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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화실에서 법을 청하다] 조계종 원로의원 월주스님자비보살행, 곧 자기 행복으로 돌아옵니다
  • 하정은 기자 | 사진 신재호 기자
  • 승인 2017.11.1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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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인상의 월주스님이지만 웃을 때는 아이처럼 천진하고 부드럽다. 스님은 "실제는 내가 참 따뜻한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다시한번 환하게 웃었다.

“어떤 자리에서 무슨 일 했느냐가 중하지, 명예가 중한 건 아니잖여.” 올봄 조계종 원로의원이 된 월주스님이 처음엔 인터뷰를 거절했다. “원로의원은 명예직, 말하자면 상징적인 자리여. 머리격인 총무원과 중앙종회 교육원 포교원 호계원이 중심이 되고, 교구본사가 허리가 되어 종단을 탄탄하게 이끌면 그 뿐이지, 원로가 됐다고 내가 뭘 하겠다는 건 맞지 않아요.” 스님은 올해 세수로 여든셋인데, 그동안 매스컴에 너무 많이 나왔다며, 했던 말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내가 더 위대한 일을 해서 과업을 쌓으면 모르지만 계속 해왔던 일들을 또다시 언급하는 건 별 의미가 없잖여. 신선한 맛이 떨어져. 허허허.”

지난 10일 서울 영화사에서 만난 월주스님은 미리 보낸 질문지를 빈 칸으로 비워둔 채 이같이 말했다. “아차산 단풍구경하고 뜨신 차 한잔 들고 돌아들 가요.” 그렇게 1시간 40여분간 스님과 ‘차 한잔’을 나눴다.

“남들은 한번 가기도 힘든 나라를 1년에 세차례 이상 다니시는데 고단하지 않으세요?” 지구촌공생회가 펼치는 우물사업, 의료·교육사업 현장을 찾아 인도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등을 걸림없이 누비는 스님에게 물었다. 네팔이나 케냐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도움 기다리는 사람들 위해 도움 주러 가는 길인데 즐겁기야 이루 말할 수 없지요. 첫 삽 뜨는 기공식, 회향하는 준공식도 갈 때마다 희열을 느끼고 엄청난 환희심까지 생겨요. 그렇게 일주일 살다가 귀국하면 몸이 약 2kg 불어나요. 건강도 좋아지고 머리도 맑아지고….” 스님이 지구촌공생회 활동차 해외 체류할 때, 동행하는 기자들로부터 들었던 말이 바로, ‘지칠줄 모르는 큰스님의 에너지’였다. “국내는 시끄러워. 내가 정치인도 기업인도 아니고 책임지는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우리나라 TV와 신문을 보면 여기저기 갈등과 반목과 투쟁의 연속이야. 짧은 일주일이라도 그런 시끄런 세상 등지고 다녀오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어. 서로 행복을 느끼고 그 행복이 확장되면 평화가 오는 거지. 일말의 평화운동이란 얘기여.”

스님은 <화엄경> ‘보현행원품’의 광수공양(廣修供養)을 예로 들었다. 많은 중생에게 여러 가지로 풍성한 공양을 올리는 만큼, 그 사람의 삶이 풍요롭고 여유로워진다는 이치다. “남을 우선시하고 돕는 보현행과 자비보살행이 곧 자기 행복으로 돌아오는겨. 자기중심으로만 보고 살면 결과적으로 불행해진다 이 말이여. 공덕을 개인에게 회향하지 않고 중생에게 돌리면, 결국 자기에게 복이 돌아온다는 거지.” 스님은 누구나 자기 위치에서 알게 모르게 공덕을 짓고 있으며, 되도록 좋은 마음으로 공덕짓기에 임하라 했다. 기자가 기사 한 줄 써도, 작가가 시 한 수를 읊더라도 그것이 언젠가, 또는 누군가에게 더없이 행복한 기쁨과 희망이 될거라고 확신하며 살면 된다고 했다.

스님의 일상생활이 궁금했다. “아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면 늦게 일어나지 뭐가 있것소?” 스님은 해외일정이 없을 때는 한달에 두세번 김제 금산사에 내려간다. “아침밥 먹기 전에 금산사 한복판에서 대적광전과 명부전 미륵전 등 8개 전각을 향해 삼배를 올려요. 명호를 부르면 귀의심도 일어나고 참회도 하고 발원도 합니다. 밥먹고 1시간20분 정도 산책을 해요. 요새는 책보는 시간보다 산책하는 시간이 많아요. 책보고 신문보는 시간을 줄이고 신진대사 순환하도록 몸을 자꾸 움직이려고 노력합니다.” 스님은 일간신문과 교계신문 등 8개의 신문을 본다. 하루평균 3시간 가까이 신문칼럼과 사설 등을 탐독하다가 최근엔 1시간으로 줄였다고 한다. 선문(禪文)집도 보고 때에 맞춰 법문을 하기 위해 법화경과 화엄경 금강경 등 여러 경전을 수시로 들춰보는 스님이다. 스님 특유의 ‘공양 방법’은 지근거리에서 스님을 모신 사람들이나 기자들도 잘 안다. 소식(小食)은 기본이고 상당히 오랫동안 음식을 씹어 드신다. “같이 밥먹다 보면 옆에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 같아 미안허지. 하하하. 다른 사람보다 3분지 1은 더 씹거든.”

연세에 비해 건강하고 열정 넘치는 스님은 “이제 건강이 그전만 못해서 왕성히 다니기가 어렵다”며 오는 12월 네팔 신두발족 행사와 내년 3월 케냐에서 열리는 학교 준공식까지만 가고 원거리 출장은 대폭 줄인다고 했다. 해발 1000미터가 넘는 비포장도로는 차량이동조차 쉽지 않은데다 저체온증으로 인해 몸에도 이상신호가 온다. 스님은 “그게 뭣이여 가슴팍에 붙이면 따뜻해지는거 그거 많이 사놓았다”며 아이처럼 ‘핫팩’을 자랑하기도 했다. “고 강원룡 목사도 여든 훌쩍 넘어서 손녀딸 박사학위 수여식을 본다고 무리하게 미국 한번 갔다와서 건강이 크게 쇠해진 것 같다”며 스님은 “미수(米壽)라고 하나? 여든여덟까지만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같이 가차운 나라들 다니고, 또 괜찮으면 또 가야지. 허허허.” 실무자들에게 맡기고 보고만 받아도 될 일인데 스님은 왜 현장을 고집할까. “증축을 할 것인가, 더 진행을 않고 그 정도 할 것인가 판단을 해야 혀. 그 나라 행정부와 관할청에서 성의있게 지원하고 있는지, 수혜학생들이 불편함은 없는지, 학부모들의 의지는 있는지, 그대로 맽기면 제대로 파악이 안되여.”

스님은 “인류가 끊임없이 테러와 전쟁을 일으키고 서로 갈등하면서도 결국 멸망하지 않는 것은 자비와 사랑을 이웃에 베푸는 마음에 기인하다”고 말했다. “<법화경>에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겨자 씨 만한 땅이라도 몸을 버리지 않는 곳이 없다는 말이 있어요. 수십억만 인류가 온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자비심과 보살심, 보살행과 이타행을 실천한 덕분입니다.”

스님은 “300만 불자인구 감소를 누구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은 더 이상 사찰이나 교회, 성당을 찾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개신교도 신도가 줄어들고 있고 천주교도 이른바 ‘냉담신도’가 늘고 있어요. 듣자하니 불교에 복지기관이 1300개, 종사원이 60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군법사도 수백명이 넘고 그리고 재가포교사도 수천명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불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 발걸음이 늦은 것 뿐,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포교하면 별반 문제 없어요. 관건은 법보시와 복지와 의료, 그리고 자원봉사와 구호사업 등 등 중생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 중요합니다.” 스님은 내부 건축불사보다 바깥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 금산사도 옛날 건축면적에 비하면 30배 이상 늘어났어요. 법주사 불국사 통도사 해인사도 전부 그럽니다. 생활공간 수행공간은 충분히 넓어졌으니까 이젠 포교지평을 충분히 넓혀서 불교가 인류에 행복과 평화를 심어주는 종교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불철주야 노력해야 해요. 노스님들 어린애들, 집안일 하는 사람만 놔두고 모두 거리로 나가서 포교해야지. 안 그려요? 하하하.”

유독 차갑고 엄격한 인상이 풍기는 월주스님이지만 이 날 만큼은 아이같은 웃음을 연신 보이며 여느때보다 청안한 모습이었다. “문중 스님네들도 내가 냉정하고 차갑다고들 해요. 내 상좌들도 내가 말을 않으면 썰렁해 보인다나? 하지만 말 시작하면 달라지잖여. 실제는 내가 참 따뜻한 사람인데. 하하하. 부족한 점이 많지만 훈훈한 사람이여.” 스님의 서재엔 역대 대통령이나 정치인들과 함께 한 사진들이 제법 많다. 커다란 책상 위에는 스님의 눈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부처님을 머리에 이고 무수 겁을 지내가며(假使頂戴經塵劫) 몸으로써 자리삼아 삼천계에 두루 해도(身爲床座遍三千) 법을 전해 온갖 중생 제도하지 않는다면(若不傳法度衆生) 부처님의 크신 은혜 끝내 갚지 못하오리(畢竟無能報恩者).’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

 

1935년 전북 정읍서 태어난 월주스님은 금오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54년 법주사에서 금오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56년 10월 화엄사에서 금오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조계종 총무원 교무부장과 총무부장을 거쳐 1980년 제17대 조계종 총무원장에 선출됐지만, 10·27 법난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1994년 개혁종단이 들어서면서 제28대 총무원장에 취임해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에 진력했다. 스님은 2003년부터 지구촌공생회 이사장 소임을 맡으면서 저개발국가 국제구호사업을 적극 펼치고 있다. 함께일하는재단(실업극복 국민재단) 이사장,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집(일본군 위안부 쉼터)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 모란장을 수훈하고 만해대상 대원상 조계종 포교대상 등을 수상했다.

하정은 기자 | 사진 신재호 기자  tomato77@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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