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시(詩) 캠프를 이병주문학관으로 정했을 때 나는 은근히 마음 설레었다. 유홍준 시인의 시에서 생명의 종말과 새로운 탄생으로 보았던 ‘북촌’이란 곳을 갈 수 있다는 것과 ‘다솔사’를 볼 수 있다는 은근한 기대 때문이었다. 함순례, 최형욱 시인의 강의도 좋았지만 까마귀가 금방 떼로 날 것 같은 한가하고 정겨운 북촌의 모습과 고요하고 경건한 마음을 갖게 했던 다솔사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다솔사 초입에는 몇 백 년이 된 듯한 은행나무 고목이 아직도 힘을 내 살아가고 있다. 견뎌내고 있다, 아니 그냥 담담히 다가오는 새로운 시간을 맞이했다고 할까? 오랜 세월 은행나무는 누군가에게 혹은 아무에게나 집이 돼주고 있었다. 동굴처럼 환히 열린 밑동의 커다란 구멍은 날선 비바람과 번개가 주고 간 상처에 두 사람이 들어가고도 남았다ㆍ 구멍 속으로 간간히 드나드는 다람쥐와 새들을 품어주고 있었고 그 속에서는 끊임없는 생명체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잉태하고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

은행나무가 품어낸 보시와 자비는 얼마만큼의 열매와 사랑으로 맺혀 떨어져 내린 걸까? 묵묵히 품어냈던 눈물은 얼마의 깊이로 쌓이다 흘러 넘쳤을까? 지금 가지 끝 푸른 잎과 열매들은 행여 부처님의 청정한 말씀으로 매달려 맺힌 것은 아닐까? 가만 은행나무의 가슴에 손을 대 그의 울음을 만져본다ㆍ 물기 어렸을 시간들을 토닥이며 흰 구름 몇 점 친구처럼 가져와 붙여준다. “힘들었겠구나!”

고목의 얇은 가지 하나로도 자리 잡지 못한 채 이리저리 번뇌에 쌓여 살아왔던 내 모습을 죄다 토설하며 다솔사 법당 안 적멸보궁 열반상 앞에 조용히 무릎 꿇었다. 돌아가는 길, 다솔사의 초입에서는 콩, 보리, 오이, 가지, 토란대 등을 팔았던 할머니의 빈 소쿠리 안에 이름 모를 새소리가 돈과 함께 아무렇게나 구르며 놀고 있었다. 하늘과 나무와 나는 어쩌면 맞닿아 있다. 우러러 나를 은행나무 풍경(風磬)으로 매달아놓고 흘깃, 바라다본다.

[불교신문3331호/2017년9월20일자] 

김성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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