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문화
백장암 선시 나는 누구인가
뜻으로 풀어 본 금강경 읽기
“그림자 속의 나/ 내 속의 그림자/ 나는 누구인가?// 햇빛 속의 그림자/ 잔디에 그려진 나/ 나의 실상은 무엇인가?// 푸른 하늘에 흰 구름 날고/ 솔향기 바람 타고 오는데/ 오롯이 청산에 서있는가?// 미소 지으며 우두커니.” (법산스님의 시 ‘나는 누구인가’)
15세의 나이로 남해 화방사로 출가해 통도사 극락암 경봉스님에게 가르침을 받고 동국대 선학과 교수로 25년 동안 봉직하며 후진양성에 앞장서왔던 동국대 명예교수 법산스님. 그 동안 동국대 불교대학장, 정각원장은 물론 불교문화연구원장, 보조사상연구원장, 한국인도철학회장, 정토학회장 등을 역임하며 불교학 발전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인 대표적인 불교학자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몇 해 전 고희를 맞은 법산스님이 동료학자와 제자들과 함께 70여 년의 구도행을 재조명한 저서 3권이 동시에 선보여 주목된다.
법산스님은 지난 11월29일 서울 그랜드 앰버서더호텔 2층에서 선시집 <나는 누구인가>, 경전번역서 <뜻으로 풀어 본 금강경 읽기>, 논문집 <선과 문화>에 대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스님은 이 자리에서 “지난 2013년 지리산 백장선원에서 하안거 해제를 하고 서울에 올라갔더니 동방대학원 교수 인경스님, 차차석 동방대학원 교수, 신규탁 연세대 교수 등이 이듬해 소납의 고희를 맞아 그 동안 발표한 논문을 모아 ‘기념논총’을 만들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당시 정년퇴임을 하고 ‘이뭣고’를 붙잡고 틈틈이 <금강경>을 애창하는 마당에 고희가 무슨 허공 잡는 소리냐며 거절했는데, 그 후 수년이 지나 그 동안 소중한 인연으로 모아준 옥고를 그냥 묻어둘 수 없어 필자들과 뜻을 함께해 출간하게 됐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어 “논집만 출간하기가 부끄러워 평소 <금강경> 10만 독 발원을 하고 현재 5만 여독을 향해 정진하고 있는 가운데 마침 중국의 역사철학자가 <금강경>을 유교와 도교사상에 비유해 해설한 책을 보고 신심이 나서 번역한 책을 냈다”면서 “더불어 지리산 백장암 선원에서 6년간 안거 도중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본 시에 사진을 곁들인 시집 등 세 권을 함께 펴냈다”고 덧붙였다.
이번 출판의 계기를 된 논집 <선과 문화>에는 성본스님의 ‘선 문화의 이해’를 시작으로 고영섭 동국대 교수의 ‘언어가 끝나는 자리에서 태어난 선시’, 정승석 동국대 교수의 ‘지눌의 돈오점수와 요가철학의 수행론’ 등 논문 12편과 김광식 동국대 겸임교수의 ‘큰스님론’, 황순일 동국대 교수의 ‘생명과 부주의’ 등 선 문화 단상을 포함해 29편의 글이 수록돼 있다.
함께 펴낸 스님의 첫 시집 <백장암 선시 나는 누구인가>에는 백장암 선원에서 수행정진하면서 넋두리처럼 써 내려간 시 100여 편을 만나볼 수 있다. “가을 찬바람에 날아가는 단풍잎처럼 잠깐 허공을 가르는 흉내를 낼 뿐이로다”라는 스님의 시편 속에 어느덧 고희를 넘긴 노장의 겸손함과 넉넉함이 엿보인다. 또한 <뜻으로 풀어 본 금강경 읽기>는 중국의 역사철학자 동방교 교수가 불교와 유교, 도교를 소통하는 넓은 사유의 세계를 열어 놓은 <독금강경적방법학(讀金剛經的方法學)>을 스님이 국내 불자들이 접근하기 쉽도록 풀어 해석한 책이다.
법산스님은 “항상 ‘바보 같이 살라’는 통도사 극락선원의 스승 경봉대종사의 경책을 거울삼아 살아가고 있는 수선행자가 또 이렇게 부끄러운 짓거리를 해서 송구스러울 뿐”이라며 “그럼에도 오랜 시간을 보내며 깊어진 정성의 이름으로 다져진 인연이 듬뿍 담긴 옥고를 준 필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마음을 전했다.
한편 법산스님은 이날 출판기념에서 동국대 이사장 자광스님에게 ‘동국대 경주캠퍼스 발전기금’ 2000만원을 기탁했다. 또 서울대, 고려대 재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 인재불사행보를 이어가며 행사 의미를 더했다. 앞서 스님은 2011년 동국대 선학과 교수를 정년퇴임한 직후 동국대와 김포 중앙승가대에 각각 학교 발전기금 1000만원을 보시한 바 있다. 스님은 현재 동국대 이사와 명예교수, 동방문화대학원대 석좌교수, 동산반야회 법주, 영축통림 통도사 선덕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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