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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용성진종조사 ] <36>앞은 무엇이고 뒤는 무엇인가⑦
  • 글 신지견 ·그림 배종훈
  • 승인 2017.10.1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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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춘은 
옛날 고구려 땅이었고 
조선조에는 야크와 같은 
흑수말갈이 근거한 곳이었다. 

조일합병 뒤에는 
조선 이주민이 끝이 없이 
유입되고 있었다.

조동희는 
송진산에서처럼 
황조롱이 떼가 갈대 속으로 
숨어들 듯 숲속에 
비밀 ‘아지트’를 만들었다.

희영이 넉살맞게 웃어 넘겼다.

“언니, 만세시위가 1대, 2대, 갑조, 을조로 나뉘어 행진했대?”

“그걸 모른 사람 있니? 1대는 남대문에서 서소문, 2대는 무교동에서 대한문, 갑조는 종로에서 창덕궁, 을조는 광화문에 조선보병대 앞으로 각기 출발, 경성 구석구석을 누빈 거야.”

“전국으로 번져간 건?”

“이야기만 들었어.”

대답이 껄렁했든지 토를 달았다.

“거봐! 교수님과 학생이 다른 게 그거야, 경기도는 개성, 동막, 인천으로 뻗어나갔고, 평택, 안성, 철원, 가평으로 퍼져나갔어. 충청도는 괴산, 서산, 영산, 공주, 강경, 서천, 유구로, 전라도는 군산, 이리, 전주, 남원, 광주, 화순, 광양, 영산포, 무안으로 들불 번지듯 번졌대. 경상도는 대구, 경주, 영해, 부산, 밀양, 진주, 함안으로 이어지고, 황해도는 황주, 수안, 사리원, 재령, 장연, 송화, 연안, 해주, 청석두로, 평안도는 평양, 안주, 진남포, 중화, 사천, 성천, 곡산, 순안, 맹산, 신창, 함종, 영원, 의주, 선천, 칠산으로 릴레이를, 함경도는 원산, 풍산, 길주, 온성, 회령으로 지금 온 나라가 만세소리로 들썩들썩한대.”

“전국 고을을 줄줄이 꿴 꿰미가 그리 기니? 조선 동포들이 태극기를 들고 모두 일어섰다고 하면 될 걸.”

동포여, 일어나라!

시기를 놓치지 말라.

죽음은 한 번뿐,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피와 피, 분발하라.

대한독립만세!

처음에는 조선총독부가 겁을 먹고 손을 못 썼다고 했다. 나중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진압에 나섰는데, 제암리 학살, 경성 십자가 학살, 경기도 화수리 만행, 평남 성천, 사천 탄압, 황해도 수안 탄압, 염병에 땀 못 뺀 놈 펄펄 뛰듯 깨진 독 서슬이 되더니, 조선 민중들을 가오리 회쳐먹듯 잔혹함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살된 사람만 7997명, 부상자가 1만5961명 검거된 민중이 4만6948명이라 했다.

조선독립만세시위는 해외로 번져나갔다. ‘대한인국민회’는 김규식, 안창호, 이승만이 멕시코, 블라디보스토크, 하와이에 각 지부를 두고 독립운동을 펼쳤고, 박용만은 대한독립단을 조직해 하와이에서, 정한경은 대한인흥사단 지부를 샌프란시스코에 조직해 운동을 펼쳤다. 서재필은 필라델피아에서 재미조선인 독립선언식을 갖고 독립신문 발행 모금에 들어갔다.

이들이 펼친 독립운동은 평화적이었으나, 시베리아, 중국, 만주에서의 독립운동은 무력투쟁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암살단, 기사단, 청년회, 독립단, 노인단, 23개 무장독립단체가 있었고, 하바로프스키와 이만(Iman), 만주 여러 지역에 북로군정서, 광복단, 군무도독부 등 무장독립단체가 산재해 있었다.

1919년 4월 시베리아 지역에서 활동하던 이동녕, 이시영, 조완구 등 30여 명의 독립지사들이 상하이에 모였다. 4월10일 1000명이 넘는 애국지사들은 회의를 열고 국호를 ‘대한민국’이라 정한 뒤, 대한민국임시헌법을 제정,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이승만이 초대국무총리로 선출되었으나 지나치게 독선적이고 정치성이 짙어 약아빠진 참새 방앗간 지나가듯 실속 없이 뻥튀기만 일삼아 임시정부에서 제명되었다.

“얘, 희영아 니네 아버지는 훈춘에서 뭘 하고 있다니?”

은엽은 자신을 질책하고 싶은 말을 희영에게로 넘겼다. 희영은 은엽의 물음에 갑자기 벙어리가 된 듯, 눈도 깜박거리지 않고 바라만 보더니, 눈 귀퉁이에 물방울이 고이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상시에 먹은 마음 꿈속에도 있다는데, 그것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망각은 기억에서 사라진, 이를테면 기억과 대칭되는 말이다. 서구에서는 ‘기억하고 슬퍼하기보다는 잊어버리고 웃는 편이 낫다’는 로제티(C. G. Rossetti)의 시 구절이 유행해 한가롭게 낭만에 젖어 산다는 것. 인간의 감성적 작용의 물리적인 것이 덧없는 것이라 함은 센티멘털한 사람들 전유물이 되기도 했다. 하나 심리적 관점에서 보면 그 말은 재고되어야 한다. 망각은 일본말로 모테크(ぼうきゃく)라 하고, 서구에서는 오블리비언(oblivion)이라 한다. 오블리비언의 어원은 고대 인구어에서 연유된 것이겠지만 은엽은 그것까지는 몰랐다. 오블리비언을 한자로 옮겨 적으면 실념(失念)이다. 에빙하우스(H. Ebbinghaus)의 망각곡선 범위를 벗어난 실념은 정신의학상 질병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엽은 생각에 잠겼다. 어려운 이야기 같으나 ‘비원천적 원천은 그것에 이어지는 어떤 시간 앞에서는 현재가 아니다’ 이는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적 틈을 만들어내는 공간적 사이의 현재라는 것으로, 우리들 현재와 그 작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간상 타자의 실재가 눈에 보이듯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데도 그것을 그림자로 칭한다. 사람들은 이 그림자를 양상이 전혀 다른 미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미망이 스스로를 어리석게 하는데도….

철학이나 심리학은 부지깽이 잡듯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뭔가 손에 움켜쥔 맛이 있어야 민중이 한 덩어리가 되어 한반도 골짝골짝에 울려 퍼진 웅심 깊은 메아리의 원동력으로 있게 한다. 만세시위는 철학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론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함에도 똘똘 뭉쳐 시간을 따라 한반도의 공간을 지배했다. 지금 민중들이 일본 식민지로 전락한 이놈의 나라 뒤집어엎어 새로 세울 듯 후끈 달구고 있는데, 삼촌은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조동희는 평양으로 내려와 갑부 박태은과 원산, 함흥, 청진, 나진까지 동해안을 돌아보았다. 합방 후 무단통치가 시작되면서 전국 곳곳에 주재소가 들어섰다. 주재소는 일본인 순사가 조선인 보조원을 데리고 지역 사람 사생활을 감시 감독한 곳으로, 등골에 오싹 소름이 끼친 곳이다.

나진은 항만이 넓은 데다 부동항이어서 일본 침략자들이 눈독을 들인 지역이었다. 조동희는 박태은의 재정적 뒷받침으로 열혈청년들을 모아 나진 북쪽 높이 솟은 송진산 자락에 유격 훈련소를 만들어 맹훈련에 들어갔다. 유격대는 함경 북부에 새로 들어선 주재소가 타깃이었다. 부령, 회령, 종성, 경흥 각 읍면에 조선사람 감시초소 역할을 한 주재소를 습격 불을 질러 일본인 순사와 친일 보조원까지 사살했다. 조선 사람들이 주눅이 들었다고 말조차 못하겠는가. 그 바람에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살아 나타났다고 떠들썩했다. 한데 친일 보조원 그놈들이 문제였다. 놈들은 지역사회 동향과 민심의 움직임을 잘 아는지라 세작이 되어 구체적 정보를 캐내 헌병대에 보고했다. 헌병대가 유격대를 뿌리 뽑겠다고 작정하고 나섰다. 제갈량 심서에 ‘하늘이 기회를 주었는데, 따르지 않으면 사람을 거역하는 것이 된다’는 말이 있다. 이럴 지경이면 좀 피해 있으라는 전략일 것이다. 작전상 후퇴라 했듯이 그래서 휴식을 취하면서 잠깐 피해 있기로 했다. 유격대원들은 흩어지면 자취가 없다. 농사꾼은 농사꾼으로, 장꾼은 장사꾼으로 성 쌓고 남은 돌처럼 혼자가 되어 시침 떼고 돌아다닌다. 하나 내면에는 금강석과 같은 강직한 충의의 불꽃이 감춰져 있다. 

조동희는 그 틈을 이용해 경성으로 올라가 거액의 독립자금을 모아 대원들과 미리 약속을 해둔 경원군 안농면 농포리로 내려왔다. 철로 건너 두만강 연안, 평상처럼 드넓은 갈대밭에 나타나 다시 유격대원을 모았다. 혼자 사는 동네에는 면장이 구장이듯 건달들이 과붓집 기웃거리듯 왜놈들 동태나 살피던 315명의 대원들이 다시 모여 두만강을 건넜다.

조선은 만주 벌판에 비하면 두꺼비가 콩대에 올라가 세상 넓다는 말이 나올 만한 땅이었다. 좁은 벼룩 등때기 같은 조선 땅에서 육간대청을 짓고 척하면서 살아 그런지 만주라는 곳이 하도 넓어 어디가 어딘지 종잡을 수 없었다. 벌판 가운데 주택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 훈춘이라는 곳이었는데, 조동희는 300여 대원들을 이끌고 훈춘에서 서너 마장 떨어진 숲속에 자리를 잡았다. 훈춘은 옛날 고구려 땅이었고 조선조에는 야크와 같은 흑수말갈이 근거한 곳이었다. 조일합병 뒤에는 조선 이주민이 끝이 없이 유입되고 있었다.

조동희는 송진산에서처럼 황조롱이 떼가 갈대 속으로 숨어들듯 숲속에 비밀 ‘아지트’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차치고 포치 듯 기세당당하게 일본군과 싸운 홍범도라는 젊은 장수를 만나 독립자금도 지원해 주었다. 훈춘이라 해서 제국주의 군대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한데 현지에 와서 보니 왜놈 군대보다도 마적이 문제였다. 마적은 촌락을 습격하여 약탈을 일삼는 도적하고 달랐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이민족은 말할 것 없고 지방의 악덕 관리와 군벌들의 착취를 막고 민중을 지켜주는 조선조 임꺽정과 장길산이 이끈 조직 비슷한 군도였다. 이들도 무장을 했고, 고단의 무예를 연마한 자들이 많았는데, 대개 7~8명, 많게는 100여 명 남짓 소규모집단이었다. 민중자위조직으로 출발한 마적은 세월이 지나 일부 비적으로 바뀌어 숲속에 은거했다. 300명이 넘는 특수조직인 유격대에게는 그들이 경계 대상이기도 했다.

[불교신문3336호/2017년10월11일자] 

글 신지견 ·그림 배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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