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매만지며 
이름을 부를 때마다 
꽃과 시인이 마치 
하나의 뭉치처럼 
느껴졌다 

각별해지는 것은 
이름을 묻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한 소설가가 여행을 주 활동으로 하는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꽃 검색 앱을 사용했다. 다양한 꽃들의 이름을 알고, 기억하려 애쓰는 모습이 방송에 나간 다음부터 이 꽃검색 앱은 많은 스마트폰 사용자들에게 인기를 끌게 되었다. 카메라처럼 꽃을 가까이에서 찍으면 자동으로 꽃의 이름을 검색해 주는 이 앱은 촬영만으로 꽃의 이름을 그 자리에서 바로 알 수 있다는 점이 소설가와 앱 사용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소설가는 최근 자신의 관심사로 ‘이름을 알아가는 재미’를 꼽았다. 전국 곳곳으로 여행하는 내내 작가는 꽃과 나무와 풀에 관심을 보였고, 그들의 이름을 궁금해 했다. 그러면서 ‘작가는 사물의 이름을 아는 자’라는 다른 작가의 말을 빌려 사물의 이름을 아는 것이 작가로서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사물의 이름을 아는 것은 글을 쓰는 사람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중요하고 선행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사물에 대해서 관심과 사랑을 갖게 되는 건 이름을 알기 때문이다. 이름을 아는 순간 사물은 달라 보인다. 이름을 알기 전의 사물과 이름을 안 후의 사물이 다른 의미가 된다. 사물의 이름을 알고 그 이름에 담긴 의미 또한 알고 나면 사물과 깊이 결부되는 현상이 생긴다. 이름을 아는 것 하나만으로 사물과 그 이름을 아는 자가 연결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각별해지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도 표현했으니 이름을 안다는 것은 어떤 대상과 내가 연결되고 각별해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면서 가장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시는 결국, 질문 ‘꽃은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답으로 ‘꽃’이라는 언어로 명명함으로써 존재가치가 부여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얼마 전 강연 초대로 만났던 한 노시인은 터미널에서 강연장으로 이동하는 내내 만난 모든 꽃들을 지나치지 않고 매만지며, 유심히 바라보고, 이름을 기억해냈다. 산책과 가벼운 등산을 하며 만나는 꽃들과 나무의 이름을 누군가에게 알려주길 좋아하는 나는 노시인의 그런 모습이 반갑기도 하고, 한편 ‘풀꽃’이라는 칭호가 이름 앞에 붙는 필연적인 이유가 시인의 삶의 태도와 성정에 있음을 깨달았다. 작고 여린 것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이름 알기를 몸소 실천해 보였다. 꽃을 매만지며, 이름을 부를 때마다 꽃과 시인이 마치 하나의 꽃 뭉치처럼 느껴졌다. 

지인들과 여름 끝자락에 울릉도를 찾았었다. 그곳에는 내가 이름을 알고 있는 꽃들이 반, 이름 모르는 꽃들이 반이었다. 울릉도의 가장 높은 성인봉을 오르며 그곳에만 자생하는 꽃들의 이름을 ‘꽃검색 앱’의 힘을 빌려 알게 되었다. 검색으로 꽃의 이름을 하나씩 알아가고, 동행했던 사람들과 긴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다. 새로운 이름 하나를 아는 것만으로 동행자들은 새로운 재미를 느꼈고, 여행의 끝에는 처음 보는 꽃을 마치 오래 키워오던 꽃처럼 반갑게 발견하게 되었다. 

최근 나온 김영삼 시집 <온다는 것>의 평론을 쓴 이홍섭 시인은 해설에서 “시의 언어가 지닌 묘한 힘 중의 하나가 자꾸만 ‘주인’을 호명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장 불꽃이 튀는 순간은 시를 쓰는 주체, 즉 시인 자신의 주인은 누구냐고 물을 때”라고 덧붙였다. 본질은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나는 이름을 묻는 것이 이 ‘주인 찾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긴다. 이름을 묻는 것이, 이름의 주인은 누구이며, 그 이름의 주인은 어떤 형상으로 존재하는지를 질문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각별해지는 것은 이름을 묻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불교신문3331호/2017년9월20일자] 

신효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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