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청년희망순례' 현장 취재기

지난 15일 겨울을 재촉하는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씨에도 '4·16청년희망순례단'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전 순례를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길과 마주한다. 매일 같은 길을 오가기도 하며, 때로는 처음 가보는 낯선 길을 지나가기도 한다. 오늘 하루 무의식적으로 지나간 길 위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세월호가 출발한 인천항부터 멈춰버린 진도 팽목항까지 세월호의 뱃길을 따라 걷는 이들이 있다. 아픔을 곱씹으려 걷는 것이 아니다. 바로 희망을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길을 걷고 있는 ‘세월호희망의길을걷는사람들’이다.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붓다로살자, 지리산종교연대 등 종교·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세월호희망의길을걷는사람들은 지난해 9월 순천사랑어린배움터 학생들의 첫걸음 순례를 시작으로 지난 5월 4·16희망의 순례까지 진행했다. 이번엔 청년들이 주축이 된 ‘4·16청년희망순례’다. 이름 그대로 실상사 생명평화대학 활동가, 학생 등 청년들이 중심이 돼 ‘다함께 봄 다함께 평화’를 주제로 걷고 있다.

지난 10월18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출발식을 가진 이들의 발걸음은 어느덧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선인 금강하굿둑에 다다르고 있었다. 30여 일간 길 위에서 청년들은 무엇을 얻고 있을까. 겨울을 재촉하는 찬바람이 제법 몰아쳤던 지난 15일. 충청남도 서천 장항전통시장에서 오전 순례를 시작하는 그들을 만났다. 상근순례단원을 포함한 10여 명이 모여 간단한 맨손체조로 몸을 푼 이후 ‘청년희망순례단 발원문’을 함께 낭독했다. 발원문의 의미를 새기며 걷고 있는 그들을 따라가 봤다.

순례 시작 전에 다 같이 모여 발원문을 낭독하고 있다.

“나부터 생명의 가치를 외면하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우리사회 평화를 만들기 위해 걷는다는 생명평화대학 활동가 김한나(36) 씨는 쇼핑몰과 극장,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인 도시에서 소비적인 생활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순간 삶이 막막하고 불행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도시를 떠나겠다고 마음 먹었다 한다. 이후 지리산 실상사에서 4년 동안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심신의 안정을 되찾았다. 이 때 김 씨는 생명평화의 소중함을 몸소 느껴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원력을 세웠다고 한다. 이것이 이번 순례에 참여한 이유다. 그러나 순례의 절반이 지나도록 아직까지 제대로 된 ‘평화’에 질문도 답도 얻지 못했다고 솔직히 토로했다. 무엇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에 길에서 마주치는 것들을 두 눈 크게 뜨고 보려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도 김 씨는 순례를 하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또렷이 말했다. “길을 걸으며 보이는 발전소와 거대한 송전탑, 해안을 점령한 펜션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로 일하고 있는 악취 가득한 축사 옆을 지날 때면 내가 살고 있는 우리 세상이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의 ‘상실’위에 지어진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요.” 그러면서 김 씨는 이제 “나의 삶의 무게도, 타인과 관계의 어려움도, 헤아릴 수 없는 세상의 불합리함과 부조리함도 무엇 하나 눈감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시속 4km의 길 위 삶 속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을 오롯이 맨몸으로 만나야겠다는 앞으로 계획도 덧붙였다.

항상 걷기 좋은 길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위험하고 불편한 길이 나오지만 그래도 4·16청년희망순례단은 꿋꿋이 걷는다.

“우리가 어떤 평화를 꿈꾸고 어디로 가야 할 지 길 위에서 묻습니다”

유독 순례단에서 앳된 얼굴이 보였다. 동국대학교 불교사회복지학과에 다니고 있는 정은아(20) 양이다. 이번 순례단 최연소 참가자로 함께하며 막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사실 막 성인이 된 나이에 50여 일 동안 인천에서 진도까지 순례를 하겠다는 결심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 양은 “내 자신에 대한 참 모습을 살펴보고 싶었다”며 참가 계기를 담백하게 말했다. 순례에 참여하기 전까지 정 양은 또래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어렵고 재미없는 정치 사회 문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돌 가수의 음악을 즐겨 듣고, 친구들과 예쁜 옷 쇼핑하러 가는 것을 제일 좋아하는 우리 사회 평범한 20살 여학생이었다. 그러나 30여 일 동안의 순례는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줬다. “미군기지 건설문제로 지역주민과 군·경찰의 다툼이 일어난 평택 대추리를 지나갈 때인 것 같아요. 그곳에서 무차별한 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울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 목격했어요. 사실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지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었는데 지역 사람들의 대화를 통해 많은 감정이 몰려왔어요. 문득  따뜻하게 누워 잘 수 있는 집이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행복한 일임을 그때 깨달았어요.” 

또한 정 양은 길을 걸으며 고통 받고 있는 생명들에게 작은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고 한다. 정 양은 정형화된 틀에서 배운 단편적인 지식보다 더 넓고 깊은 인생을 순례길에서 배우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이번 청년순례를 세상 밖으로 나가는 ‘조그마한 날갯짓’이라고 정의내렸다. “10여 명이 걷는 아주 작은 날갯짓이지만 이 걸음이 세상에 평화를 불러일으키는 나비효과가 됐으면 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저처럼 조금이나 우리 주변에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네요.”

차가운 강바람이 몰아쳤지만 4·16청년희망순례단의 걸음은 계속 이어졌다.

"다함께 봄! 다함께 평화"

겨울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봄을 그리워하는 것은 이르지만 순례단이 바라는 ‘봄’은 어떤 모습일까. 청년희망순례단에서 단장 소임을 맡은 생명평화대학 활동가 현미선(36) 씨는 ‘다르지만 함께 가는 사회’가 우리가 바라는 ‘봄’이라고 했다. 현 씨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에서는 의견이 다르고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했다. 그러면서 다툼이 생기면 먼저 누가 옳고 그른지 시시비비를 가렸던 자신의 모습을 고백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게 되면 그 자체로 존귀한 사람이라는 생명체를 홀대하게 되더라고요. 사람보다 물질적인 것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옳고 그름을 판단했던 것 같아요.” 

현 씨는 순례를 통해 느끼는 바를 가감 없이 얘기했다. “지금 30여 일 순례를 하면서도 단원끼리 의견이 갈라지는 일이 종종 발생해요. ‘어떤 코스로 걸을까’부터 시작해서 사소한 생활적인 부분도 다 똑같을 순 없어요. 이럴 때 예전 같으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편을 들었지만 이젠 ‘다르지만 어떻게 같이 갈까’를 먼저 고민하게 됩니다. 순례단 모두가 이런 생각을 공유하기 때문에 의견 충돌이 생겨도 삐거덕 거리지 않고 슬기롭게 해결하고 있어요.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평화이며 희망입니다.” 세월호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 갈등의 모든 원인을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이라고 짚은 현 씨는 우리의 걸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다르지만 함께 가는 사회’의 표본이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4·16청년희망순례단은 걸으며 만나는 지역주민들마다 정겹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장항전통시장을 출발한 순례단은 매서운 금강의 바람을 맞으며 8km를 약 3시간에 걸쳐 걸었다. 걸으며 만나는 지역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정겹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꽤나 인상 깊다. 이윽고 충청남도를 넘어 전라북도 군산에 위치한 금강시민공원에 도달했다. 다들 볼이 빨갛게 상기돼 있다. 다 같이 모여 소감 나누기를 진행한 뒤 오전 순례를 마무리 했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걷기 쉬운 평탄한 길만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돌부리가 곳곳에 박혀있는 울퉁불퉁한 길도 있고, 수풀이 우거져 걷기 힘든 산길도 있다. 그러나 청년순례단은 달팽이처럼 천천히 걸으며 하루하루 세상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동시에 더 이상 세월호가 ‘아픔’이 아니라 ‘희망’임을 이야기하며 오늘도 여전히 걷고 있다.

오전 순례 목적지인 군산 금강시민공원으로 가고 있는 모습.
순례를 마치면 마지막까지 다 같이 모여 소감나누기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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