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 : 용성진종장학재단(총재 도문)

 

용성은 1921년 3월 출옥했다. 
갈 곳이 없었다. 교당이 팔려 
다른 사람 소유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친일로 발에 기름이 낀 
강영균의 집으로 
갈 생각은 없었다.

돌도 연분이 있어야 찬다더니
봉익동 2번지 주택을 계약할 즈음 
은엽이 찾아왔다.

개인병원을 개원하려고 
모아놓은 자금이라면서 
거금을 내놓으며 
새 교당을 건립하는데 
보태라는 것이었다. 
용성은 그 제안을 … 

<동의보감>에 ‘태아가 어머니 뱃속에서 숨을 쉰다’고 나와 있다. 도교적 관점에서는 ‘사람이 태어날 때 하늘이 정혼을 내고 땅이 형상을 내는데, 둘이 합쳐진 것이 사람’이라 했다. 이렇게 되면 사람을 직접 잉태한 아버지와 어머니는 빠져있다. 멱부리 암탉 같은 난해한 이 말은 도가에서 나왔다. 장백서란 사람이 불교를 폄하하기 위해 썼다고 하지만, 잘 뜯어보면 하늘이 아버지이고, 땅이 어머니라는 상징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 달랑 이 표현만 보면 키가 커야 하늘의 별을 딴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것을 찾아보라’는 백상규의 숙제 핵심은 생명에 부여된 의식이 무엇이냐를 묻고 있다. 은엽은 의학적 상식을 다 동원해도 의식을 설명해낼 수 없었다. 생명에 대한 생물학적 설명은 모든 유기체의 핵산과 단백질 분포의 적합성 메커니즘으로 생겨나 물질대사의 촉매작용이 생명현상을 유지한다고 설명되어 있다. 우리의 상식과 의학적 지식은 아버지의 정과 어머니의 난세포로 사람이 태어날 뿐, 그 이전에 의식이 먼저 있었다는, 존재여부에 수긍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물었다.

“제가 중국의 오래된 책을 보았는데요, 하늘이 정을 내고 땅이 형을 낸다는 말이 있습디다. 그런데,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립니까?”

백상규가 대답했다.

“암컷과 수컷으로 전환하기 이전에 ‘영묘한 무엇’이 있다는 이야기를 아직 들어 보지 못했군?”

“네.” 

“어머니 배속에서 사람이, 아니 사람뿐 아니라 모든 포유류동물이 생명을 잉태하기 이전에 영묘한 무엇이 있는데, 범어에서는 그것을 ‘아트만(tman)’이라 하죠. 아트만을 호흡이라고도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생명 본체의 생기, 생명원리, 영혼, 자기, 자아, 더 넓게 해석하면 만물에 내재된 기묘하고 신령한 힘, 즉 우주의 근본원리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것을 찾아보라는 것이오.”

“그것 참 되게 어렵군요?”

“배움이 그만한 의사가 어렵다면 일반 사람들은 어쩌겠소? 초심이라 하여 아무 배움이 없는 사람도 먹줄처럼 올곧은 신념으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매달려 정진을 하면, 금방 ‘묘오(妙悟)’에 들어 눈앞이 환해지는데, 그거야 마음먹기에 달린 게지….”

“먹줄처럼 올곧은 신념이 어떤 것입니다.” 

“그거 함부로 말하기가 어렵소.”

“아니, 아트만이 생명의 원리, 만물에 내재한 기묘한 힘, 또 우주의 근본원리라고 설명을 하셔놓고 먹줄처럼 올곧은 신념을 이야기 못한다는 겁니까?”

“알아듣기 쉽게 그것을 초심이라고 해둡시다. 말이란 ‘아’ 다르고 ‘어’ 달라 잘못하면 듣는 사람 취향에 따라 말 갈 데 소가 가기 때문이오. 만약에 초심을 ‘자애가 넘치는 숭고한 염원’이라고 하면, 머리에 문자가 든 사람들은 곧 거기에 안주해버리지, 그러고는 산을 평지로 만들어.”

그때 접견실 입구에 앉아 있던 간수가 뚜벅뚜벅 다가왔다.

“선생님, 진료시간이 지났습니다.”

백상규를 비롯한 네 사람의 시선이 간수와 마주쳤다.

“이봐요!”

은엽이 눈을 치떴다. 톡 쏘듯 눈빛이 간수의 얼굴에 뻗쳤다.

“팔 부러지고, 살갗 찢어진 외상만이 병이 아닙니다. 밖에서 볼 수 없는 간이나 허파 같은 내장에 이상이 있을 수도 있고, 정신적으로 어브세시브 컴펄시브 뉴어로시스(obsessive-compulsive neurosis)도 병입니다. 지금 환자의 병세가 심각해 진찰중이니 자리로 돌아가 기다리세요!”

부러 알아듣지 못하게 의학용어를 써 명령조로 기를 팍 죽여, 입구 자기자리로 쫓아버렸다. 그러고 백상규를 보았다. 

“저는 어학자가 아닙니다만, 우리말이 한문, 일본어, 영어로 된 의학용어 관용구에서 말귀가 다르게 전달되는 것을 종종 경험합니다.”

“난 영어는 모르나, 한문에서 그런 걸 많이 느끼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에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어린 백성이 니르고저 할빼이셔도 마참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한다’ 해놓았는데, 조선선비라는 자들이 음풍영월(吟風詠月) 한답시고 뜻도 모르고 공맹의 글을 졸졸 꿰는 것이 그들 풍속이었소. 불교라고 크게 다른 것 있겠소? 여러 뜻을 지닌 범어를 한문으로 옮겨놓으니 여러 내용이 좀 엉뚱하게 축약돼 여간 뻣시어 함부로 입을 열기가 어려운 것들이 많지요….” 

백상규는 거기서 말을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단순히 생각하면 그렇지만, 문자 속에 숨어 있는 뜻이 나라마다 달라. 그게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아까 ‘정’과 ‘형’에 대해 이야기 하던데, 그 말은 북송 때 장백서라는 사람이 불교를 배척하려고 ‘범인지생야(凡人之生也)라, 천출기정(天出其精)과 지출기형(地出其形)이 합차이위인(合此以爲人)이라’고 한 데서 온 말이오, 범어에서는 하늘을 ‘디비야(divya)’라고 합디다. 즉 남자 같은, 사내다운, 초자연적 신성이란 뜻이지요. 땅은 ‘프리티비(pr.thiv)’라 하던데, 여자 같은, 여성스러운 즉 여성을 상징합디다. 거기에 또 ‘링가(lin.ga)’라는 것이 있는데, 링가는 여러 뜻이 있지만, ‘남녀의 성을 전환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어요. 자 여기까지 이야기를 했으니 뭐 집혀오는 것 없소?”

“억지로 끌어다 붙이면, 하늘은 아버지, 땅은 어머니를 상징한다 하겠으나, 솔직히 말하면 저에게는 송편을 뒤집어 팥떡이라 하는 소리로 들립니다.”

백상규가 껄껄 웃었다.

“그럴게요. 아까 생물학 이야기를 하던데, 나는 매월당 이야기를 하겠소. 머리 회전이 빠르지 않은 사람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켜도 달을 보지를 못해요. 또 토끼 발자국을 찾는 사냥꾼이 깊이 헤아리지 않고 걸신들린 것처럼 달뜨면 속만 태우지요(月不因指 癡兒不能見 兎不尋蹄 虞不能得. 張伯瑞 悟眞篇). 이런 사람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합궁으로 배속에 잉태되기 전 본래 ‘내(我)’가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소. 본래 나는 우주의 실재와 똑 같은 것으로, 인도철학에서는 신비적인 힘, 즉 브라만(brahman)이라 하는데, 이것이 우주 작용의 근거이고, 우주의 최고 원리입니다. 인간 역시 모든 행동 저변에 이와 똑같은 것이 깔려 우주의 실재와 서로 통하거나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긴가민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고, 한용운수좌의 건강상태를 확인해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와, 그러기로 약속을 하고 그 뒤 진단 요청을 신청했으나 한용운이 극구 반대해 진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용성은 1921년 3월에 출옥했다. 부지깽이도 뛰는 세상이고 보니 벼락 치는 하늘인들 속일 수 없겠는가. 감옥 문을 나오자마자 갈 곳이 없었다. 봉익동 1번지 대각교로 가려 했으나, 마중을 나온 재현과 태현이 교당이 팔려 다른 사람 소유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앞집 떡 치는 소리만 듣고 김칫국을 마시려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왔다. 빼앗긴 땅에서 산다는 것이 뒤웅박 차고 바람 잡는 짓 같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혜일은 망월사로 올라가 있고, 재현과 태현은 용성이 맨 처음 선불교 포교를 시작한 대사동 강거사 사랑채에서 기거한다는 것이었다. 출옥 소식을 듣고 가회동 강영균이 모시겠다고 여러 차례 찾아왔으나 흥망성쇠는 물레바퀴 돌듯 그런 것이라 친일로 발에 기름이 낀 강영균의 집으로 갈 생각은 없었다.

용성은 망월사로 올라가 종주(宗主)로 있으면서, 운봉 임동수거사에게 맡겨 놓은 금괴를 가지고 올라오라하여 봉익동으로 가서 대각교당을 세울 만 한 마땅한 집이 있는지 찾아보라 했다.

길에 돌도 연분이 있어야 찬다더니, 봉익동과 무슨 인연이 있었든지 2번지에 교당 현판을 걸만한 기와집이 있다는 것이었다. 예전 교당과 이웃해 있는 장소여서 더욱 마음이 끌렸다. 봉익동 2번지 주택을 계약할 즈음 은엽이 찾아왔다. 새로 교당을 구입한다는 소문을 들었다면서, 많지는 않으나 개인병원을 개원하려고 모아놓은 자금이라면서, 거금을 내놓으며 새 교당을 건립하는데 보태라는 것이었다. 용성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나 워낙 당차고 식자를 지닌 여자라 스스로 내린 결단을 거두어들이지 않았다.

용성은 은엽의 돈을 받아 두었다가 1920년 상하이에 육군 무관학교와 간호학교를 세워 군인으로 길러내, 중국 군관학교로 파견교육을 시켜 만주에 있는 독립군을 후원하는데, 은엽이 기부한 돈에 금괴 일부를 임동수거사에게 주어 독립자금으로 내놓았다.

그나저나 출옥을 하고 보니 할 일이 많았다, 그렇지만 맨손이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소리는 가망 없음을 얄밉게 나타낸 말 같지만, 반대로 새로운 희망을 다짐하는 교훈이기도 했다. 

[불교신문3346호/2017년11월18일자] 

글 신지견 ·그림 배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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