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까지 부부로 윤회하고 싶다면…

 

“두 사람이 같은 믿음을 지니고
훌륭한 덕목을 잘 지키고
훌륭한 이들에게 보시하는 것도
지혜도 같아지도록 노력해야 
원하는 소원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들은 후에도
노부부는 변함없이 날마다
베라깔라 숲을 찾아왔다

수행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걸었고 
부처님과 스님들이
경행을 하는 길을
조심스럽게 청소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 

부처님께서 숭수마라기리 부근의 베라깔라 숲에서 머물고 계실 때였다. 어느 아침, 탁발을 위해 성안으로 가신 부처님께서는 머리가 하얗게 센 노부부를 만났다. 다정하게 손을 꼭 잡은 채 서로를 의지하며 걸어가던 이들은 부처님을 뵙자마자 달려왔다. 그리고는 부처님의 손을 잡으며 ‘나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스스럼없는 노부부의 행동에 제자들이 놀라자 부처님께서는 이들이 과거 500생 동안 자신의 친부모님이었다고 말씀하셨다. 부처님을 처음 뵌 날 공양을 대접한 노부부는 그날 이후 날마다 베라깔라 숲을 찾았다. 스님들은 어느 덧 노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부처님을 뵈러 오는 것에 익숙해졌다. 

부부를 위한 부처님의 말씀 

어느 저녁, 평소처럼 베라깔라 숲을 찾은 노부부는 부처님께 조용한 목소리로 자신들의 생애와 앞으로의 소원을 이야기했다. 결혼 후 거의 평생을 함께 해온 노부부는 서로를 속인 적이 없었고 서로에게 죄가 되는 생각과 행동 또한 단 한 번도 짓지 않았다. 말 그대로 행복한 삶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죽는 날까지 함께하자 했고, 다음 생에도 부부로 만나 함께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부처님께서는 태어났기 때문에 늙고 병들어 죽는 고통이 있다고 항상 말씀해오셨다. 괴로움의 원인은 삶에 대한 집착이 있기에 일어나는 것이라고도 말씀하셨다. 생로병사야 말로 부처님께서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출가를 하게 된 화두가 아니었던가. 태어남이 있기에 모든 고통이 시작된다는 것을 바로 알고, 바로 보는 것이야말로 부처님께서 설하진 진리의 핵심이었다. 또한 이를 바르게 깨우친 제자들은 윤회를 벗어나는 성취를 얻었다. 다시는 모태에 들지 않는 것, 이것은 모든 수행자들의 목표이자 꿈이었다. 그런데 부처님의 전생 부모였던 이 노부부는 기쁘고 다정한 마음으로 윤회를 원한다고, 다음 생을 원하며 다음 생에서도 부부로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한 것이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까.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부처님께서는 생생하고 냉정한 비유를 들어 생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도록 하는 법문을 들려주셨을까? 놀랍게도 노부부의 이야기를 들은 부처님께서는 자애로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내와 남편, 두 사람이 금생에 한평생을 웃으며 함께 하길 원하고, 다음 생에서도 다다음 생에서도 언제나 함께 손을 잡고 가기를 원한다면 두 사람 모두 같은 믿음을 지녀야 합니다. 훌륭한 덕목들을 잘 지키는 것도 같아야 하고, 훌륭한 이들에게 보시를 하는 것도 같아야 하며, 지혜 역시 같아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부부들은 원하는 소원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재가자가 지녀야 하는 삶의 지혜

부처님께서는 출가 제자들이 지켜야 하는 계율과 재가 제자들이 행해야 하는 삶의 지혜가 다르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계셨다. 출가 제자들은 ‘교단’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며 깨달음을 얻기 위해 부지런히 수행을 하고, 탁발을 하며 바른 진리를 이 세상에 전하는 소임을 다해야 했다. 재가 신도들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지혜롭게 살아가며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소임을 잘 행해야 했다. 계율과 지혜, 이 두 가지가 있어야 ‘교단’이라는 울타리와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나꿀라삐따 장자는 아내와 세세생생을 함께하고자 하는 소박한 소원을 지니고 있었고 이에 대하여 부처님께 법문을 청했다. 이들 노부부는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갖추고 있었고, 서로에게 감출 것이 없었기에 부처님께 이를 가감 없이 이야기했던 것이다. 노부부의 이러한 성품은 참으로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것이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이들의 근기에 맞게 내생에서도 다시 부부로 만나려면 믿음과 지계, 보시와 지혜가 같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었다. 이상적인 아내와 남편의 모습을 보여준 나꿀라삐따 장자 부부에게 하신 이 법문은 가정을 이루고 있는 모든 부부에게 해당하는 법문이기도 했다. 

아내 나꿀라마따를 위한 법문

노부부는 그 후에도 변함없이 날마다 베라깔라 숲을 찾아왔다. 이들은 스님들의 수행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걸었고, 부처님과 스님들이 경행을 하는 길을 조심스럽게 청소했다. 항아리가 비어있으면 물을 길어 놓았고, 풀이 우거지면 깨끗이 뽑았으며, 나뭇잎이 어지러우면 빗자루와 소쿠리를 들고 청소를 했다. 노부부의 손은 느렸으나 꼼꼼했고 부모님의 보살핌처럼 따뜻하고 온화했다. 그 어떤 노동도 마다하지 않는 노부부의 자애로운 마음 덕분에 부처님과 스님들은 베라깔라 숲에 머무는 동안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나꿀라삐따 장자의 아내인 나꿀라마따를 위해 법문을 들려주셨다. 그때도 그녀는 항아리에 물을 길어놓고, 오솔길에 나뭇잎이나 잡초가 없도록 깨끗하게 빗질을 한 뒤 부처님을 찾아가 예배를 올리고 그 곁에 앉아 있었다. 큰 아들 나꿀라를 비롯하여 여러 자녀를 둔 그녀는 이미 혼인하여 가정을 꾸린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을 마음에 안고 살았다. 겉보기에는 평소와 같은, 주름지고 온화한 나꿀라마따의 얼굴에서 시집간 딸에 대한 염려를 보신 부처님께서는 그녀를 위해 법문을 들려주셨다.

여덟 가지 법을 갖춘 여인이 바로…

“나꿀라마따여, 여덟 가지 법을 갖춘 여인은 이 세상을 떠난 후, 아름다운 얼굴과 몸을 가지고 천상에서 태어나 신들과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그 여덟 가지 법이 무엇이겠습니까?”

나꿀라마따는 부처님께서 자신을 위로하시는 것을 알고 자세를 바로하고 앉았다. 

“여기 딸의 이익을 바라고, 딸이 잘 살기를 바라는 부모가 있습니다. 이처럼 자애로운 마음이 가득한 부모가 딸을 시집보내면 그 딸은 여덟 가지 착한 행실을 통해 덕을 쌓게 되고, 훗날 천상에서 태어납니다. 무엇이 여덟 가지이겠습니까?”

나꿀라마따는 눈을 빛내며 두 손을 모으고 부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선량하고 선명한 여인은 항상 정성을 다하여 남편을 잘 부양하고 자신에게 이로움과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남편을 결코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첫째, 쓸데없는 질투로 남편을 화나게 하지 않으며 행실이 곱고 예쁜 말을 합니다. 둘째, 남편이 공경하고 존중하는 사람이면 그가 누구든 존경하고 존중합니다. 또한 남편을 찾아온 손님의 시중을 잘 들어줍니다. 셋째, 남편이 어떤 일에 종사를 하던 최선을 다해 이를 돕습니다. 넷째, 남편 집안의 하인과 심부름꾼과 일꾼을 잘 다스립니다. 각자의 능력에 맞게 일을 분배하고 건강을 잘 챙기며, 음식도 잘 분배합니다. 다섯째, 남편이 벌어오는 재물이나 곡식을 잘 지키고 간직합니다. 낭비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재물이나 곡식을 탐내거나 훔치지 않으며 술로 재산을 탕진하지 않습니다. 여섯째, 삼보에 귀의합니다. 일곱째, 함부로 생명을 죽이지 않고, 삿된 음행을 저지르지 않으며, 거짓말을 하지 않고 계를 잘 지킵니다. 여덟째, 인색함 없이 베푸는 것을 좋아하며 아낌없이 보시합니다. 이러한 여덟 가지 법을 갖춘 여인은 죽어서 천상에 태어납니다.” 

부처님의 법문을 듣는 동안 나꿀라마따의 얼굴에서는 서서히 미소가 번져나갔다. 부처님의 말씀이 곧 그녀의 삶이었다. 그녀는 평생 남편의 시중을 잘 들어왔으며 자식을 사랑으로 길렀다. 이것을 바로 알고 나자 시집간 딸에 대한 걱정이 사라졌다. 나꿀라마따의 얼굴에서 근심과 걱정이 사라진 것을 본 부처님 또한 흐뭇한 마음이었다. 나꿀라마따가 환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에 스님들도 기뻤다. 

이처럼 하루도 빠짐없이 베라깔라 숲을 찾아와 조용히 할 일을 하고 부처님을 뵙던 노부부가 어느 날부터인가 보이지 않았다. 스님들은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세속의 감정을 모두 털어내고 닦아내는 수행을 하는 스님들이었지만 부처님과 스님들을 자식처럼 아끼며 보살펴주었던 노부부에게 어느 새 정이 듬뿍 들었던 것이다. 

[불교신문3347호/2017년11월22일자] 
 

글 조민기  삽화 견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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