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이 내 복밭이고 선지식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부 정책 수립과 함께 이웃을 가족으로 여기는 마음도 필요한 시대이다. 출처=Pixabay

장애 학생 부모들 눈물 호소 
주민, 이기주의 아니다 항변
약자를 배려하는 자세 ‘필요’
상생 방안 찾는 노력 있어야

지난 9월 5일 학부모들이 무릎 꿇은 한 장의 사진이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고개 숙인 20여 명의 엄마와 아빠는 장애 학생들의 학부모들이였다. 이날 서울 강서구 탐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 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 2차 주민토론회’에서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동의를 호소하며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이날 장애학생 학부모들은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호소했다. “욕을 하시면 듣겠습니다. 지나가다 때리셔도 맞겠습니다. 그러나 장애 아이들도 교육 받을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눈물로 간청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다수 주민들의 야유였다. 주민들은 “특수학교 설립은 찬성하지만 우리 지역에는 안 된다"며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일부는 “쇼하고 있다”며 고성으로 응대했다.

정상적인 주민토론회를 기대하기 어려운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특수학교 설립 반대 주민과 장애학생 학부모들이 대화를 통해 의견을 조율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할 지역 국회의원은 토론회 도중에 자리에서 일어나 빈축을 샀다. 결국 그는 토론회장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서울시 교육청은 주민토론회에 앞선 지난 8월31일 공고한 ‘강서 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안)’ 행정예고에서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장애학생의 학습권 보호 및 특수교육 여건 개선과 특수학교 신설을 통해 원거리 통학 및 과밀 학급 연쇄 해소”를 추진 사유로 밝혔다.

이같은 소식이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후 ‘내 집 앞은 무조건 안 된다’는 특수학교 설립 반대 주민들의 ‘지역 이기주의(NIMBY)를 꼬집는 비난 여론이 쇄도했다. 어려운 이를 대할 때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 즉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왔다.

주민들은 억울하다고 한다.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반대추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주민들은 “지역 특색에 맞는 사업으로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의료관광산업, 한의학 육성을 통해 지역 발전을 도모하자는 취지를 지역 이기주의로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5일 토론회장에서 한 여성 주민은 “강서구에는 기피시설이 죄다 모여 있다”면서 “못사는 지역을 생각해달라고 하는데 ‘님비’라고 하거나 집값 때문에 반대한다고 왜곡보도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학교 설립을 놓고 찬반 여론이 고조되면서 사회 갈등 양상으로 번질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는 9월 18일 “헌법 및 교육기본법,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 상 평등정신에 위배된다”면서 특수학교 설립 반대가 헌법의 평등정신을 위배한다는 입장을 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 특수학교가 지역사회 안전이나 발전을 저해한다는 근거가 없다”면서 “유독 장애인 특수학교만은 안 된다고 반대하는 건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위해 학령기 장애아동이 누려야 하는 기본권의 동등한 향유를 막는 행위”라고 밝혔다.

20여 년간 장애인포교 외길을 걷고 있는 사회복지법인 연화원 대표이사 해성스님(광림사 주지)은 “(강서구 특수학교설립 관련) 뉴스를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장애아동도 우리들의 자식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면서 “몸이 조금 불편한 것인데, 차별 받고 편견에 놓여 있어 장애아동뿐 아니라 그들의 부모를 생각하면 마음이 저리다”고 토로했다. 해성스님은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어릴 때 교육이 잘 안 되어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이 생기는 것 같다”면서 “어려서부터 장애아동들과 친구와 가족처럼 지내면 인식이 바뀔 수 있다”고 제안했다.

강서구 주민들의 특수학교 설립 반대 외에도 쓰레기 소각장, 장례식장, 자원순환센터, 자원순환센터 등의 설치를 반대하는 사례가 전국적으로 많다. 우리 사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지만 ‘내가 사는 곳’만큼은 안 된다는 주장이 날선 듯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해당 지역 주민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하고 협의를 이끌어내려고 하지만 원활한 타개책을 마련하기 어려운 것이 대부분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들 시설을 설치하는 동시에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 시킬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해 시행하면서 합의점을 찾고 있다. 치열한 대립으로 소모적인 갈등을 지속하는 대신, 상호 한발씩 양보하여 원만한 해결책을 찾는 것은 지혜로운 대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약자의 입장을 배려(配慮)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부처님 재세지 사위국 바사닉왕 공주로 아유사국에 시집간 승만부인(勝鬘夫人)의 열 가지 서원은 시대와 국가를 넘어 교훈으로 다가온다. 신심이 돈독한 승만부인은 “외로워 의지할 데가 없거나 구금을 당했거나 병을 앓거나 여러 가지 재난을 만난 이웃들을 보면, 그들을 도와 편안하게 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한 다음에야 그 자리에서 떠나겠습니다”라고 발원했다.

<화엄경>에도 자비행과 보살행의 가르침을 강조하고 있다. “한량없는 많은 이웃들이 와서 달라고 하더라도 보살은 조금도 싫어하거나 귀찮게 여기지 않고 더욱 자비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대하라.” 이러한 가르침은 나와 남을 차별하는 마음이 큰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경책이다. <화엄경>을 비롯한 불교 진리는 시대와 지역을 넘어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이다. “이 이웃이 내 복밭이고 선지식이다. 찾아가지도 않고 청하지도 않았는데 몸소 와서 나를 바른 법에 들게 하는구나. 나는 이와같이 배우고 닦아서 모든 이웃들의 마음을 서운하게 하거나 어기지 않으리라.” 

* 경전에서

자애가 도량이니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민이 도량이니 지치고 괴로움을 참기 때문이다. 기쁨이 도량이니 법에 환희하기 때문이다. <유마경>

온 세상 자비로 가득 채우리라는 큰마음 품을지니 위 아래 그리고 가로질러 미움이나 악의도 없이 서서나 걸을 때나 앉아서나 누워서나 성성하게 정념을 챙기라. <자비경>

이 대지는 모든 중생들의 뿌리다. 한결 같아서 변함이 없고 대가를 바라지도 않는다. <보적경>

잘 길들여진 코끼리는 아무리 무거운 짐을 나를지라도 지치는 일이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잘 닦인 보살은 모든 중생의 무거운 짐을 모두 나를지라도 지치지 않는다. <보적경>

보살이 청정한 행을 갖추려면 사랑하고(慈), 가엾이 여기고(悲), 기뻐하고(喜), 평정한(捨),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四無量心)을 닦으라.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탐욕을 끊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닦는 이는 성내는 일을 끊으며, 기쁜 마음을 닦는 이는 괴로움을 끊고, 평정한 마음을 닦는 이는 탐욕과 성냄과 차별을 두는 마음을 끊는다. 이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은 온갖 착한 일의 근본이다. <열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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