한 일들은 로봇과 기계에게 맡기고 인간은 머리로 하는 일만 총괄하면 되는 세상이 도래한다. 대량생산과 함께 대량소비 사회.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 지구는 마침내 쓰레기로 뒤덮이고, 사람들은 그것을 피해 엑시엄이라는 거대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바깥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사람들이 떠난 곳에서 그들이 버려놓은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월-E(WALL-E : 지구 폐기물 수거 처리용 로봇)가 맡게 된다. 

한편 지구를 떠난 인간들은 모든 것이 자동화된 거대 우주선내에서 전혀 움직일 필요가 없게 된다. 수세대에 걸쳐 자동 휠체어에 의존해 생활해온 결과 인류는 운동 부족으로 다리는 짧고 몸은 비대한 신체로 퇴화해 버린다. 정해진 프로그램에 의해 의자에 누운 채 로봇들의 도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인간들, 그에 비해 로봇들은 오히려 능동적으로 인간을 리드하며 자유롭게 활약한다. 우주선 내 시스템 안에서 반편이처럼 수동적으로 생활하는 인간과 능동적인 로봇의 뒤바뀐 삶을 통해 고도의 자동화와 첨단화가 도달하게 될 미래 사회의 어두운 면을 월-E는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4차 산업혁명은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엄청난 기세로 다가오는 새로운 미래상황에 대해 인류의 수처작주(隨處作主)로서의 마음가짐일 것이다. 

[불교신문3351호/2017년12월6일자]

김숙현 논설위원·희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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