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 : 용성진종장학재단(총재 도문)

 

감옥에서 나온 용성은 
한문으로 된 불교를 누구나 
알기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삼장역회’를 조직해 
번역에 손댈 생각을 했다. 

일본사람 세상에 
한숨만 내쉴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가다듬고 겨울에 
‘법망경연의’ 번역을 시작했다. 
그리고 5월에 끝을 냈는데, 
그것도 무슨 자랑이라고 
동아일보 사설에 
평이 올라왔다. 

‘종교 새 생명의 탄생’이라나… 

‘나라말이 한문이라 백성들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못 한다’ 그래서 훈민정음을 만들었는데, 중국 문자에 장아찌가 되어버린 조선 양반들이 굶어도 흰쌀밥을 굶겠단다. 그래서 한문은 진서, 한글은 언문, 암클, 개글, 아햇글이라 하여 빨래터에서 강아지하고 같이 놀게 놓아두었다가 400여년이나 사용을 금지했다. 바로 이럴 때 제국주의 국방색 군복을 입고 출입증 없이도 어디든 통행이 허용된 자들에게 글자는 모르지만 말은 조선말을 쓰는 나라를 빼앗아갔다. 사람들은 여기에 빌붙어 수박 속처럼 불그스름하게 물이 들어, 일본 놈은 ‘오야붕’, 조선 놈은 ‘꼬붕’을 자처하고 일류호텔이나 유흥가에서 ‘츠카이’를 하느라 날이 새는 줄 몰랐다. 길거리에 줄줄이 늘어선 조선 사람 비석이 중동이 부러져 없어져 버렸고, 친일 간나웨들 동상이 그 자리를 메워 하나의 나라가 두 조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용성이 서대문 감옥에서 보니 야소교를 믿는 사람들은 참 괴상한 사람들이었다. 바깥세상이 ‘사바사바’로 뱅글뱅글 잘 돌아가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범어도 같고 빨리어도 같은 꼬부랑꼬부랑 서양말을 아햇글 언문으로 번역해서 열심히 읽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그런가보다 했더니, 나중에는 큰 충격이 되어 돌아왔다. 어찌 저 사람들은 양반 글인 한문으로 번역하지 않고 상놈 글인 개글로 번역해서 읽는가.

하긴 한문에는 관용어가 많다. 그걸 죄다 꿰면 유식하다는 소리라도 듣는다. 속으로는 어쩐지 몰라도 야소교 믿는 사람들을 겉으로 보면 유식하다는 말은 사돈네 쉰 떡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더라도 앞마당에 달빛이 내리면 처녀가 총각 손을 잡고 풀벌레가 찌르르 노래하는 한구석으로 가 겉으로는 겨드랑이가 자꾸 조이지만 속으로는 두근두근 입술을 깨물며 버티고 버텨도 기어이 입술을 맞추고 싶어 혼을 빼는 그것, 풀벌레가 울다 그치면 기생 속치마 부스럭거린 소리가 들린다. 살랑살랑 간질이는, 영사시(詠史詩)는 그 사이에도 있는데, 야소교를 믿는 사람들은 그런 것에는 통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저 사람들이 ‘사미십계의칙경’은커녕 사미십계도 잘 모를 텐데 무슨 생각을 하느라 저럴까. 하느님이 생명을 내미는 손가락을 아담이 손가락으로 받는 그것을 보느라 저러는가. 용성은 번뜩 ‘오동잎 떨어지는 것을 보니 가을이 온 것을 안다’는 명나라 왕상진의 ‘군방보(群芳譜)’에 있는 구절이 떠올랐다. 세상이 갈수록 과학이다, 철학이다, 경제다, 정치다 숨 돌릴 틈이 없이 빠르게 돌아가는데, 누가 엉덩이뼈가 물렁물렁 내려앉도록 어려운 한문을 배워 왕상진의 식물도감에나 나오는 오동잎 떨어지는 것을 생각이나 하고 있을까.

빠르기로 말하면 불교는 전광석화다. 즉심시불이라, 고개만 들면 하늘이 마음이다! 어떤 수좌가 백림사로 조주화상을 찾아갔다. 법당 앞에 잣나무를 보고 있는 조주선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깨달음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다.”

간단했다.

어떤 수좌가 동산양개화상을 찾아갔다. 화상이 창고에서 저울로 삼을 달고 있었다.

“어떤 것이 깨달음입니까?”

“삼 서 근이다.”

묻기 바빴다.

그런데 성질이 거칠고 팔팔 날아갈듯 날뛰든 것들이 절망적으로 달라져 ‘머무름 없이 초월해 가면 매가 비둘기를 낚아채듯 사람들 콧구멍도 뚫을 것 같고, 머물러 매이게 되면 거북이 껍데기 속에 숨겨져 자기 목숨이 다른 생명의 손아귀에 들어가 먹잇감이 될 같았다. 어떤 사람이 추월하지도 머물지도 못하면서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면, 틀림없이 귀신 굴에 산다는 말이 나올 듯했다. 이런 환장할 환경, 이런 환장할 순간에 무슨 끄나풀이 있어 무슨 원오극근스님 같은 이가 말없이 앉아 있다가 거기에 어떤 조례가 있으면 조례에 따르고, 조례가 없으면 관례에 따르겠다고 혼(魂)이라도 청해봐라.

그래서 덜렁 물었다.

“어떤 것이 깨달음을 뛰어넘고 조사를 건너뛰는 것입니까?”

운문선사가 대답했다.

“호떡!” 

중국에서는 호떡을 ‘shobing()’으로 발음한다. ‘사오빙!’해보니, 조선말의 ‘입천장소리되기’처럼 비잉! 하면서 혀끝이 위로 올라가 딱 붙듯이 소리를 낸다. 왜 사오빙인가. 말을 못하게시리 호떡으로 주둥이를 탁! 둘러씌워 막겠다는 것인가. 하긴 말이라는 것이 필요 없다. 조금만 한적하고 조금만 인적이 드물면 싸가지 없는 일본남자들 손가락 호강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산 살구 지레 터지듯 치마만 둘렀다 하면 처녀든 각시든 끌고 가 ‘히야까시’ 수준이 미친 개였다. 자청해서 걸레쪼가리 하나 걸치지 못하게 해, 주물러 대는 곳이 은밀하고 고요한 곳일 터, 알코올 쇼크사에 이르러야 멈추어진다. 어떻게 해야 이렇게 싸가지 없는 일본사람 세상이 새 호롱불을 켠 것처럼 깔끔하고 청결하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감옥에서 나온 용성은 한문으로 된 불교를 누구나 알기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삼장역회(三藏譯會)를 조직해 번역에 손을 댈 생각을 했다. 모모 알 만한 사람들과 찬동한 사람들을 모아 협의했으나, 변화의 속도가 빨라 어제 다르고 오늘이 달랐다. 비 오는 것은 십 리마다 다르고, 바람세는 것은 백 리마다 다르다고 했다. 뿌리가 다르면 줄기가 다르고, 줄기가 다르면 가지가 다르다. 감방 가서 3년 보낸 것이 나막신 신고 돛단배 빠르다고 원망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촌년이 아전 서방을 두니 초장에 길청 문밖에서 갖신 사 달라 한다한다더니, 3년 동안에 중들도 술에, 고기에, 운이 좋으면 마누라를 두엇씩 거느리고, 길쭉한 담뱃대에 에헴! 에헴! 코를 킁킁거리는 세상이 되었다. 이것을 일러 ‘화서지몽(華胥之夢)’이라하던가, 원래 공정한 이치는 인심에 있다 했거늘!’ 얼른 손을 내저어 눈앞을 쓸어버렸으나, 한문을 잘 한다고 해서 불교를 잘 안다고 할 수도 없다. 세존께서 손가락으로 딱 짚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이냐, 여기에 오뉴월 녹두 깝대기 터지듯 정신을 바짝 차리면 만불실일(萬不失一)이리라.

용성은 일본사람 세상에 한숨만 내쉴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가다듬고 겨울에 <법망경연의> 번역을 시작했다. 그리고 5월에 끝을 냈는데, 그것도 무슨 자랑이라고 동아일보 사설에 평이 올라왔다. ‘종교 새 생명의 탄생’이라나. 뭐라나, 앗다! 까치 뱃바닥 같은 소리로 지면이 환했다. 어떻든 그런 칭찬이 한 몫 끼어 될 성싶지 않던 ‘삼장역회’가 1921년 8월에 설립되었다. 그래서 이리 바쁘고 저리 바쁘던 늦가을에 징역살이를 같이 한 용운이 찾아왔다.

“사형님 그 연세로 징역살이 하고도 글자가 뵙디까?”

동아일보에 나온 기사를 보았다는 말 같았다.

“아니 자네 언제 나왔나?”

용성이 벌떡 일어서 두 손으로 몸뚱이를 끌어안으니 용운이 등에 깍지를 껴 용성을 불끈 들어올렸다.

“허허, 이 가벼운 몸뚱이로 조선 땅덩어리를 도로 찾겠소?”

“감방에서 언제 나왔냐니까?”

“사형님 나가시고 몇 달 더 버텼더니, 시간이 됐다고 나가라고 합디다.”

용운은 감옥에서 나온 사람 같지 않게 건강해 보였다.

“홍성 대추나무 몽둥이가 맞긴 맞는가 보군?”

용운의 고향 대추나무에 건강을 빗댄 말이었다.

“홍성은 대추나무가 무쇠덩이오!”

용성이 인부들을 데리고 새로 구입한 봉익동 2번지 주택을 대각교당으로 개축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또 대각교당이요?”

“서대문 벽돌집에서 나오니 잠 잘 방이 없어져 버렸네.”

“한심스럽기는…, 회광이는 대련이한테 밀려나 송병준하고 악수 한 번 하고, 해인사 돈으로 덕수궁 선원전(璿源殿)과 사성당(思成堂)이 자리한(정동 1-24번지 일대, 현 미국대사관 부대사 관저) 땅 7800평을 사 ‘해인사중앙포교소’를 세워 낙성식을 했소이다. 그런데 사형님은 이 무슨 짓이오?” 

부러 해본 소리였다.

“그러면 명고축출(鳴鼓逐出)된 강대련은 어떠한고?”

강대련으로 말하면 ‘불교계의 대악마’라고 쓴 표식을 단 장대를 들고 북을 둥둥 두드리며 거리를 행진했던 것을 말한다. 친일승려 강대련은 당시 각황사에서 종로거리를 오가며 명고축출 당했다.

“요즘은 친일이 벼슬로 바뀌어 ‘명고산인’이라 한 답니다.”

“허허허!

용성이 껄껄 웃었다.

“상주하고 제삿날 다툰 사람이구먼.” 

[불교신문3348호/2017년11월25일자] 
 

글 신지견 ·그림 배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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