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지 않았으니 욕설은 그대에게 돌아갔다”

“화내고 있는 사람에게 
똑같이 화를 내는 것은 
먼저 화낸 사람의 행동보다 
더 저속한 것이다 

화를 내는 사람에게 
분노를 돌려주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승리자이다”

화내는 마음을 한 번도
참아본 적이 없던 바라문도
분노에게 승리를 거두는 법을
처음으로 알게 돼  

바라문 바라도사와는 삭발을 하고 수행을 하는 스님들을 싫어했었다. 그는 아내 다닌사니가 부처님께 귀의한 후 생활 속에서 수시로 예배를 올리는 것조차 거슬려했다. 그는 아내에게 자신이 섬기는 바라문 수행자들 앞에서 예배문을 외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으나 그녀가 이를 거절하자 칼을 들고 협박하기도 했다. 아내의 예불소리가 너무나 듣기 싫었던 바라도사와는 이를 따지기 위해 부처님을 찾아갔다. 그리고 부처님께 무엇을 죽여야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잠을 편히 잘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명쾌하게 ‘화냄’을 죽여야 한다고 답해주셨다. 이 대답을 듣는 순간, 바라도사와는 깨달음을 얻었고, 부처님께 귀의하여 출가 수행자가 되었다. 얼마 후 바라도사와는 아라한과를 성취하였다. 하지만 바라도사와의 ‘변심’에 분노한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그의 동생과 그의 종족들이었다. 

부처님께 욕설을 퍼붓는 동생 

바라문으로서 자부심이 강했던 형이 부처님께 귀의하였을 뿐 아니라 삭발한 출가 수행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라도사와의 동생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다.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황당함에 넋을 놓고 있던 것도 잠시, 형을 부처님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한 동생은 부처님을 찾아갔다. 형보다 훨씬 성격이 급하고 거침이 없었던 그는 부처님을 뵙자마자 고래고래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작정을 하고 온 만큼 그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온갖 거친 말들을 따발총처럼 쏘아댔다. 

고함을 지르며 부처님을 욕하는 소리가 사원 가득 울려 퍼졌다. 스님들은 민망하여 어쩔 줄을 몰랐으나 정작 부처님은 평온한 얼굴 그대로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계실 뿐이었다. 참다못한 스님들이 나서서 바라도사와의 동생을 사원 밖으로 내쫓으려는 순간, 부처님께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그대의 집에 친구나 친척 등 손님들이 가끔씩 오는가?”

뜻밖의 질문을 받은 바라도사와의 동생은 잠시 욕설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선뜻 대답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은 부처님을 향해 내내 욕설을 퍼부었는데 그에게 질문을 하신 부처님의 목소리는 마치 안부를 묻는 것처럼 다정했다. 그는 도저히 부처님의 의도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대답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가 어떻게 나올지 지켜보고 있는 스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바라도사와의 동생은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가끔씩 손님들이 오십니다.” 

한풀 꺾인 목소리로 대답하는 바라도사와의 동생을 향해 부처님이 다시 물으셨다.

“손님들이 오셨을 때. 먹거나 마실 것을 대접하는가?”

“네, 대접합니다.”

바라문은 의아한 얼굴로 대답했다. 부처님께서 너무 뻔한 것을 물어보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는 그와 달리 부처님은 어느새 은은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그렇다면 바라문이여, 만약 손님들이 그대가 차려준 음식을 먹지 않는다면 남은 먹을 것들과 음료수는 누구의 것이 되겠는가?”

“그들이 먹고 마시지 않으면, 그것은 오롯이 저의 재산으로 남게 됩니다.”

“바라문이여, 너의 욕설도 마찬가지다. 그대는 나에게 하지 말아야 할 욕설을 심하게 했다. 하지만 나는 그대의 욕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대의 욕설은 나에게 이르지 않았으니 그대가 한 욕설은 그대에게 다시 돌아갔다.”

탁월한 비유에 오히려 귀의하고

부처님의 말씀이 끝난 순간, 바라도사와의 동생은 얼굴을 구겼다. 온갖 논쟁이 있을 것이라 여기고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으나 전혀 생각지 못한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자신이 여태껏 퍼부은 욕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그가 했던 욕은 그에게 되돌아갔다고 말씀하셨다. 매우 쉬운 비유였으나 바라도사와 동생의 얼굴에는 문득 의아한 기색이 떠올랐다. 

‘아무리 욕설을 받지 않는다 해도 들리지 않았을 리가 없다. 지금 내 귀도 이렇게 아픈데 들리는 것을 어떻게 듣지 않는단 말인가?’

그때 부처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어떤 사람은 욕하는 사람에게 욕으로 대응한다. 언쟁으로 달려드는 사람에게 같이 싸운다. 하지만 나는 그대와 욕설을 주고받지 않았고, 그대가 한 욕설은 나에게 이르지 않았다.”

욕설을 받지 않는 방법은 단순히 귀를 막고 듣지 않는 것이 아님을 지적하신 것이었다. 욕설을 욕설로 되돌려주는 대신 성내지 않고 분노하지 않은 채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욕설을 받지 않는 것이었다.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바라도사와의 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커다란 울림이 생겼다. 이 대화를 계기로 바라도사와의 동생 또한 삼보에 귀의하였고 형을 따라 출가 수행자의 길을 걸었다. 그는 얼마 후 아라한과를 성취하였다. 

바라도사와 형제가 삼보에 귀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이번에도 바라도사와 종족 출신의 바라문 한 명이 부처님께 따지기 위해 죽림정사를 찾아왔다. 씨근덕거리며 부처님을 찾아온 그는 험악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만약 이런 일이 처음이었다면 스님들도 놀라고 당황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부처님을 향한 분노로 똘똘 뭉쳐있던 바라도사와 형제가 결국엔 삼보에 귀의하였을 뿐 아니라 출가 수행자가 되어 아라한과를 성취한 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 귀로 직접 들었기 때문에 스님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처님을 향해 거친 말을 쏟아내며 사원을 시끄럽게 만드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스님들은 내심 이번에는 부처님의 입에서 어떤 법문이 나올 것이며, 어느 순간에 저 오만한 바라문이 제도될 것인가를 기대하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번에도 부처님은 아무런 대꾸도,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계셨다. 하고 싶은 욕설을 몽땅 쏟아낸 바라문은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되자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부처님을 향해 소리쳤다. 

“고타마여, 당신이 졌다!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당신이 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당신이 졌다’는 외침이 고요한 사원을 가득 채웠다. 부처님과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스님들은 그 순간에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한편 바라문은 한껏 승리에 도취한 척 했으나 속으로는 불안했다. 자신이 진짜로 부처님을 이긴 것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흔들리는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부처님께서 마침내 입을 열고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어리석고 멍청한 사람만이 거칠고 저질스런 욕설을 하고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승리는 그런 것이 아니다. 참아낼 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영웅이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내고 있는 사람에게 똑같이 화를 낸다. 이렇게 하는 행동은 먼저 화를 낸 사람의 행동보다 더 저속한 것이다. 화를 내는 사람에게 분노를 돌려주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승리자이다.”

또 한 명의 아라한이 탄생하다

부처님의 법문은 분기탱천했던 그의 머릿속에 화살처럼 내리꽂혔다. 화내는 마음을 한 번도 참아본 적이 없던 바라문은 분노에게 승리를 거두는 법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사실 모든 번뇌는 화내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던가. 그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처럼 말을 잃었다. 분노가 사라진 자리에는 어리석음에 대한 후회가 차올랐고 번뇌를 벗어나는 법을 알려주신 부처님에 대한 감사함이 솟구쳤다. 그리하여 그날 이후 교단에는 한 명의 제자가 늘었고, 얼마 후 또 한 분의 아라한이 탄생하였다. 

바라도사와 종족 출신들의 연이은 출가 소식은 바라문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바라문들은 부처님에게 반발하였고 일부러 논쟁을 벌이려고 부처님을 찾아오곤 했다. 그들 중 운이 좋은 이들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에 눈을 뜨기도 했으나 똑같은 법문을 듣고도 끝내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이들도 많았다. 이처럼 부처님께서 선택하신 중생제도의 길은 참으로 험난할 때가 많았다. 특히 교만함으로 무장한 채 작정을 하고 부처님을 비방하는 이들을 설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부처님께서는 바라문들이 일부러 걸어오는 논쟁을 피하지 않으셨다. 그들 중에도 제도할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기꺼이 모욕을 견뎌내신 부처님의 자비는 분노로 가득 찬 세상을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많은 울림을 준다. 

[불교신문3331호/2017년9월20일자] 

글 조민기  삽화 견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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