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도 줄을 쳐야 
벌레를 잡는 법, 
봉익동에 다시 대각교 
현판이 걸리면서, 아니 
삼장역회가 설립되면서 
누에가 고치를 짓듯 
백상규가 언문경전 실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어! 이거 봐라. 1년이 지나고 
2년쯤 지나니, 귀원정종, 
심조만유론, 신역대장경, 
화엄경, 금강경, 수능엄경… 

처음 듣는 책들이 줄줄이 
‘나라비’를 서 엮이어 나왔다.

한용운이 출옥했으므로 영양가 높은 식사나 대접하자. 앞날의 예상을 내다보는 생명 있는 것들이 꿈꾸는 일은 어둡지 않다. 그럼 술을 한 잔 해도 되겠습니까? 이것은 ‘오버’다. 현실계는 진실과 거짓이 오락가락한다. 그러다가 진실일 것 같은 것을 선택해 표현한다. 채끝등심에 살치 살도 괜찮겠네요! 헤아려 거짓말은 아닐 것 같은 것이 성큼 앞서 나간다. 결론을 말하면 율사이신 용성스님을 모시고 ‘멧돼지고기(猪犬)’를 먹겠다는 것이다.

이성은 이럴 때 이중화되고 탈소유화 된다. 이성은 자신이 올바르다고 믿고 있지만 그 반대일지 모른다. 지식은 영원한 빛으로 인도된다고 믿고 있는데, 어둠 속으로 또는 금지된 곳으로 들어가 유희와 광기로 나타난다. 역사가 만든 광기로 감방에 던져졌다가 나오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역사적 정신질환이었다. 감옥 속에 던져져 공포에 질린 군중들의 테러리즘 효과는 나중에 무슨 교훈을 주고, 어떤 것을 치유할 수 있게 해줄까. 한용운은 감옥문을 나오면서 무슨 말을 했을까. ‘휘파람 길게 부니, 달빛 또한 푸르구나, 어허허….’

서대문 감옥에는 야소교를 믿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나 모세의 시내산 바이블키워드에 ‘술 마시지 말라’가 빠져 있다. 그래도 야소교인들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술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맹물을 홀짝거리며 삼겹살 먹는 청승은 야소교 단체의 회식자리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일 것이다. 이게 요령이 없어서 그렇다. 종업원에게 “여기 냉수 한 잔!” 그러면 컵에 ‘코오사케’가 가득히 담겨 나온다. 그것을 모르고 “얘, 2차 가자!” 그렇다면 석가모니 자손들은 어떤가. 윗도리를 뒤로 젖히면 추리닝이 나온다. 손에 코오사케병을 들고 “이건 물이다.” 한 술 더 떠 병째 원샷을 하고 바위에다 오줌을 누면 구멍이 파인단다. 율장의 ‘율’자도 없는 일본불교가 판치는 조선에서 율사라는 게 뭔가, 코오사케는 그만 두고 입안에서 살살 녹아나는 멧돼지 ‘이노시시켄’은 구경조차 못하고 입맛만 쩝쩝 다신 뒤 각자 숙소로 돌아간 사람들이 조선 승려들이다.

한 시인은 말했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길, 청량리역에서 아스라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산책을 나왔는지 기모노를 입은 두 여자아이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조선 여인들 옷 색깔이 다채롭지 못해 은근한 조화랄까 그런 멋이 없지?”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런데 그렇지 않아. 조선의 자연을 보라구, 화창하게 갠 하늘을 배경으로 단조로운 저 들판, 허전한 저 언덕, 비어 있는 산수화의 여백처럼 무엇인가를 남겨놓아 속 다르고 겉 다른 원색의 이중성을 그 자리에 숨겨둔 것 같지 않니?”

“그렇게 생각을 하니 정말 그렇네.”

응달진 목멱산 골짝에도 빼앗긴 늙은 산 복숭아나무에 꽃이 피어 봄을 알리는구나. 딸깍발이 샌님들은 다 어디로 가고 해사하게 물이 오른 과부들만 산 복숭아향기에 치맛귀가 저절로 열려 뜨겁게 달려드는 염정성군인들 누가 마다하겠는가. 산도 빼앗기고 복숭아꽃도 빼앗긴 땅에서 과부들 설음이란 배고프면 밥 찾듯 그저 본능인 것을, 세월은 묶어놓을 수 없는 것이라 모든 것이 저절로 잊혀지고 청상의 몸뚱이는 해가 날수록 젖꼭지가 토실토실 더욱 여물어, 사립문 열어놓고 누가 올세라 젖가슴을 젖히고 애간장을 녹인다.

벌써 해가 지는지 복숭아꽃향기가 들어왔다 슬며시 나간 치맛귀로 산들바람이 스산하구나. 어느 새 교교한 달빛이 빈 사립문 앞을 비추는데, 삽살이가 미친개처럼 하늘의 달을 보고 짖는구나. 어, 저놈의 개가 내 마음을 이렇도록 알아주는가.

봉익동 2번지 새로 대각교를 건립해 현판을 걸 무렵, 빼앗긴 경성의 풍경이 이러했다. 까놓고 말해서 은엽은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부처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한데 모을 때 ‘결집’이란 말을 썼다고 한다. 또 그 때는 종이가 없던 때라 패다라니 잎사귀에 바늘로 한 자 한 자 귀중하게 새겨 넣었다는 것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조선에서도 종이가 만들어지고 붓과 먹이 생산되어 물에 젖어도 변하지 않는 먹물로 졸졸졸 부처님 말씀을 적거나 해설을 달 때는 품위를 높여 ‘사경’을 한다거나 ‘저술’을 한다는 말을 썼다.

그런데 터져 나왔다. ‘터져 나왔다’고 하니 말 맵시가 고상하지 못해 듣기에 거슬리는가. 그러면 막혔던 물목이 터졌다고 해두자. 거미도 줄을 쳐야 벌레를 잡는 법, 봉익동에 다시 대각교 현판이 걸리면서, 아니 삼장역회가 설립되면서 누에가 고치를 짓듯 백상규가 언문경전 실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은엽은 그쪽 이야기에 매우 과문했던 탓으로 야소교 성경처럼 영문을 한글로 한 두어 권쯤 써내겠거니 했다. 어! 이거 봐라. 1년이 지나고 2년쯤 지나니, 귀원정종, 심조만유론, 신역대장경, 화엄경, 금강경, 수능엄경, 금비라동자위덕경, 선문촬요, 관정복마경, 대승기신론, 금강삼매경, 범망경, 대방광원각경…, 하여간에 이름조차 처음 듣는 책들이 줄줄이 ‘나라비’를 서 엮이어 나왔다.

옛날에 석가모니는 ‘사람이 산다는 것은 성가신 일이다’ 그랬다는데, 무엇이 성가시냐는 부제가 저리도 많은가. 하이고야! 성가신 것들을 대충 챙기려 해도 저놈의 책을 다 읽기 전에 북망산에 먼저 가 누워 있을 것 같았다. 석가모니라는 사람이 웬 놈의 ‘썰’을 저리 많이 풀어 백상규를 고달프게 하는가.

언문으로 옮겨 적은 책을 밤새도록 깔고 앉아 읽어도 될뻔댁도 안 될 터인즉, 에라 모르겠다, 은엽은 제목이 귀에 익은 ‘조선글 화엄경’을 펴들었다. ‘머리ㅅ말’이라는 것이 있고 끝에 시가 한 구절 있었다.

버들은 듸루운 곧에 푸르고,

꼿비는 느진 갖이에서 붉엇도다!

백상규가 쓴 것 같은데,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시 구절이 마음을 끌어 다음 장을 넘기니, 하마터면 뒤로 나자빠져 코가 깨질 뻔했다. 웬 놈의 장광설이 저리 길게 펼쳐져 평생을 읽어도 못다 읽을 것 같았다.

은엽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세간임군묘한장엄 품 첫재’부터 읽어나갔다. 솔직히 말하면 의학서적을 읽을 때처럼 긴장되지는 않았다. 백상규한테는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책을 몇 장 넘기지 않아서 졸음이 왔다. 이래서는 안 되지, 손바닥으로 눈을 싹싹 비비고 다시 시선이 글줄을 쫓는데, 이상한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땅이점점 불끈 솟처서 일어나며 두루일어나며 넓게 두루일어나며 땅이홀연히솟처나며 두루솟처나며 넓게두루솟처나며 은은히 울이여나는 소리가 떯이며 넓게두루떯이며…’

햐! 이게 무슨 소린가. 부처가 불가사의한 힘으로 세상을 흔드는데, 이렇게 흔들었다는 것이다. 이거 어디 소름이 끼쳐서 읽겠나, 그래도 계속 읽어 내려가다가 낚시 바늘에 코가 꿰이듯 탁! 꿰이는 데를 만났다.

‘…일체국토가한국토로들어가고 한국토가일체국토로들어가며 한량없는부처님나라가 넓게다청정하며광명의꺼리로써어서장엄하며….’

늙어서 된서방을 만난다더니, 의학 서적이지만 그동안 영어로 된 것, 한문으로 된 것, 일본말로 된 책들을 읽어왔지만, 모든 나라 땅이 한 나라 땅으로 들어가고, 한 나라 땅이 모든 나라 땅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처음 들어보았다. 그러면 일본 사람들이 모든 나라 땅을 제 나라 땅으로 만들겠다는 것인가. 아니지, 이것은 역사책이 아니라, 석가모니께서 ‘썰’을 풀어놓은 화엄경이라는 책 아닌가. 어리 짐작컨대 석가모니처럼 도를 통하면 세상이 허공처럼 뻥 뚫려 거치적거린 것이 없다는 것은 이해가 갔다. 바람도 거치적거리지 않고 구름도 거치적거림이 없이 이 땅덩어리가 저 땅덩어리 속으로 들어가고 저 땅덩어리가 이 땅덩어리 속으로 들어가고…, 삼각산 바람이 제멋대로 오르락내리락한다는 것인 바, 그렇다면 칠월 신선에 구시월 배 놈이란 말도, 곧은 낚시로 낚시질하는 강태공도 말짱 미친 소리라는 것 아닌가. 야—! 이제 보니 석가모니란 사람 ‘뚝감자’ 아닌가. 이거 말이지 황해도 배뱅이굿 방터리 무당이나 할 소리 아닌가.

[불교신문3350호/2017년12월2일자]

글 신지견 그림 배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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