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종단만이 ‘강력한’ 종단 만들 수 있다

200자 원고지로 23매가 넘는 장문이었다. 조계종 제35대 총무원장 설정스님은 종무행정의 책임자로서 앞으로 4년간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취임사에 조목조목 담았다. 조계종의 이름으로 대내외에서 대대적인 변화가 예고된다. 60여 년 동안의 참선 수행으로 얻은 안목과 덕화도 행간(行間)에 가득 배였다. 변화의 근본조건은 참회와 결속임을 정확히 짚어냈다.

신도숫자 감소라는 통계숫자는 오히려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보다는 종도들이, 불제자로서 자부심을 갖지 못하여 방황하며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며 독화살을 쏘아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일 것입니다.

불교신자가 10년 새 300만 명이나 줄었다는 2015년 통계청의 인구조사 결과는 여전히 종단의 근심거리이고 부담이다. 무엇보다 이른바 조계종의 ‘적폐청산’을 주장하는 외부세력들에게는 군침 도는 먹잇감으로 이용되는 형편이다. 그러나 ‘신도’ 감소보다 더 두려운 건 ‘신심(信心)’ 감소라는 게 스님의 관점이다. 지난 9월 총무원장 선거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간담회에서도 “집안에 문제가 있다고 밖에 나가서 아버지, 어머니를 욕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모토로 내세운 ‘불교다운 불교’에는 교단의 구성원들이 불교공동체를 위해 스스로 얼마나 기여해왔는지 성찰해보라는 당부가 숨어 있다.

여러분, 화합․단결하지 않는 집안은 '힘'을 잃게 됩니다.

물론 최대한 용서하고 포용하면서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힘’을 모으는 데 앞장서겠다는 입장이다. “대탕평 정책을 펼쳐서 종도들이 환희작약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선거과정에서 불거진 반목과 불신을 해소하겠다고 다짐했다. 화합과 단결을 위한 또 하나의 구체적 방법은 선거제도 개선이 될 듯하다. 본인이 이번 선거의 최대 피해자이기도 하다. 신상과 관련한 무차별적 흑색선전은 ‘인격살인’을 연상시킬 정도였다는 시각이 많다. “비승가적이고 반불교적인 선거문화를 개선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밝힌 만큼 제도의 전면 폐지 또는 대폭적인 수정 보완은 확실해 보인다.

‘신도’ 감소보다 두려운 건 ‘신심’ 감소
교단 구성원들의 자성과 분발 당부

화합의 전제조건은 ‘불교다운 불교’
철저한 지계로 ‘빌미’ 주지 말아야

종단 재정투명화로 국민 신뢰 획득
불교문화재는 聖寶...떳떳이 지원받겠다

활발한 대사회 활동 지속해갈 듯
‘차별금지법’ 제정 의지도 시사

신심과 원력 없는 불자는 진정한 부처님 제자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며, 수행자들이 공심을 잃으면 시비와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앞으로 저를 포함한 종단의 스님들은 무엇보다도 공심을 회복하여 갈등의 원인을 없앨 것입니다.

총무원장 스님이 시시처처에서 강조해온 단어가 공심(公心)이다. ‘공평하여 사사로움이 없는 마음’이란 사전적 의미를 갖는다. 중도(中道)와 동사섭(同事攝)을 지향하는 출가수행자의 기본적 자질인 동시에 불교를 불교답게 만드는 핵심이다. ‘수행가풍과 승풍 진작’을 공약의 첫머리로 내놓은 이유도 동일한 맥락이다. 종단의 중추인 스님들의 자성과 분발을 촉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특히 “바쁜 행정 일정을 핑계로 출가수행자의 본분을 망각하거나 방기하는 일은 없도록 할 것”이란 발언은 집행부 소임자들을 향한 듯하다. 엄혹한 자기관리로 불교파괴세력에게 아예 빌미를 주지 말라는 의미로 읽힌다. ‘깨끗한’ 종단만이 ‘강력한’ 종단을 구현할 수 있다는 일침이다.

50여 년 전 통합종단 출범 당시 만들어진 종단 재정구조를 개선하는 일도 새 집행부가 해결해야 할 어려운 과제입니다. 사부대중의 지혜를 모으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한 단계 진전된 대안을 마련하도록 할 것입니다.

재정투명화는 깨끗한 종단으로 서기 위한 실제적인 초석이다. 전근대적인 분담금 제도, 정부 예산에의 지나친 의존 등 산적한 난제들을 교구본사, 중앙종회, 사부대중공사와의 ‘협치(協治)’를 통해 원만히 풀겠다는 계획이다. 공정하게 걷고 효율적으로 쓰면서 국민들의 신뢰를 얻고 위상을 높이겠다는 뜻으로 짐작된다.

성보(聖寶)가 아니라 단순한 문화재로 취급하는 국가의 불교 전통문화 정책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강력한’ 종단으로서의 선언이다. 특정종교의 산물이 아닌 전통문화의 보고(寶庫)라는 차원에서 불교문화재를 이해하도록 정부에 요구하고 지원도 떳떳하게 받겠다는 생각이다. 자연공원 및 국립공원 내 문화재관람료 문제, 공원구역 내에 편재된 ‘사찰지(地)’에 대한 권리, 각종 불사 관련 규제 등의 현안을 일괄적으로 해결하는 데 역량을 쏟으리란 예상이다.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 '나와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고 무시하고 혐오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름'은 결코 '틀림'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제35대 집행부는 교구중심제 강화, 승려복지제도 확대, 비구니 스님의 권익 향상 등 전임 집행부의 기조를 이어받을 전망이다. 대사회 분야도 마찬가지다. 총무원장 설정스님은 “불교인의 자존심은 불교인구의 숫자가 아니라 상생과 화합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이웃에 전하는 데서 형성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웃종교와의 연대도 지속할 것임을 명시했다. 나아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의중으로도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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