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할아버지, 지난번에 법공양 얘기를 할 때 부처님이나 스님들이 하는 말씀을 설법이나 법문이라고 한다고 하셨어요. 법문은 참다움에 드는 문이라고 들려주셨는데 설법을 어째서 법문이라고 하는지 궁금해요?

스스로 ‘참답게 사는 문’에 들어

누구나 다리 쭉 뻗고 살 수 있게

‘새로운 문’을 짓도록 이끌어주지 

Q 틱낫한스님은 부처님께서 당신 스스로를 문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해. 그러니까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한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란 거룩한 문을 열고 참다운 품에 들어간다는 말씀이야. 아울러 거룩한 부처님 가르침과 청정한 승가에 귀의한다는 말씀 또한 참다운 가르침과 승가공동체라는 품에 들어 기어이 부처를 이루어 새로운 문을 열겠다는 다짐이지. 

이 문은 우리에게 자연과 사람, 여성과 남성, 아이와 어른, 여리고 서툴거나 장애를 가졌거나 경험이 많고 힘이 세거나, 가리지 않고 서로서로 떠받들고 북돋우면서 자비와 평화, 기쁨을 한껏 누릴 수 보금자리로 들어가도록 해주는 남다른 문이야. 그래서 부처님은 당신처럼 좋은 벗을 만나는 것은 수행을 다 이룬 것과 같다고 하신 거란다.

놀라운 일은 참답게 살아 갈 수 있도록 하는 문이 팔만사천개나 있다는 것이야. 그런데 그토록 많은 문 가운데 하나를 찾았다고 오직 이 길뿐이라고 으스대고 나선다면 불자다울 수 있을까?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도 마을 어귀를 지나 집집마다 대문이 있잖아. 또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현관문이 있고 현관에 들어서서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창문이 또 있어요. 방문은 몸이 드나드는 문이고 창문은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숨통을 트이게 하는 문이잖아. 그렇듯이 모든 문은 몫몫이 구실이 달라요. 무엇보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면 마음이 놓이지? 그와 같이 참다운 법문에 들어서서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주의 깊게 볼 수 있는 눈길이 열리고 나면, 마음 놓인단다. 남보다 먼저 불자가 되어 마음 놓고 사는 사람들은 앞으로 올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문을 열고 들어와 너나들이 다리 쭉 뻗고 누릴 수 있도록 더 많은 문을 찾아 열어둬야 하지 않겠어? 

법문, 참답게 살아있는 문이란 경전을 꽃아 둔 책꽂이도 아니고, 부처님 가르침이 흘러나오는 유튜브 영상도 아니며, 하루하루 마음을 다해 오롯하니 삶으로 드러내는 것이란다. 그러니까 불자라면 모름지기 부처님 가르침을 입에만 올려서는 안 되고, 부처님 가르침대로 한껏 살아내야 해요. 부처가 되어 새로운 문을 짓는 일이지. 

[불교신문3336호/2017년10월11일자] 

변택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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