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색역
                        이병률
복잡한 곳일수록
들어갈 때 구조를 외우면서
나올 때를 염두에 둡니다
재채기를 할 때 얼른 양손이 나서는 것처럼

모든 순서가 되었습니다, 당신

기차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당신이 산다고 했습니다
그 역의 막차 시간 앞에서 서성거리다

추운 그 역 광장에
눈사람 만들어 놓고 왔습니다

사랑의 주소지를 찾아간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마음은 내부 구조가 복잡한 역 같습니다. 고백할 사랑이 있지만 그의 내심에는 적지 않은 긴장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랑의 부근에서 주저주저합니다. 애를 태우고 마음을 쓰다 그의 몸과 마음을 눈사람으로 만들어 역 광장에 세워놓고 돌아섭니다. 유예된 사랑이 추운 역 광장에 남아 서 있습니다.  
이병률 시인은 시 ‘이 넉넉한 쓸쓸함’에서 “우리가 살아 있는 세계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계와 다를 테니/ 그때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 만나자”라고 썼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자상한 관심, 그리고 자신에 대한 친절이 필요합니다. 

[불교신문3337호/2017년10월21일자]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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