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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1 (2017).11.19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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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선지식 구법여행] <24> 불교신문사 사장 초격스님“먼저 얘기하고, 들어주고 살펴주는 것이 보살도”
불교신문사 사장 초격스님이 지난 10월27일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봉행된 24번째 ‘53선지식 구법여행’에서 “먼저 말하고 들어주고 살펴주는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먼저 얘기하십시오. 누구 이야기든 많이 들어주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살펴주십시오.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불교신문 사장 초격스님(중앙종회 수석부의장)은 지난 10월27일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봉행된 24번째 ‘53선지식 구법여행’ 법문을 통해 이같이 강조했다. 한편 이날 법회에서는 지난 7월 발족된 조계사총동문회 장학회가 처음으로 4명의 청소년에게 장학금을 수여해 훈훈함을 더 했다. ‘통(通)하면 통(通)한다’를 주제로 진행된 초격스님의 법문을 요약했다. 

 

‘어려워말고 게으름 피지말아야’
불자들의 법문 듣는 자세 ‘강조’

‘상구보리하화중생’의 참 뜻은
곧 말하고 들어주고 살펴주는 것
항상 남을 위한 마음을 갖고
이기심 버려야 행복 얻을 것

여러분 제가 누군지 아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대답한 그분은 누굽니까? 그러면 지금 “저는 누굽니다”라고 크게 외치셨죠? 그 외침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생각해 봅시다. 내가 무엇을 듣고 기억하고 대답을 하는가? 한번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중략)

불교의식은 너무 딱딱하다고 생각하지만 법문이라는 것은 부처님 법을 통해서 행복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가 집안에 들어갈 때 대문이 있죠.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음이 편합니다. 법문에서도 첫째 관문이 기도입니다. 기도를 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또 대문에서 내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음이 편해지죠? 이게 두 번째 관문입니다. 이것이 법문입니다. 또 방안에 들어가서 마음이 편해졌다가 조금 답답해질 때 창문을 조금 열고 밖을 보니 이렇게 좋은게 없죠? 즉 법문이란 첫 번째 관문인 기도를 하고, 스님 법문을 들음으로써 방문으로 들어가고 그 법문을 되새기면 창문 밖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법문은 법문 듣는 자의 자세가 있고 법문 하는 자의 자세가 있습니다. 법문 듣는 자는 우선 현애상(懸崖想) 내지마라.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스님들이 너무 어렵게 말하니깐 자포자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법문을 듣는 자는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포자기 하지마라. 두 번째는 관문상(慣聞想)을 내지 마라. 스님 법문을 너무 자주 듣다보니 너무 레퍼토리를 달달 외우는 신도들이 있습니다. 종단에도 법문 잘하는 스님이 많은데 그 법문 잘하는 스님을 1년을 쫓아가다 보니 “다음에 그 말씀이 나올 거야”하며 “너무 쉽다”라는 생각 때문에 게으름이 생겨요. 이처럼 법문 듣는 자는 어렵다는 생각으로 자포자기 하지 말고 너무 쉽다는 생각으로 게으름을 피우면 안 됩니다.

생각을 비우고 법문을 듣다보면 내 마음속에 꽂히듯이 감동이 밀려옵니다. 똑같은 이야기라도 듣고 듣고 새기다 보면 어느 순간 똑같은 이야기도 감동이 밀려와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하면 떠오르는 분은 성철 큰스님입니다. 하지만 그걸 성철 큰스님께서 말씀하신게 아닙니다. 역대 조사 스님께서도 ‘산시산 수시수(山是山 水是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과 장소,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딱 맞아 떨어져서 ‘산은 산이요 물이 물이요’하면 성철스님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법문이 있으면 듣고, 또 듣고 보면 자기 마음이 깨닫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포자기 하지 말고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법문을 하는 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렵게 얘기하지 말고 요즘 통용되는 언어를 통해 쉽게 얘기해야 합니다. 요즘 가장 TV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뭡니까? “대박”입니다. 아주 좋다는 것이예요. 이처럼 법문을 하는 자는 어렵게 얘기 하지 말고 그 시대에 맞는 단어를 통해 설득을 시켜야합니다. 또 듣는 사람 중심으로 얘기해야 합니다. 총림의 방장 스님이 사중 스님들에게 말할 때는 그 스님들에 근기에 맞게 하는 것이고, 신도한테 할 땐 그 신도들에게 맞는 법문을 합니다. 또한 부처님 말씀에 근거해서 법문을 해야 합니다. 어떤 스님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부처님 말씀에 근거해서 법문을 해야 합나다. 마지막으로 1시간 법문하려면 10시간정도 법문을 준비하는 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중략)

오늘 저의 법문 주제가 무엇입니까? 통하면 통한다. 생각나는 것 있습니까? 바로 소통하자입니다. 제가 근 20년 전에 큰 스님께 단호 건당을 합니다. 스님들이 15년 넘어가면 건당이라는 것을 합니다. 세월 건(建), 깃발 당(幢) 해서 건당을 하게 하면 당호가 주어집니다. 그 당호을 받는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스승 앞에서 법문을 합니다. 거기서 제가 법문을 “원통하고도 원통하구나. 나무아미타불” 이랬더니 무슨 이유에선지 딱 끝났어요. 우리 스님이 “뭐가 그렇게 원통하냐”고 물어보시고, 많은 스님과 신도들도 “스님 뭐가 원통하세요?”라고 물어봤습니다. 원통(圓通)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관세음보살님을 모신 곳을 관음전이라고 하죠. 또 원통전이라고 합니다. 왜 원통이라 하였는가? 관세음 보살님께서 <능엄경>에 스님들의 25가지 수행법을 말씀하십니다. 이근 수행법이 나옵니다. 그것을 일명 이근원통(耳根圓通)이라고 합니다. (중략) 

아까 이야기로 다시 넘어와서 제가 “원통하고 원통하구나” 했을 때 <능엄경>에 25가지 수행법에 이근원통을 말한 겁니다. 원통이라는 것은 가장 빠르고 전체적이고 쉽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그것이 원통의 뜻이죠. 원통을 하기 위해서는 처음은 호흡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제자에게 묻습니다. 세상에서 너에게 가장 무서움이 무엇이냐? 물어보니, 한 제자가 손을 들더니 배고픔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랬더니 부처님께서는 반은 알고 전체를 알지 못했다고 대답합니다. 또 한 제자가 공포, 불안이 두려움이라고 대답하니 너 역시도 반은 알고 전체를 알지 못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다 한 제자가 자기 코 밑에 갖다 댑니다. 그걸 본 부처님께서는 “너는 모든 전체를 다 알았구나”라고 대답하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손을 갖다 댔는데 숨을 들어 마신 것이 안 나오면 아니면 나왔는데 다시 숨이 안 들어가면 사람이 죽잖아요. 결국 인간은 숨을 못 쉬니깐 죽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호흡을 관(觀)해야 한다. 호흡에도 진리가 있습니다. 호흡은 내시고 마시는 뜻이지요? 호흡은 요즘말로 얘기하면 주고 받는 것을 뜻합니다. 주는 자만이 받을 수 있다. 주는 것은 많이 주고 받는 것을 조금 받으면 많이 남으니 복이 되는 것이다. 이게 호흡이고 인생의 진리다. 주는 건 많이 줘야 한다. 받는 건 적게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만이 너에게 복이 있을 것이라는 호흡의 진리가 있습니다. 그걸 집중하는 단계가 이근 원통이라는 것입니다. 또 음성에서는 그 사람의 진심이 나타납니다. 그것을 보시는 분이 바로 관세음보살입니다. 인간세상을 항시 보고 듣는 분이 관세음보살입니다. 예전에는 관세음보살님이 너무 자비로우셔서 자신만 부르면 오셨는데 요새는 “진짜 나 불렀냐”고 다시 물어보시고 옵니다. 그러면 정말 찾는 걸 어떻게 아시느냐? 비음을 듣고 진심인 것을 깨닫고 오시는 것이다. 이걸 이근원통 수행이다. 자기 음성 속에서 자기 모습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고, 앞으로는 바깥 관세음보살님 말고 자기 안 속 관세음보살님을 찾아서 확인하십시오. 내 안에 관세음보살님이 있습니다. 그걸 끄집어내서 확인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먼저 얘기하십시오. 그리고 많이 들어주십시오. 누구 이야기든 많이 들어주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살펴주십시오. 상구보리 하화중생이 이것입니다. 우리는 보살심이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는 것은 알고 있는데 무슨 뜻인지는 모릅니다. 이걸 쉽게 풀면 이런 내용입니다. 먼저 말하고 듣고 살피고 그 다음 이해해주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이게 상구보리 하화중생입니다. 그것이 된다면 상대방과 내가 좋은 느낌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행복의 주체는 우리 모두가 행복입니다. 인생의 목적은 우리가 모두 행복했을 때 그것이 세계일화(世界一花)가 됩니다. 세상 행복은 남을 위하는 마음에서 오고 모든 불행은 이기심에서 온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큰 소리로 다음 구절을 따라 읽으면서 오늘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살아가는데 있어 자기 자신을 살피지 않는다면 비록 다 가졌다 생각할지라도 마치 물거품과 같은 것이다.” 

[불교신문3342호/2017년11월4일자] 

정리=이성진 기자  sj0478@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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