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다문화 도량’

토요학교 축제 대안학교 등
이주민 국내 정착 지원 다양
어린이 직장인 계층포교도 활발
“인재 불사가 최고의 불사” 강조 

다문화가정 아동을 주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는 오산시립지역아동센터에서 지난 13일 아이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오산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대각사 포교원(주지 정호스님)을 지난 13일 찾았다. 4층 규모의 건물로 3층은 법당, 2층은 다문화대안학교, 1층과 지하는 사무실이 있는 공간이다. 이날 1층에서는 대대적인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국제로터리클럽에서 기금을 받아 이주민을 위한 사업장을 만드는 중이었다. 대각사는 오산 지역에서 ‘이주민을 위한 대부’로 불리는 사찰이다.

인구 21만의 작은 도시 오산. 이곳에서 대각사가 차지하는 위치는 자못 크다. 사단법인 나눔과 비움을 통해 이주민 자녀를 위한 토요학교, 다문화축제 사업, 경기도 위탁형 다문화대안학교 운영, 오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오산시건강가정지원센터,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의 인권을 지원하는 행복한이주민센터, 그리고 오산시립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또 서울 광진구립 자양종합사회복지관과 광진구립 노인보호센터, 효지어린이집, 화송어린이집도 대각사가 운영을 지원하는 시설이다. 

지난 2013년 9월 열린 다문화대안학교 개교식.

1988년 창건한 대각사가 이처럼 사회적 활동을 눈을 돌린 계기는 11년 전이다. 주지 정호스님은 시내를 걷다 이주민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날따라 외국인 이주민이 눈에 들어왔어요. 화성 등 인근 공장지대에 근무하는 이주노동자와 결혼 이주여성이 많다는 것을 그때 알았어요. 먼 이국에서 고생을 하는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고민했어요.”

조계종 포교원을 통해 이주민 사업 계획을 전달받은 스님은 곧장 다문화지원사업을 시작했다. 한글교실을 열고 임금체불, 인권문제 상담소를 열었다. 많은 이주민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왔다. 그렇게 1년 정도 지원활동을 하면서 다문화가정의 문제에 눈을 돌렸다. 청소년들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스님은 세미나를 통해 다문화가정 청소년들의 문제점 파악에 나섰다. 그리고 대안학교 설립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런 노력은 2007년 대각사가 설립한 행복한이주민센터를 통해 하나씩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경기도교육청에서는 대각사의 지적을 받아들여 중고등학교를 중퇴한 다문화가정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대안학교 3곳을 지정했다. 그 중 한곳이 현재 대각사 포교원에 자리한 ‘행복한 학교’이다. 현재 20여 명이 아이들이 수업을 받고 있으며, 중ㆍ고등학교 통합 정규학교로 운영 중이다.

또 2015년에는 오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위탁받아 다문화가족이 우리 사회에 정착하도록 각종 교육과 상담,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다. 다문화가정 아동을 위한 지역아동센터도 설립, 대각사에서 위탁운영 한다.

이주여성의 가장 큰 고민은 경제활동이다. 마땅한 일거리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스님은 사찰 사무실로 사용하던 1층을 다문화가정을 위해 내놓기로 했다. 그리고 국제로터리클럽과 오산시에서 시설비 지원을 받아 분식점과 커피숍, 빨래방, 상담실 공사를 진행 중에 있다. 분식점에서는 칼국수와 베트남 쌀국수 등을 판매하게 된다. 일거리를 창출하면서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은 전부 다문화가정 지원사업에 사용한다는 구상이다. 

용인에 위치한 대각사 전경.

대사회적인 활동을 하지만, 대각사 포교원은 사찰이다. 불교의 가르침을 시민들에게 전하는 곳이다. 대각사는 어린이법회서 거사회, 직장인 불자회 등 다양한 계층별 법회와 더불어 지역법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주지 정호스님의 원력이 맺은 결실이기도 하다. 큰 절에 소임 살면서 초하루법회 때 많은 신도들이 한 번에 모여 법회를 보는 모습을 보면서 “다양한 사람이 한 번에 모여 법회를 보다보면 법문이 와 닿지 않는다. 부처님께서도 상대의 근기에 따라 법문을 달리했듯, 신도들의 계층에 따라 법회 내용을 달리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던 스님이다. 

정호스님이 몇몇 신도의 요청으로 건물을 임대, 대각사 포교원을 개원하고는 이런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한 달에 33회 이상의 법회를 치러내며 어린이, 청소년, 청년, 신도회, 직장별로 법회를 다양화했다. “몸은 고달팠지만, 신도들은 꾸준히 늘어났다”는 스님은 10여 년 간 두문불출, 법회에만 전념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신도들이 늘어나자 문수회, 천수회 등 다양한 신도회를 만들어 활동하도록 하는 한편, 용인에 대각사도 건립했다. 상가건물에 입주해 있는 도심 포교당의 단점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건립했는데, 지은 지 20여년이 돼 가지만 지금도 대웅전 이외에는 제대로 된 건물조차 없다. 스님이 대중을 맞이하는 차담실도 가건물이다. 사찰로 오르는 길도 비포장이다. 하지만 스님은 “건물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단다. 

대각사 포교원에 가면 다양한 이주민을 만날 수 있다. 조만간 1층 건물 공사를 마치면 더 많은 이주민이 행복한 한국정착을 꿈꾸며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모두가 부처님 품 안에서 행복한 사람들이다.

[불교신문3332호/2017년9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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