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노동위, 제주4·3사건 피해지역 순례 현장

관음사 뒷 산길로 올라가면 4·3사건에서 무장대가 쌓아올린 참호가 곳곳에 있다. 사회노동위 순례단은 이곳에서 희생당한 영가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기도를 올렸다.

‘괜히 말하지 말라…’ 숨기고 닫혀져
드러나지 않았던 제주4·3의 아픔
피해지역 살펴보고 희생된 영혼 위로
이념과 진영 넘어 4·3의 참된 이름 찾아줘야

1948년 4월3일. 그 때 제주의 봄은 유난히 잔혹했다.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를 반대하는 제주도민 500명이 경찰지서를 습격한 것이 슬픈 역사의 시작이었다. 미군정은 이를 남한노동당 지령에 따른 폭동으로 규정하고 진압에 나섰다. 국가로부터 “맘껏 죽여보라”고 지시를 받은 토벌군은 무참히 제주도민을 학살했다. 살상과 착취에 견디지 못한 민중들은 무장대에 합류해 저항하면서 싸움은 걷잡을 수없이 커졌다. 이 비극은 제주 인구 최소 10%가 사망하는 유래 없는 참사로 기록됐다.

“속심하라(제주 방언으로 '괜히 말하지 마라').” 잔인한 상황에서 산 생존자들은 당시 사건을 "말하지 말라" 배웠고 그렇게 자랐다. 아픔을 최소화하기 위한 그들 스스로의 방어책이었다. 그렇게 4·3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이제 올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제주 4·3사건은 70주년을 맞는다. 화해와 치유, 제대로 된 정의를 내리지 못한 이 사건을 다시금 살펴보고 불교계의 역할을 모색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4·3항쟁과 불교의 자취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지난 11월30일 제주를 찾은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와 동행했다.

관음사 산중 곳곳의 쌓여진 참호의 모습. 치열한 전투가 진행됐음을 예상케 한다.

제주에 도착한 사회노동위 실천위원 스님과 위원 등 10여 명은 피해지역을 둘러보며 사건의 실상을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그중 조계종 제23교구본사 관음사는 가장 타격을 많이 입은 곳이다. 주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해안가에 위치한 다른 사찰과 달리 한라산 중산간에 있는 관음사는 토벌군에게 밀린 무장대들의 마지막 보루였다. 그만큼 치열한 전투가 지속됐다고 한다. 경내 뒷 산길로 걸어가니 곳곳에 돌로 쌓은 참호가 보인다. 깊은 산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그 숫자가 꽤 많다. 무장대들이 쌓아 올린 흔적이다. 목탁소리가 적막한 산속에 고요함을 깼다.

사회노동위는 4·3사건 피해지역을 둘러보며 실상을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사회노동위 실천위원 우담스님의 집전에 맞춰 아미타 정근과 반야심경 봉독을 하며 이 곳에서 무참하게 목숨을 잃은 수많은 영가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사회노동위 실천위원 혜문스님은 “이렇게 와서 상황을 직접 보니 그동안 사건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점이 죄송스럽다”며 “제주의 아픔을 온 국민이 함께 나눠 분담해야 된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사회노동위 순례단은 절을 지키려고 목숨까지 바친 김덕수스님의 가묘가 있던 월정사를 비롯해 마을주민을 숨겨줬다는 이유로 총살당한 이성봉스님의 흔적이 있는 금붕사 등 피해가 있던 곳을 살펴보며 희생당한 영가를 축원했다.

이어 제주 메이더호텔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제주불교사연구회, 제주불교청년회 등과 4·3사건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토론이 진행됐다. 토론회에서는 “이념과 진영을 떠나 4·3사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는 내용이 골자를 이뤘다. 사회노동위 실천위원 월엄스님은 “이 사건에 대해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거나 좌·우를 구별하는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온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인간의 존엄성’ 또는 ‘행복’과 같이 양측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내용으로 풀어갈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제주 월정사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바친 김덕수스님의 가묘가 있던 곳에 영가 축원을 올리고 있다.

특히 이날 토론장에 함께 참여해 의미를 더한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사건을 바라보는 태도가 정권의 성격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꼬집었다. 이어 양 회장은 “이념의 안경을 벗고 사실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첫 발걸음”이라고 역설했다. 그래야만 아직 단순한 ‘사건’으로 남겨진 4·3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릴 수 있다는 판단이다.

토론회 모습. 이념과 진영을 떠나 4·3사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는 내용이 골자를 이뤘다.

아울러 전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 사건을 범국민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컸다. 사회노동위 실천위원 대각스님은 “예전 제주지역 사찰에서 소임 볼 때 포살로 관음사에 왔었지만 이렇게 4·3사건과 밀접한 도량이었는지 몰랐다”며 하루종일 마음이 아프다고 털어놨다. “지금도 이 사건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느낀 스님은 “묻히고 감춰진 사실을 국민들에게 많이 알리는 게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사회노동위원회는 제주의 아픔을 주제로 한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삼촌>의 문학비가 있는 너븐숭이 박물관 견학과 4·3평화공원에서 공식 헌화와 분향 등 일정을 마치고 1일 회향했다.

참호 옆에 '4·3유적'임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있지만 흙먼지로 뒤덮여 있어 글씨를 분간하기 어렵다.

제주불교도 할퀴고 간 4·3의 아픔

“소 키우는 일을 하던 마을의 목동이 하루는 소를 찾으러 가는 길에 무장한 군인들을 만났습니다. 놀란 목동은 절에 들어와서 스님보고 군인들이 지나갈 때까지 절에 있겠다고 말했죠. 스님은 단지 그 목동을 절 안에 있으라고 말했는데 무장한 토벌군들은 불순분자를 숨겨줬다는 명목으로 스님을 경내에서 총살시킵니다. 이것이 4·3사건입니다." 제주 금붕사 주지 수암스님은 본인의 외할아버지이자, 4·3사건의 피해자인 이성봉스님이 토벌대에게 총살당한 이유를 담담하게 말했다.

마을주민을 숨겨줬다는 이유로 이성봉스님은 토벌대에게 목숨을 잃었다. 금붕사 경내 이성봉스님이 총살당한 자리에서 영가축원을 올리고 있는 모습.

한국 현대사에서 비극적인 역사로 기록돼 있는 제주 4·3사건은 불교계에도 커다란 상처를 안겼다. 육지에서 떨어진 섬인 제주는 독특한 문화와 생활양식을 만들며 살았다. 특히 제주도민들은 토속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불교를 의지처로 삼으며 지내왔다. 그만큼 4·3사건의 피해가 고스란히 불교계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한금순 제주대 사학과 외래교수에 말에 따르면 4·3사건으로 제주지역 37개 부처님 도량이 피해를 입었다. 이 또한 주로 법당, 요사채, 객사 등 건물 위주로 파악했기 때문에 불상 및 탱화가 훼손되거나 사찰에 있는 재가불자들이 입은 직·간접적인 피해는 더 클 것이라는 예상이다. 관음사는 법당 등 건물 7동이 전소됐으며, 백양사 북촌포교소의 경우 사찰내 가람은 물론이거니와 불상까지 일체 전소되는 폐불(廢佛)행위가 공공연히 자행됐다. 부처님 도량이 무장대에게 이용될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소각하는 등 폐허화하는 방식을 사용했던 것이다. 이처럼 사찰 피해 대부분이 정부군과 경찰, 극우단체인 서북청년회로 구성된 토벌대에 의해 자행됐다는 것은 10·27법난 못지않게 한국불교의 수난사로 지목되는 점이다.

제주불교를 지탱하고 있던 지역 사찰 스님들도 무참히 희생됐다. 현재까지 16명의 스님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마을사람들과 함께 총살하거나 살아있는 몸에 돌을 매달아 빠뜨리는 수장까지 스님들에게 저질렀다. 당시 관음사 주지 오이화스님은 고문 후유증으로 입적했으며, 서관음사를 창건한 이세진스님은 무장대 활동을 근거로 수장 당했다. 북촌포교소 주지 김유신스님은 북촌리 집단학살시 주민과 함께 총살당했다. 이 또한 가해자는 모두 공권력을 맘껏 사용한 토벌대였다.

무엇보다 해방 이후 제주 불교계 스님들은 지역사회를 이끄는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4·3이라는 예상치 못한 태풍을 맞으며 제주불교계는 조선 숙종 시절 이형상 목사의 절 500 당 500에 이어 제2의 무불(無佛)시대를 겪게 된다.

양한웅 조계종 사회노동위 집행위원장은 이런 불교계 피해와 관련해 “이렇게 많은 사찰과 스님이 피해를 입었는데 아무런 관심을 갖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면서 “사회노동위원회를 넘어 종단 차원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과 4·3사건을 재조명하는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늦었지만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무장대 활동 경력을 이유로 수장당한 이세진 스님을 추모하는 비가 관음사 경내에 세워져있다. 이세진스님 추모비에 삼배를 올리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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