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문헌을 통해 우리민족이 얼만큼 채식과 밀접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진은 보물 제527호 김흥도필 풍속도 화첩에 수록돼 있는 ‘점심’ 사진.

현대사회에서 채식의 중요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우리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준다는 장점 이외에 환경, 에너지, 기후변화 등 현재 우리에게 대두된 심각한 문제에도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각종 연구결과를 통해서다. 이런 가운데 우리 민족은 오래 전부터 채식을 즐겼음을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사실을 소개한다. 다양한 문헌을 통한 역사 인물 속 채식이야기를 살펴보자.

고려 후기 명문장가로 당대를 풍미한 시풍을 지은 이규보(1168~1241). 그가 저술한 시문집 <동국이상국집>속 ‘가포육영(家圃六詠)’에는 생활 속 채식을 하고 있는 이규보의 모습이 들어있다. 가포육영은 오이, 가지, 순무, 파, 아욱, 호박의 여섯 가지 채소재배에 대한 기록을 시로남긴 것이다. 가포육영에는 여러 채소에 대한 사용법을 소개했는데 이를 통해 고려시대 사람들이 어떤  식습관을 지녔는지 알 수 있다. 또한 고려왕조의 마지막을 함께한 학자이자 정치가인 목은 이색(1328~1396)도 채식을 즐겨먹었다. 특히 ‘대사구두부래향(大舍求豆腐來餉)’이라는 시를 통해 ‘두부’를 즐겨먹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조선 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사림이자 우리에게는 오천원 지폐에 초상화로 친숙한 율곡 이이(1536~1584)도 채식을 즐겨했다. 직접 나물을 캐러 산이나 들에 다니기를 좋아했다는 이이는 제자들에게 “생강처럼 매서운 개성을 지니고 생강처럼 간을 맞추며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전해진다. 평생 쇠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홍길동전>으로 잘 알려져 있는 허균(1569~1618)은 조선시대 미식가이자 탐식가였다고 한다. 허균은 우리나라 팔도의 명물 토산품과 별미음식을 소개한 〈도문대작〉이라는 책에서 채소에 관한 내용을 자주 언급하는데 그중 강릉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쑨 방풍죽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1762~1836)도 마찬가지로 채식 애호가였다. 그가 찬술한 <한암자숙도>에서 나오는 ‘상아(뽕나무버섯)와 숙유(두부)를 먹으니 포새(우바새)의 풍치가 바로 이 사이에 있구나’ 대목을 통해 채식을 예찬하는 정약용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좋아하는 일을 채소밭 가꾸기라고 말할 만큼 채식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추사체’라는 고유명사로 불리는 최고의 글씨와 함께 그림과 시, 산문에 이르기까지 다재다능했던 추사 김정희(1786~1856)도 ‘세모승(細毛僧)’이라는 시에서 우뭇가사리를 예찬하기도 했다.

[불교신문3344호/2017년11월11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