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경전결집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용맹정진 끝에 깨달음을 이루어
500아라한이 모여 있는 칠엽굴로 들어간
아난다 존자는
“여시아문, 나는 부처님께
이와 같이 법문을 들었사오니 일시에…”
라고 경을 송출하였다.
또한 모든 계율은 우바리 존자가 송출하였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그 해 6월에 라자가하의 칠엽굴에서 마하카샤파를 중심으로 500아라한이 모여 첫 번째 경전 결집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즉 팔만대장경이 세상에 탄생한 시초이다. 경전을 외워내는 사람은 25년 동안 부처님의 시자로 부처님의 설법을 다 들은 아난다 존자가 최적임자였지만 그때까지 깨달음을 얻지 못하여 경전의 송출을 할 수가 없었다. 아난다 존자는 용맹정진 끝에 진리를 깨달아 칠엽굴로 들어갔다. 이때 상수제자 마하가섭 존자께서 아난다 존자에게 법좌에 오르시기를 권하여 좌정하니 그때 그곳의 500아라한들은 다시 세존(부처님)을 뵈옵는 듯한 감동이었다. 가섭 존자께서 큰 소리로 “아난다 존자는 경을 송출하고 우팔리 존자는 율을 송출한다.”고 선언하니 아난다 존자가 장엄한 목소리로 ‘여시아문,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팔만대장경의 모든 경전 첫머리에 이 말씀이 나와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루어졌다.
부처님의 열반과 경전 결집
어느 때 부처님께서 쿠시나가라 성의 말라 동산에 있는 사라 나무 사이에서 열반에 드셨다. 그때에 말라 족사람들이 부처님의 시신(사리)을 깨끗이 씻어서 깨끗한 솜으로 싸고, 다시 500장의 겹으로 차곡차곡 싼 뒤에 쇠로 관을 만들어서 향기로운 기름을 가득히 담고 시신을 그 안에 모신 뒤에 뚜껑을 덮었다. 그리고 다시 나무 곽을 만들어서 쇠관을 그 안에 넣고, 그 밑에는 향기로운 장작을 많이 쌓았다.
그때에 말라 족 대표자가 불을 붙였는데 하늘이 그 불을 끄자 다시 말라 족 아들들도 차례차례 모두 불을 붙였으나 하늘은 또 그 불을 모두 껐다.
헛수고를 하지 마라
그때에 아나율 존자가 말라 족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렇게 헛수고를 하지 마라. 하늘이 그대들의 불을 끄는 것이다.”
그들이 곧 아나율 존자에게 물었다.
“대덕이시여, 하늘이 왜 우리들의 불을 끄는 것입니까?” 하니 아나율 존자가 대답하였다.
“마하가섭 존자가 지금 파바와 쿠시나가라 성 사이에서 대비구 500명과 함께 오고 있는데 그가 생각하기를 ‘나는 부처님의 시신을 다비(화장)하기 전에 친견하여야 하겠다’ 하니 하늘이 가섭의 마음이 이러함을 아는 까닭에 불을 끄는 것이오.”라고 하였다. 말라 족의 아들들이 말하였다.
“대덕 아나율이여, 그렇다면 잠시 멈추어서 하늘의 뜻을 이루게 하겠습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지 7일이 되었는데…
그때에 마하가섭이 쿠시나가라 성을 향해 오면서 꽃을 들고 길을 가는 사람을 만나 세존의 안부를 물으니 그가 대답했다.
“지금 세존께서는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이미 열반에 드신 지 7일이 되었는데 저희들이 거기에서 이 꽃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때에 마하가섭이 이 말을 듣고 슬퍼하였고 어떤 비구는 땅에 쓰러지고, 다른 비구들도 땅에 쓰러져 말하였다.
“부처님의 열반이 어찌 그리 빠르신가?” 하고 통곡하였다.
경전 결집의 동기
그때 발난타 비구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스님네들이여, 울음을 그치시오. 너무 근심 걱정을 하지 마시오. 우리들은 마하라에게서 해탈을 얻었는데, 그가 살아 계실 적에 여러 차례 우리들에게 가르치시기를, ‘이는 마땅하고 이는 마땅치 않다. 이는 해야 하고 이는 하지 말아야 한다.’ 하셨으니, 우리들은 이제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것은 하고,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소.”
그때에 마하가섭이 이 말을 듣고 슬퍼하면서 500비구들에게 길을 재촉하였다. 빨리 가면 부처님의 시신을 다 태우기 전에 뵐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부지런히 걸어서 마침내 열반지에 도착하였다. 마하가섭이 아난다에게 말했다.
“아난다여, 나는 세존의 시신을 다 태우기 전에 뵙고자 하오.”
아난다가 말하였다.
“곧 다비(화장)가 시작되기 직전이어서 아마 어려울 것입니다.”
그때 마하가섭이 부처님 다비장에 이르니 세존의 관과 곽이 저절로 열리면서 부처님의 두 발이 쑥 나왔다. 마하가섭 일행이 부처님의 두 발에 예배를 올리니 저절로 두 발은 관 속으로 들어가고 불이 붙어 화장이 되었다. 부처님의 다비를 마치고 나서 마하가섭 존자는 발난타 비구의 발언에 대하여 우려하며 어서 빨리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아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경전과 율장을 결집해야 외도들이 “사문 고타마의 법과 율은 연기와 같다. 그가 살아 있을 때는 제자들이 가르침과 계율을 배우더니 이제 죽고 없으니 계율을 배우는 이가 없구나. 하지 못하게 되겠소.”라고 비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제1차 경전 결집 - 500 아라한
“여러 비구들이여, 이제 잘 생각해서 들은 것이 많고 지혜롭고, 아라한인 비구를 추천하시오.”
그때 비구들이 499명을 뽑았는데 모두가 아라한이고 들은 것이 많고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다. 이때에 비구들이 말하였다.
“아난다는 수효에 채우자.”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마하가섭이 반대했다.
“아난다를 수효에 채우지 마시오. 왜냐하면 아난다는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했소. 그러므로 수효에 채워서는 아니 되오.”
그때에 비구들이 다시 말했다.
“아난다는 부처님의 시봉을 25년이나 한 사람으로서 항상 부처님을 따라다녔고, 부처님께 친히 가르침을 받았소. 그는 분명히 곳곳에서 의심되는 것을 세존께 물었을 것이니, 그러므로 이제 반드시 수효에 채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난다를 수효에 넣었다. 아난다는 법이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용맹정진 끝에 깨달음을 이루어 500아라한이 모여 있는 칠엽굴로 들어갔다.
깨달음을 얻고 들어오는 아난다에게 마하가섭이 자리를 권했다.
“아난다 존자시여! 이 높은 자리에 오르시지요.”
대중을 향하여 아난다 존자는 경을 송출하고, 우바리 존자는 율을 송출하였다.
여시아문(나는 이와 같이 들었사오니)
칠엽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약간 어두운 칠엽굴 법좌에 오른 아난다를 보고 500대중은 다시 부처님을 뵈옵는 것처럼 감동하였다. 그리고 대중들은 세 가지 의심을 하였다.
첫째는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이 다시 살아오신 것인가?
둘째는 타방 부처님이 오셨는가?
셋째는 아난다 존자가 진리를 깨달아 오셨는가?
그때 아난다 존자는 “여시아문(나는 이와 같이 들었사오니), 나는 부처님께 이와 같이 법문을 들었사오니 일시에(어느때에)……”라고 경을 송출하였다.
대중들의 의심은 풀렸고, 아난다 존자는 팔만대장경 법문을 다 외워 내어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 세상에 전해 지도록 하였다. 또한 모든 계율은 우바리 존자가 외워 내었다. 그리하여 500아라한 대중은 중인도 마가다 국 라자가하 동북쪽에 솟아 있는 기사굴산(영취산) 칠엽굴에서 마가다 국 아사세 왕의 후원으로 제1차 경전 결집을 하였다.
그래서 이 세상에 거룩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2,600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우리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그날의 경전 결집이 있었기 때문이니, 불교사에서 부처님의 성도 이후 가장 거룩한 장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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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3338호/2017년10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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