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돕기와 군포교 매진 ‘자비실천’ 도량

양주 석굴암은 매년 단풍음악제를 개최하며 불자는 물론 주민과 등산객에게 불음을 전하고 있다. 독거 어르신과 청소년 장학금 지원사업도 꾸준히 펼치고 있다.

동암, 초안스님 뜻 이어
도일스님 중창불사 정진
전국제일 나한기도 도량

서울과 경기도를 이어주는 관문 가운데 하나가 우이령이다. 소 귀 모양을 닮았기에 붙은 이름이다. 도봉산 서쪽 다섯 봉우리 가운데 남쪽에 있는 관음봉(觀音峯) 중턱에 자리한 양주 석굴암(石窟庵). 북한산과 도봉산이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 환경이 전국 제일의 명승지를 자랑한다. 중생의 소원을 들어주는 나한(羅漢), 관세음보살과 인연 있는 석굴암(주지 도일스님)은 어려운 이웃을 돕고 군장병을 후원하는 등 자비의 손길을 골고루 전하고 있다.

“서울 근교에 이렇게 아름다운 절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매주 등산을 겸해 참배하는 선영옥 씨는 마음이 편해진다며 석굴암 매력에 푹 빠졌다. 20여 년간 신행활동을 하는 조길수 신도회장 부부를 비롯한 신도들도 석굴암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1968년 1월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무장간첩이 청와대를 습격할 당시 침투로로 사용한 우이령은 오랫동안 폐쇄됐다. 지난 2009년 7월 우이령 길이 개방되면서 사람의 손길이 묻지 않은 아름다운 경관이 입소문을 타며 탐방객의 발길이 늘고 있다. 그곳에 석굴암이 있다. 국립공원, 군사보호구역, 자연생태 1급 지역, 그린벨트 보존 지역 등 삼중사중의 외적 제한이 있었지만 석굴암은 꾸준히 중창불사를 진행하는 동시에 지역의 어려운 이웃과 인근 군부대 장병들을 후원하는 역할을 묵묵히 실천하고 있다.

매년 가을,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면 불자와 주민, 등산객을 초청해 개최하는 ‘단풍음악제’가 대표적인 나눔 행사이다. 단순히 공연만 즐기는 자리만은 아니다. 평소 스님과 신도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보시금을 이웃들에게 전달해 회향하는 나눔의 법석이다. 이날 소년소녀가장이나 독거노인 등 따뜻한 온정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쌀이나 연탄을 선물한다.

북한산과 도봉산이 외호하는 석굴암에 눈 내린 모습

석굴암 주지 도일스님은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해 예전에 비해 살림살이가 좋아졌지만 아직도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적지 않다”면서 “형편이 좋지 않은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는 것은 곧 부처님 자비를 실천하는 일”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석굴암은 양주시 관내에 거주하는 독거 어르신과 결손 가정에도 2006년부터 매년 1000만원의 후원금을 기탁하고 있다.

휴전선과 가까운 경기도 북부와 서울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에 해당하는 양주에는 군부대가 많다. 수도 서울을 방어하는 최전선이기 때문이다. 석굴암을 중창한 초안(超安)스님은 조국 수호의 첨병 역할을 담당하는 군장병의 사기 진작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전쟁 당시 참전해 부상을 입은 상이용사 출신인 초안스님은 1군단, 30사단, 72사단, 90여단, 92여단 등 군부대 법당 건립을 후원하고 법회를 지원하는 등 군포교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뜻을 상좌인 현 주지 도일스님이 계승해 매년 빠짐없이 군법당 지원과 후원을 이어가고 있다. 도일스님은 “국가의 안위를 책임지기 위해 국방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장병들의 사기가 높아야 한다는 것이 은사스님의 뜻 이었다”면서 “뜻을 온전하게 계승하는 것을 도리로 여기고 군법당 후원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일스님은 30사단 법당 건립 후원, 1군단 법당 전각 3곳 단청 지원, 30사단 군인가족 서예 지도 등 다양한 군포교 활동을 펼쳐 1군단장 감사패 등 부대장 공로패를 수차례 받았다.

석굴암은 1998년부터는 지역의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가운데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을 선발해 장학금도 전달하고 있다.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미래를 개척하려는 청소년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지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인재불사의 소중함을 강조한 선대 스님들의 원력을 계승한 것이다.

석굴암 도량 전경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나 신라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화가 전하는 석굴암은 고려말에 나옹스님이 3년 기도를 하고, 조선시대에는 단종비 정순왕후의 원당(願堂)이었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사세가 쇠락한 것을, 용성(龍城)스님 제자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동암(東庵)스님이 상좌 초안스님에게 중창 불사를 권하면서 새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소실된 석굴암은 석굴(石窟)과 아미타불좌상, 지장보살좌상, 나반존자좌상, 수구성취다라니경(隨求成就陀羅尼經)이 폐허 속에 파묻혀 있었다. 석굴만 덩그러니 남았다. 거처할 곳이 없어 움막을 짓고 생활했던 초안스님은 “시은(施恩)에 보답하는 길은 석굴암 중창불사를 원만하게 성취하는 것”이라고 발원했다. 초안스님은 각고의 노력 끝에 502.5㎡(152평)를 매입해 중창불사의 씨앗을 뿌렸다. 석굴 옆에 제비집 같은 조그만 법당겸 요사를 만들었다. 산길을 따라 지게로 물품을 옮기며 겨우 불사를 할 수 있었다.

지금의 사찰 부지는 1993년 9월 10일 18세의 도일스님이 송추에서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후 받은 보상금을 다른 데 쓰지 않고 임야를 매입한 것이 기초가 됐다. 초안스님과 도일스님이 부지를 매입하며 중창불사를 차근차근 이었다. 형편이 어려웠지만 초안스님은 자비행을 멈추지 않았다. “절 살림이 어렵지만 군법당 후원과 인재불사는 해야 할 일”이라는 원력 때문이었다.

이 뜻은 상좌 도일스님에게 그대로 이어져 중창불사를 진행하는 동시에 보살행을 실천하고 있다. 도일스님은 지난 2001년 사찰 임야 1만9835㎡(6000평)과 다른 이의 임야 6만6115.7㎡(약 2만평)를 맞바꾸면서 도량을 확장하고 불사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초안스님이 1954년 중창불사를 시작한지 60여년 만에 사격(寺格)을 일신한 것이다.

도일스님은 “노스님 동암스님과 은사 초안스님은 국가와 불교의 미래를 위해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원력을 갖고 계셨다”면서 “도량에 전각을 세우고 불상을 모시는 불사와 함께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량(棟樑)을 양성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잇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주 석굴암 주지 도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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