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과의 기나긴 전쟁으로 
깊은 좌절과 상처로 신음할 때 
일연대사가 ‘삼국유사’를 집필해 
민족적 자긍심과 문화적 화수분을 
이루어낸 것과 같이 
불교계를 중심으로 
호국과 국가의 미래에 대한 
원려가 필요하다

새벽에 잠이 깨니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한반도의 지독한 엄동설한을 예고하듯 그칠 것 같지 않게 어둡게 내린다. 2013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두고 중국 인민일보는 한반도 관련 4개국에 대해 이렇게 적시했다. 북한은 “상황을 오판하지 말고 반도의 국면이 조선의 생각과 기대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하고, 미국에 대해서는 “불난 곳에 기름 붓지 마라”고 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남의 집에 불났을 때 강도짓 하지마라”,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한국이 가장 피해본다는 핵심을 잃지 마라”라고 적반하장의 평론을 늘어놓았다. 그 후 4년이 지난 오늘날 북한의 핵실험과 우리의 사드배치를 두고 중국 환구시보는 사드는 악성종양이고 한국의 보수주의자는 김치만 먹어서 멍청해진 것이냐고 비난했다. 한국은 강대국 사이에서 개구리밥(부평초) 신세가 될 것이며 수많은 사찰이나 교회에서 기도나 하라고 막말을 쏟아냈다.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깨어날 때 짐작하지 못했던 일도 아니다. 지배민족의 부침과 함께 나라의 이름을 바꿔가면서 한반도의 운명을 쥐고 괴롭힌 게 어제 오늘이 아닐지니 놀라울 일은 아니지만 평양으로부터 날아든 핵공포의 충격에 온 국민이 빠져있는 상황에서 우리 고유의 음식과 종교 문화를 비아냥거리는 태도야 말로 치가 떨리는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보면 한반도의 좁은 시각으로 중국을 판단하고 중국의 변화를 알지 못해서 수난을 당한 것이 얼마던가. 원명, 명청 교체기가 그랬다.

이제는 이러한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중국 관영매체의 의도된 자극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중국 정부와 지도층의 의도를 분석해 내고 그에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나 중국은 우리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과 관건적 역할을 해오고 있다.

연암 박지원은 “천하는 텅 빈 그릇이요 그 그릇은 바로 이름(名)으로 유지되는 것이니 그 이름은 부끄러움(恥)으로 기르는 것”이라고 했다. 오늘날의 중국인들이 공자를 숭상한다면 바른 이름과 명분(正名)을 중요시해야 할 것이며 부끄러움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분단된 한반도의 곤궁한 처지를 최대한 이용하면서 품격마저 저버린 덩치에게 이성과 체면을 기대할 수 있던가.

여당은 여당대로 임시다, 모호성이다 감추고, 야당은 야당대로 당당하라 삿대질만 하고 있다. 편 가르고 주장하는 일은 그만두고 이제 생존과 책임만 생각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다시 가다듬는 계기로 삼아가자. 웃고 떠들어도 비장함을 잃지 말자. 도를 넘는 중국의 치졸한 관영매체의 비아냥에 마음 상하지도 말자. 덩치 값도 못하는 국격을 나무라면 무엇 하겠나.

그들의 저급한 국격의 모욕속에서도 반만년 역사를 이어오면서 숱하게 당한 치욕을 되풀이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와 대비만이 살길이다. 광기 어린 독재자의 손에 들린 핵을 머리에 얹고 시진핑, 푸틴, 아베, 트럼프 등 한반도를 둘러싼 마초(Macho)들의 틈바구니에서 우리가 어떻게 오늘을 잘 보전하고 후세의 안전을 도모할 것인가. 

단군 이래 최상의 민주적 경제대국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만 생각했으면 한다. 13세기 고려가 몽골과의 기나긴 전쟁으로 깊은 좌절과 상처로 신음할 때 일연대사가 <삼국유사>를 집필해 민족적 자긍심과 문화적 화수분을 이루어낸 것과 같이 불교계를 중심으로 호국과 국가의 미래에 대한 원려가 필요하다. 

[불교신문3331호/2017년9월20일자] 

하복동 논설위원·동국대 석좌교수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