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 : 용성진종장학재단(총재 도문)

 

“야! 섬나라 오랑캐들아, 
니들 나라로 돌아가거라!” 
그러면 
“저 무식한 놈들, 
성정머리가 저리 삐딱해 
법도 모르는 종자들!” 

식민지 다스리는 
조선총독부 법령이 어느 새 
그들이 지키고 
열심히 따라야할 
법령이 되었다. 
그래서 조선은 … 

기미년 3ㆍ1만세 사건은 ‘천지개벽’이었다. 일본 놈들이 ‘니폰도’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냄새 맡으러 다니는 셰퍼드라 하면 어떨까. 아니다, 셰퍼드는 털이 덮였고, 발이 네 개라 이치에 맞지 않다. 곰 비슷한데, 털이 없으니 떼굴떼굴 굴러다니는 모과라 해도 좋다. 아니, 모과도 아니다. 이놈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다. 다만 가진 것 많고 문자 좀 읽은 조선 유가들은 칠팔월 귀뚜라미라 놈들이 들이민 손이 고마웠다. 조선조 내내 양반노릇하면서 주자 왈 어쩌고 편한 밥 먹으며 흰소리만 늘어놓아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 죄의식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강한 자에게 고개부터 처박는 이들에게 조국이란 없다. 태극기를 들고 만세 외치는 민중들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면서 그 새 염통에 고름이 들어 동족을 유유상멸(類類相蔑)로 친일에 옷고름을 달았다. 가만히 의뭉을 떨면서 만세 부르는 동족의 행적을 환히 꿰고 있다가 왜놈들에게 밀고하는 반민족을 업으로 삼았다.

이 자들의 뒷심은 메주와 같고 이끗에만 밝았다. 왜놈 형사들은 뱃속에 오장은 없고 창자가 작대기처럼 꼿꼿한 전제주의 맹독성을 품은 독충이다. 이끗에만 밝은 사람들에게 거짓 웃음으로 살살 얼러 똥구멍을 간질이면 고분고분 꼬리를 흔들며 찰싹 들러붙는다. 그것이 제 목숨 살 잔생이 보배다. 점잖게 말하면 안연좌시(安然坐視)이다. 편안히 앉아 뱃속 채우는 꿍꿍이가 있는데, 만세는 무슨 만세냐? 자청해 황국신민 어쩌고 턱주가리만 놀리면 때굴때굴 왜놈들 권력이 이웃사촌인데 민족이 밥 먹여 주냐? 쉽게 얻은 계집 쉽게 버리듯 조국을 홀라당 차버린 무리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났다. 형편이 이러니 범이 날고기 먹는 줄 모르고 만세를 부르며 날뛰는 자들은 모두 농사꾼이었다. 무식한 것은 자기를 망치고 나라에 해가 된다는데, 식민지 치하에서 만세 부르는 우직함은 심신은 고달파도 나라에는 해가 되지 않았다. 조선조 내내 주자를 그만큼 섬겼으면 주자의 개라도 되어 주자 왈 해야 할 무리들이 뼈다귀가 다 빠져 친일만이 사는 길이 되었다. 

무식의 표준이 무엇인가. 기준이 없어져 버렸다. ‘깡끼’가 빠져 친일로 돌아선 자들은 만세 부른 민중들이 일본 놈들에게 “야! 섬나라 오랑캐들아, 니들 나라로 돌아가거라!” 그러면 “저 무식한 놈들, 성정머리가 저리 삐딱해 법도 모르는 종자들!” 식민지 다스리는 조선총독부 법령이 어느 새 그들이 지키고 열심히 따라야할 법령이 되었다. 그래서 조선은 발가벗은 민족, 백성들이 일본 노예가 되었다. 먹는 데는 감돌이 일에는 배돌이라고, 민족을 찾다가 안다니가 똥파리 되는 세상인데, 없어진 민족 내세워 스스로 명부에 갈 것 뭐 있냐? 군구주의 총독부 법이란 게, 조선 백성들 족쇄를 채워 삶은 개 눈깔 뽑듯 하자는 것이므로 잘났다고 해봤자 목숨만 잃는다. 얼른 얼굴을 바꾸자. 그리고 한발 앞서 일본 앞잡이가 되어 눈알 희번덕이면 그것이 조선 백성들에게는 권력이 된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3월1일 만세사건이 터지고, 4월이 되어 일본 놈들이 개살구 씹는 맛으로 이맛살 찌푸리며 만세 부르는 자들에게 총을 쏘아 씨겁 잡아들여보니, 1만9500명에서 1만5700명이 찢어진 팬티만 입은 농민들이었다. 하이고야! 이 쭉정이들이 자주독립한다고? 일본 놈들은 낄낄, 일본 앞잡이 조선 놈들은 한 술 더 떠 독 오른 독사처럼 더욱 부지런히 애국지사들 뒤를 캐고 다녔다.

은엽은 민족의식에 눈을 떠 민족대표로 만세사건에 불을 집혀놓고 잡혀 들어간 스물아홉 인사들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알아보았더니 어느 나라 형법인지 왜놈들이 형법에 의해 심문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용성도 예외가 아니었다. ‘피고인’이라 이름이 붙어 왜놈 경무총감부 경부 타케무라 히코(竹村彦淸)가 조선사람 앞잡이 김영목 순사보를 데리고 심문을 시작했다.

타케무라, “독립선언서를 비밀히 인쇄해 각처에 뿌린 목적이 무엇인가?”

용성, “파리강화회의에서 독립문제가 거론돼 우리도 독립하려 한 것이다.” 

타케무라, “명월관(태화관)에서 무슨 협의를 했는가?”

용성, “식사를 한 뒤 조선독립 문제를 논의했다.”

이것이 3월1일 당일 이루어진 심문이었다.

수행시자 태현은 스승이 경무총감부에 붙들려간 사실을 즉각 대각교 재현에게 알렸다. 하나 태현과 재현이 경무총감부 앞에서 부릴 재주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것이 간계간옥(鷄看屋)이다. 좀 품위를 올려 말하면 나라를 빼앗긴 설음이 이것이다. 태현과 재현은 굽도 젖도 못하고 대각교로 돌아왔다.

용성은 경무총감부에 갇혀 3월14일, 검사 가와무라 시즈나가(河村靜永)와 서기 마츠모토 효우이치(松本兵市)의 2차 심문을 받았다.

가와무라, “피고는 1월부터 3월까지 조선독립운동을 하고 선언서를 배부한 것이 사실인가?”

용성, “그렇다.”

가와무라, “그래야할 이유가 있는가?”

용성, “있다!”

가와무라, “그 이유가 무엇인가?”

용성, “조일병합은 조선의 폐멸을 전제로 한 병탄이라 그렇다.”

가와무라, “후테에센진 고잔나레(不逞鮮人이군)!”

가와무라 말에 조선말로 대답했다가는 못 알아들을까봐 용성은 부러 일본말로 응수했다.

용성, “나마이키나야츠! 쯧쯧(건방진 녀석! 쯧쯧)…”

가와무라가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 쳐다보았다. 

경무총감부 앞에 하동규가 나타났다. 하동규는 혜일(慧日)이라는 이름을 받고, 백양사 강원에서 내전을 보다가 은사 용성선사가 민족대표로 연행되었다는 말을 듣고 대각교당으로 올라왔다. 하나 면회가 금지되어 은사 용성은 만나지 못했다.

은엽은 좀 더 두고 볼 생각으로 그쪽으로 귀만 열어놓고 지냈다. 개살구도 맛 들일 탓이라는데, 백상규가 언제 개살구 노릇을 했겠나, 까마귀가 제아무리 흰 칠을 해도 백조는 될 수 없는 법, 은엽은 그 점이 안타까웠다. 마음이 자꾸 백상규에게로 달려갔지만 병풍에 그린 닭은 홰를 치지 않는다. 범벅덩이에 쉬파리 끓듯 한 세상, 산간에 앉아 번잡스러운 것 모두 잊고 도사나 될 일이지 웬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나서기는 왜 나서…. 그러고 보면 상규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사람 사는 짓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은엽은 백상규를 처음 보았을 때 걸림 없는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유란 무엇인가. 외적 구속이나 자립의 상태를 침해 받지 않는 것이라면 백상규의 위치를 어디에다 놓아야할까. 스님도 같은 조국이 낳은, 피가 같은 민족이다. 거기에 배움까지 많다면 대중 앞에 지도자로서 나설 명분은 뚜렷하다. 그러함에도 나서지 않았다면 ‘아무 일 없는 놈’으로 사는, 그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님을 실감했을 법했다. 큰 바람 뒤는 으레 조용한 법, 은엽은 괘장을 부리듯 그가 어디로 튀는지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 

용성은 서대문 감옥으로 이감되었다. 1919년 5월6일 경성지방법원 예심괘 예심판사 나가시마 유조(永島雄藏)와 서기 이소무라 징베에(磯村仁兵衛)의 심문을 받았다.

나가시마, “이름은?”

용성, “백상규다.”

나가시마, “피고는 어느 절 소속인가?”

용성, “경남 합천군 해인사 승려로 있었고, 금정산 범어사에서 경영한 경성포교소에 있다가 봉익동 1번지에 단독으로 있다.”

나가시마, “왜 백용성이라 하는가?”

용성, “수행하는 수행자의 이름이 용성이다.”

나가시마, “피고는 경성중앙학림에 관계하고 있는가?” 

경성중앙학림은 조선총독부 권유에 의해 설립되었다. 나중에는 상해 임시정부와 연결되어 많은 인재들이 항일운동에 참가해 불교의 항일운동 중심지가 된 곳이다.

용성, “관계하지 않았다.”

나가시마, “피고는 손병희와 조선독립선언을 했는가?”

용성, “그건 다 아는 이야기 아닌가?”

나가시마, “그대들이 주장한 선언서는 일본 주권을 이탈, 자주독립국이 된다는 것인가?”

용성, “일본은 하루 빨리 조선의 독립을 보장해야 한다.”

나가시마, “그러면 조선이 일본 주권을 벗어난다고 생각하는가?”

용성 “그렇다!”

나가시마가 압수한 독립선언문을 들어보였다. 

나가시마, “이것이 독립선언선가?”

용성, “그렇다.”

나가시마, “선언문 취지에 찬성하는가?”

용성, “그렇다!”

나가시마, “총독정치에 불만이 있는가?”

용성, “하루빨리 조선이 독립할 필요를 강하게 느낀다.”

나가시마, “선언서에 서명 날인한 인장이 피고의 인장이 맞는가?”

용성, “틀림없다.”

1919년 7월28일 용성은 서대문 감옥에서 예비판사 나가시마 유조와 서기 이소무라 징베에 심문을 한 차례 더 받았다.

나가시마, “백상규인가?”

용성, “그렇다.”

나가시마, “피고는 지방에서 폭동이 일어나리라 예상했는가?”

용성,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나가시마, “다시 독립운동을 계속할 것인가?”

용성, “그렇다!”  

[불교신문3337호/2017년10월21일자] 

글 신지견 ·그림 배종훈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