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관념서 완전히 벗어나 허공 같을 뿐

부처님 곁에서 수행한 사람은 
포기하지 않는 한 해탈하지만 
해탈케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수보리여, 그대의 생각에는 어떠한가? 그대들은 “여래께서 ‘내가 마땅히 중생을 제도했다’는 생각을 낸다”고 말하지 말지니라. 수보리여,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느니라. 왜냐하면 실제 여래가 제도한 중생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니라. 만일 여래가 제도한 어떤 중생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여래에게 곧 나에 대한 집착 · 사람에 대한 집착 · 중생에 대한 집착 · 목숨에 대한 집착이 있게 되는 것이니라.

제25분의 앞부분 설명은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제3에서 ‘보살의 요건’으로 자세히 밝힌 내용보다 한 단계 깊어진 것이다. 대승정종분 제3에서는 다음의 요지를 말씀하셨다. 즉 대승보살은 모든 중생을 해탈시킬 목표를 세우고 수행하여 중생을 해탈시켜야 한다. 그러나 해탈시킨 후에는 해탈시켰다는 생각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만약 중생을 해탈시켰다거나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이 있다면 아직 중생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 아니므로 보살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여기 제25분에서는 여래의 중생제도에 대한 정리이다. 우리는 흔히 “부처님께서 중생을 제도(濟度, 해탈시킴)하셨다”고 표현한다. 만일 이 말이 맞는 것이라면 중생을 제도시키는 주체가 부처님이 된다. 그렇게 되면 중생이 수행하지 않더라도 부처님께서 해탈시킬 것이므로, 중생들은 무조건 부처님께 매달리면 된다. 그렇다면 불교도 유일신을 믿는 다른 종교와 차이가 없어진다.

불교는 수행의 종교이다. 자신이 직접 수행하여 해탈하는 것이 불교의 핵심이다. 그럼 불보살이나 선지식이 중생을 교화한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교화(敎化)란 가르치고 인도하여 스스로 변하게 도와준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아무리 도우려고 해도 스스로 변화할 마음이 없고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만약 누군가가 해탈했다면 선지식의 도움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해탈은 해탈한 자의 공이며 몫이다. 

부처님은 매우 풍요로운 큰 숲과 같다. 숲에는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과 풍성한 먹을거리 등이 있다. 커다란 숲은 맑은 에너지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숲에 들어간 사람이라면 그 맑은 에너지의 도움을 받아 몸의 기운이 맑아지고 강해질 것이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면 되고 배가 고프면 과일이나 약초 등을 캐어 먹으면 된다. 오래 머물고 싶으면 집을 지어 살면 된다. 맑은 에너지는 부처님의 지혜와 같고 맑은 물은 자비와 같으며, 많은 먹을거리는 가피와 같고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은 공덕과 같다. 그러므로 크고 풍요로운 부처님의 숲에 든 사람은 스스로가 노력만 한다면 비록 바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 모든 것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멀리서 숲을 향해 맑은 에너지를 보내달라고 간절히 빌고만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간접적으로도 다소의 공기와 물 등의 혜택이 주어지긴 하지만 숲에서부터 멀어질수록 공기도 점차 탁해지고 물도 점점 오염되는 것이다. 숲은 가까이 있는 사람과 멀리 있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가까이 하고 멀리함에 따라 받는 혜택이 달라질 뿐이다. 

부처님도 마찬가지이다. 곁에서 수행하는 사람은 지혜 · 자비 · 가피 · 공덕의 혜택을 쉽게 받을 수 있지만, 가까이 오지 않는 사람에게 그런 혜택을 보내줄 수는 없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사람들을 차별해서가 아니다. 즐겨 가까이 하고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은 스스로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싫어하고 멀리하는 사람은 스스로 닫혀 있기에 받아들이지 않을 뿐이다.

부처님 곁에서 즐겨 수행한 사람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반드시 해탈한다. 그러나 해탈한 사람이 부처님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해탈에 이른 것이다. 그런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어떤 사람도 해탈시켰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신다. 뿐만 아니라 이미 모든 관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분이니 허공 같을 뿐이다. 

[불교신문3332호/2017년9월23일자] 

송강스님 서울 개화사 주지 삽화 박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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