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제일’로 널리 알려진 신임 원로의장 세민스님은 조계사 해인사 주지 등을 역임하며 기도가 끊이지 않은 도량을 만들어가는 한편 불사에도 남다른 능력을 보여왔다.

“중생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기도”
도심포교에 한 획 그은 ‘염불제일’

신임 원로의장 세민스님

조계사 주지 재임 시절
삼오모텔 등 부지 매입
총본산성역화 기초 마련

소실된 원심원사 복원
통일에 대한 염원 반영


조계종 신임 원로의장 세민(世珉)스님<사진>은 평생을 수행과 포교에 매진해온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선지식이다. 스님의 은사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제32대 총무원장을 역임하고 당대 대강백으로 존경받던 지관스님이다. 은사 스님의 원력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세민스님은 출가 이후 종단 안팎의 주요 소임을 두루 거치며 종단 안정과 화합에 누구보다 앞장섰다.

해인사승가대학을 마치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한 세민스님은 제8~10대 중앙종회의원을 비롯해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동국대 선학과 강사, 해인총림 해인사 주지, 서울 경국사, 순천 선암사 주지 등을 역임하고 2012년에 원로의원으로 선출됐다.

세민스님은 특히 조계사 주지 재임기간 동안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도량으로 위상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후손들에게 훌륭한 문화유산을 남이 남겨줄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경내 인근 삼오모텔을 매입해 총본산 성역화 불사에 초석을 놓았으며, 2009년 경내 부처님 진신사리탑과 사적비를 새롭게 조성해 한국불교 총본산으로서의 위상을 드높였다. 스님은 조계사 주지 재직시절인 2010년 1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도 성역화 불사에 대한 남다른 원력을 드러냈다.

“하루 평균 600여 명의 외국인이 조계사를 찾아 한국불교를 엿보고 있지만 대웅전 앞 임시법당과 가건물인 종무소 건물은 너무나 부끄럽기 짝이 없을 지경입니다. 성역화 불사가 원만하게 회향된다면 조계사가 불자에게는 신행의 장이 되고 일반인에게는 언제든지 편하게 찾을 수 있는 도심 속의 휴식의 장, 외국인에게는 한국의 전통불교문화를 엿볼 수 있는 체험하는 장이 될 것입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신도와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지론에 따라 사찰재정 투명화를 통한 열린 종무행정 구현에도 박차를 가했다. 이를 위해 불전함과 불교용품점 등을 통한 사찰의 수입과 지출 등 모든 재정정보를 신도회와 공유하기로 했으며, 사찰 운영위원회에 스님뿐만 아니라 신도회 회장단을 참여시켜 열려있는 종무행정 실현에 앞장섰다. 각종 법회도 활성화해 기도와 염불이 끊이지 않는 도량으로 가꿨다.

세민스님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경기도 연천 원심원사 복원에도 매진했다. 신라 진덕여왕 원년인 서기 647년 창건돼 6ㆍ25한국전쟁으로 소실되기까지 1300년의 역사 동안 신라의 범일국사 조선의 무학대사 등 수많은 선지식을 배출한 도량이다.

세민스님은 이러한 위엄이 깃든 도량을 손수 복원하고 가람 수호에 진력했다. 원심원사는 분단 이전 경원선이 지나기도 했으며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 통일에 대한 스님의 염원 또한 예사롭지 않다. 앞서 2000년 9월부터 2004년 10월까지 해인사 주지로 네 번의 겨울을 나면서 겪은 고충은 일반 재가자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 팔만대장경을 동판으로 새겨 판전을 새로 짓고 신행문화도량을 조성해서 법보사찰의 위용을 지켜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천도재를 두고 세간에선 말도 많지만 재(齋)에 대한 스님의 견해는 남다르다. 이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도 잘 드러난다.
 “수행자로서 참선도 하고 경(經)도 읽으며 본분을 다하고 살지만, 내게 있어 뭇 중생을 천도하는 그 자체도 수행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남을 위해 기도하고 불공하고 제사를 지내주며 살았지만, 단 한 번도 그러한 의식이 남의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참선과 염불, 주력 모두가 방편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지요. 삿된 마음을 가지면 천도를 해도 소용없지요. 바른 마음과 바른 생각을 지니고 청정한 수행자로서 혼신을 다해 천도를 하면 그것이 바로 너와 나를 위한 상생의 천도가 되는 법이지요.”

뭇 중생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기도한다는 세민스님의 법문에서 종단을 대표하는 어른 스님으로서의 면모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참선으로 대중포교…수좌 ‘모범’

수석부의장 대원스님


대원(大元)스님<사진>은 종단을 대표하는 수좌(首座)다. 공주 학림사를 창건하고 오등선원을 열어 출재가 수행자들을 오랫동안 지도해왔다.

스님은 일제강점기 한국불교의 중흥을 위해 헌신한 용성스님의 법손이다. 용성스님의 제자로 제3·4대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고암스님의 법을 이었다. 고암스님이 중국 당나라 마조도일(馬祖道一) 선사의 공안(公案)을 제시하자 다음과 같은 오도송으로 현량(現量)을 드러내보였다.

“홀연히 잣나무 꼭대기에서 손을 놓고 반걸음 나아가라는 말을 듣고/ 확연히 의심 덩어리가 녹아 깨달았네/ 밝은 달은 홀로 드러나고 맑은 바람은 새로운데/ 늠름히 비로자나 이마 위를 활보함이로다.” 이에 고암스님은 대원스님에게 전법게와 함께 학산(學山)이란 법호를 내렸다.

임제의현 선사를 중심으로 한 중국 조사선의 가풍을 계승한 대원스님은 스스로 정진하면서 참선을 매개로 활발한 대중포교를 전개했다. 당신의 원력의 공간은 학림사다. 학림사(學林寺)는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계룡산 자락에 위치했다.

학림사 뒤편의 주봉은 계룡이 날개를 펴고 승천하는 듯한 모습으로, 1986년 대원스님이 대중포교를 위해 옛 제석사 절터에 기틀을 다시 세웠다. 이후 1995년 오등선원(五燈禪院)을 개원해 후학들을 제접하고 있다. ‘오등’이란 <전등록> <광등록> <속등록> <연등회요> <보등록> 등 다섯 개의 어록을 묶은 선가(禪家)의 고전인 <오등회원(五燈會元)>에서 유래했다. 청정하고 신령한 땅에 자리한 참선수행의 도량에는 매년 안거마다 수십 명의 납자들이 찾아와 목숨을 건 화두정진에 임하고 있다.

오등선원은 동안거 100일 용맹정진으로 유명해졌다. 무려 100일 동안 한숨도 자지 않으면서 화두를 참구한다. 대원스님은 납자들과 함께 목숨을 건 도전에 동참한다. 더불어 공부하면서 틈틈이 소참법문으로 깨달음으로 가는 바른 길을 제시한다. “한철 공부하고 밖에 나가 만행을 한다는 건 10년 20년을 해도 기약 없는 일이 되고 만다.” “하루 24시간 행주좌와 화두일념을 지향하라”는 가르침에는 고결한 선승의 향기가 묻어난다. 

끊임없는 수행…‘인욕’ 본보기

원로회의 차석부의장 원경스님

원경(圓鏡)스님<사진>은 수행의 힘으로 ‘한(恨)’ 많은 삶을 묵묵히 이겨내며 견뎌왔다. 어쩌면 출가자로서의 삶보다 남과 북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비운의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정 박헌영(1900~1955)의 아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만큼 스님의 일생 역시 순탄치 않았다. 반공이 국시였던 시절, 월북한 공산주의자 박헌영의 아들로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가슴 아픈 가족사를 수행의 원동력으로 승화시켰다. 1960년 인천 용화선원에서 수선 안거한 이래 제방선원에서 참선수행으로 버텼다. 참회기도와 하루 3000배씩, 1년에 100만배를 부처님께 올리며 가슴 깊이 박혀 있는 원한이라는 감정을 희석시켰다. 이후 부친에 대한 자료를 찾기 시작하며 2004년에는 10여 년간 모은 자료를 정리해 <이정 박헌영 전집>을 발간했고, 박헌영 선생의 진면목을 알리기 위해 <만화 박헌영>도 제작했다.

원경스님은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세상의 차디찬 시선을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왔기에 ‘남을 인정하고 베풀 수 있는 사회’를 발원했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함께 화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 스님의 바람이 현 종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수동적인 수행관에서 벗어나 끊임없는 수행을 당부했다. “죽을 때까지 수행하고 구도해야 하며, 죽기 전에 한 생각을 어떻게 챙기고 가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수행에 대한 올바른 견해는 후학들과 불자들의 귀감이 됐다. 이밖에도 동국대 불교대학원 사회복지학과를 수료한 이후 자비행에 앞장서 실천했으며, 경기도 지방경찰청 경승 등을 역임하며 지역 포교 활성화에도 앞장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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