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출가해서 살아오는 동안 내 삶에 감동과 깨달음을 준 스승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 인간이 한 생을 사는 동안 몇 분의 스승을 만날 수 있을까.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지만 자신의 삶을 변화 시킬 수 있는 선지식 같은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 중에 행운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행운이 많은 사람이다. 출가를 결심하도록 인연이 돼 주신 스님과 학인시절 초심을 반듯하게 다듬어 주신 운문사 회주 스님, 그리고 부처님 제자로서 세상에 폐는 끼치지 말고 살아야 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회향하는 삶을 살게 해주신 스님, 이 세분 스승님의 삶은 내 삶에 기준이고 입승(立繩) 같은 선지식이다. 돈과 권력과 명예 보다 더 큰 선물, 판단의 기준과 정직한 안목을 갖게 해 주신 분들이다. 

<화엄경> 입법계품에 53선지식을 생각하면 세상 모든 인연이 스승 아님이 없지만 나에게 세분은 특별한 스승이시다. 스승은 출세간과 비구 비구니의 경계를 떠나 존재하는 것이다. 운문사 회주 스님께서 몇 개월 전 학인 설법대회를 보시고 격려의 전화를 걸어 오셨다. 살아가는 면면을 지켜보시고 때로는 격려의 말씀과 견책(譴責)으로 제자들을 살피시는 큰 스승이시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스승님의 목소리에 목까지 가득 차오르는 그리움에 문득 길을 나섰다. 아프고 느슨해졌던 마음을 단단하게 다잡게 해 주실 스승님을 뵙는다는 그 마음이 멀고 고단한 길을 가볍게 해주었다. 

부처님께서 교화의 길을 떠나는 제자들에게 하셨던 “처음도 훌륭하고 가운데도 훌륭하고 마지막도 훌륭한 내용이 풍부하고 형식이 완성된 가르침을 펴라”고 하셨던 이 말씀을 회주 스님께서는 “진명이가 모든 일을 할 때는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게 해야 한다”고 상기 시키셨다. 이 한 줄의 말씀은 그동안 못 다한 말씀을 다 담으셨고, 나도 그동안 드리지 못한 말씀을 다 담아 이해했다. 그 자리에서 표현할 수 있는 말로 말씀드리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부처님 제자로서 또 스승님의 제자로서 부끄러움 없이 살아갈 것을 약속드린다.

머지않아 스승님의 미수(米壽) 생신이 다가 온다. 이 세상에 온 모든 생명체는 늙고 병듦을 피할 수 없지만 나의 큰 스승이신 스님 앞에는 세월의 흐름이 멈추면 좋겠다는 혼자만의 간절한 축원을 담아 본다. 비구니계의 큰 어른이고 둘도 없는 나의 큰 스승이자 운문사 회주이신 법계 명성 명사 스님께서 오래 오래 강건하시길 빌고 또 빈다. 

[불교신문3346호/2017년11월18일자] 

진명스님 논설위원·시흥 법련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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