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조사현장에서 나온 혜거국사비 비편.

영국사 터를 허물고 세운 도봉서원터에서 그간 탁본 일부만 전해지던 고려시대 영국사 혜거국사비 비석 조각이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오늘(10월27일) 도봉구와 불교문화재연구소가 조사 중인 서울 도봉서원 발굴현장에서 영국사 혜거국사비(慧炬國師碑) 비편 실물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10세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영국사 혜거국사비는 조선 제14대 임금 선조의 손자 이우(1637∼1693)가 현종 9년(1668) 금석문 탁본을 모아 엮은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 88자의 비문으로만 탁본으로 전해져왔다.

이번에 확인된 비편 실물은 62㎝, 폭 52㎝, 두께 20㎝ 크기로 총 281자가 새겨져 있다. 그 중 판독이 가능한 256자를 조사한 결과 ‘견주도봉산영국사’라 써진 글자가 확인됐다. 견주는 양주의 옛 지명으로 이는 지금까지 ‘영동지륵산영국사’로 잘못 알려졌던 혜거국사비 출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증거로 평가된다.

박찬문 불교문화재연구소 팀장은 “혜거국사비 탁본이 실린 <대동금석서>에는 ‘영국사 혜거국사비’라는 명칭만 기록돼 있어서 그간 학계에서는 충북 영동 영국사가 비석 소재지라는 주장이 있어왔다”며 “‘견주도봉산영국사’라는 비문이 새겨진 비석 실물이 나옴으로써 혜거국사비가 있던 장소는 도봉산 영국사였음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혜거국사비(慧炬國師碑) 탁본.

비편 발굴로 동일인물로 혼용돼 왔던 영국사 혜거국사(慧炬國師)와 화성 용주사에 있던 갈양사 혜거국사(惠居國師)가 동시대를 살았던 동명이인이었다는 점도 밝혀졌다. 비편 조사 결과 혜거국사는 고려 전기 법안종풍을 일으킨 10세기 유학승으로 고려 시대 광종(949~975)이 불교를 개혁하고 선교 양종(兩宗)을 통합하고자 도입했던 법안종을 고려에 처음으로 전파한 스님으로 추정된다. 또한 법안종을 만든 초조 법안문익(885~958)의 제자이며 적연국사 영준(932~1014)의 스승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조사 결과 고려 시대 하층유구에서 확인되는 통일신라 기와(중판선문 기와)와 건물기단 등으로 보아 영국사가 통일신라 시대 창건됐음이 밝혀졌다.

박찬문 팀장은 “그동안 탁본의 일부로만 전해지던 비편의 실물이 발견되면서 영국사의 정확한 위치와 건립 시기가 밝혀졌다”며 “이같은 결과에 따라 문헌에 명시된 바와 같이 도봉서원이 영국사 터에 창건됐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고 설명했다.

서울특별시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된 도봉서원은 선조 6년(1573년) 정암 조광조(1482~1519년)를 기리기 위해 옛 영국사(寧國寺)의 터에 창건됐다. 임진왜란 때 불탔다 1608년 중건된 후 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헐어내기까지 약 260여 년간 유지됐으나 지난 2011년부터 3년간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고려시대 불교 용구인 금강령·금강저·향로·발우 등 77점에 이르는 유물이 무더기로 출토된 바 있다.

도봉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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