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 그의 생애와 사상

채상식 지음/ 혜안

40여 년 고려불교사 연구한
불교학자의 원력 담은 역작

고려불교 대표하는 고승
행적을 ‘중심축’ 삼아 저술

“사서편찬, 관음신앙 큰관심
삼국유사의 탄생 배경 됐다”

<삼국유사>를 저술한 고려시대 고승 보각국사 일연스님(1206∼1289). 우리 문화유산의 보고로 꼽히며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삼국유사>의 가치에 비하면 저자인 일연스님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고려시대 가장 격동기였던 13세기를 살았던 일연스님의 생애가 중요한 것은 그가 역사학자이기 이전에 선승의 삶을 살았던 수행자였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고려불교사를 연구해온 채상식 부산대 사학과 교수는 최근 펴낸 <일연 그의 생애와 사상>에서 일연스님의 행장을 중심으로 <삼국유사>에 담긴 역사성과 시대정신을 구명하고 있어 주목된다.

일연스님의 행적은 지난 2006년 스님의 탄생 800주년을 맞아 군위 인각사에 일연비를 복원함으로써 어느 정도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게 됐다. 이는 파손되기 이전에 만든 일연비의 탁본첩을 대조, 판독함으로써 가능했다. 일연스님이 원종 2년(1261) 왕명에 따라 강화도 선월사에 머물며 ‘멀리 목우화상(牧牛和尙) 지눌(知訥)을 계승했다’란 구절이 밝혀져 ‘일연비문’ 필사본의 오류를 바로 잡기도 했다. 또 일연스님의 행장과 비음기를 찬술했으며 일연비를 건립한 인물이 고려시대 왕실과 밀접한 관련을 맺은 청분스님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저자는 “청분스님은 가지산문이 일연스님을 정점으로 크게 세력을 형성해 불교계 중심교단으로 등장하게 되자, 일연스님의 입적 후 계승자로 추대된 인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채상식 부산대 사학과 교수가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스님의 사상과 생애를 재조명한 연구서 <일연 그의 생애와 사상>을 최근 펴냈다. 사진은 지난 8월29일 군위 인각사 경내 국사전 앞에서 열린 ‘보각국사 일연선사 제728주기 다례재’

이와 더불어 일연스님은 비슬산에서 20여 년 수행하다 남해 정림사에 주석했다. 이를 계기로 대장경 조판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스님의 행적은 정치권력의 향배에 따라 전개됐다. 일연스님이 대선사가 되고 고려 원종의 명에 의해 선월사에 주석하게 된 것은 왕정복고 세력들과 연계됐기 때문이다. 이때 일연스님은 중앙 정치권력을 배경으로 주로 경상도 소재 여러 사찰에 주석하면서 가지산문의 재건에 힘썼다. 그러다 고려 충렬왕의 명에 따라 운문사에 주석하고 국존에 책봉됨에 따라 스님으로서 최고 승직의 길을 걷게 됐다.

이처럼 일연스님이 만년에 이르러 최고의 승직에 오르고 스님이 속한 가지산문이 부상하는 등 화려한 길을 선택한 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저자는 이를 두고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기 위해 현실참여의 길을 모색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 “많은 고뇌와 자기성찰, 암울한 시대상에 대한 인식 등이 따랐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결국 일연스님이 본래 지향했던 목표인 수행과 교화를 위한 노력은 장년기 이후 스님의 유명세를 이용하기 위한 단월들에 의해 상당 부분 왜곡되었던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충렬왕과 그의 주변 측근세력들에게는 불교계 지원이라는 현실적인 이해관계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연스님이 마지막으로 회향한 길은 <삼국유사>의 저술이었다. 이를 통해 무신정권, 대몽항전, 원간섭기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가장 고통을 받았던 백성들에게는 구원과 희망을 제시하고, 이민족의 침탈에 대해서는 민족의 자존감을 강조했다. 결국 역동적인 시대상황이 스님으로 하여금 수행 못지않게 구원과 희망을 강조하는 교화에 눈을 돌리게 했고, 이때 귀착한 것이 사서(史書)의 편찬과 관음신앙이었다. <삼국유사 >는 바로 이러한 흐름 속에서 탄생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또한 일연스님의 저술과 편수한 서적이 100여 권에 이른다는 것은 제자 산립스님이 “화상의 문풍(門風)은 광대(廣大)하여 모두 갖추었다”라고 표현한 것과 맥을 함께한다. 현존하는 <삼국유사>와 <중편조동오위> 등을 통해 사상적·신앙적 폭과 깊이를 가늠해 보면 일연스님은 선종과 교학을 망라했으며, 밀교에까지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는 “평생을 업으로 불교사를 선택하면서 주목한 연구주제 가운데 하나가 일연스님이었다”면서 “스님은 40여 년에 이르는 연구이력에서 주요 관심분야의 한축이었으며, 언젠가 완성된 형태의 성과물을 만들고 싶은 대상이었다”고 책 출간에 따른 소회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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