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이란 땅에서 ‘지혜의 샘’ 찾는다

 

쓸수록 줄어드는 그릇의 
물 같은 것이 ‘복’이라면 

끝없이 솟아나는 샘물과 
같은 것이 금강경 ‘지혜’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란 어떤 것인가? 흔히 지식이 풍부한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도 하는데, 이 경우의 지혜는 불교에서 말한 지혜와 다르다. 해박한 지식이나 다양한 삶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도 불교에서는 그를 지혜롭다고 하지 않는다. 만약 팔만대장경을 다 외우면서도 깨닫지 못한 이가 있다면, 기억력이나 노력이 남다르다고 할 순 있지만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진 않는다. 뿐만 아니라 논리에 뛰어난 사람도 지혜롭다고 하지 않는다. 만약 경전의 내용을 다 외우면서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이 있다면, 영리한 사람인 건 분명하나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긴 어렵다. 어리석은 이는 부처님 말씀도 시비분별의 대상으로 삼지만, 지혜로운 이는 모든 것을 방편으로 삼아 자신과 남을 동시에 편안케 한다. 지식은 밖으로부터 받아들여 인식 세계에 채운 것이지만, 지혜는 텅 빈 마음에서 필요할 때마다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지식이란 엄격히 말해 과거에 속한다. 이미 과거에 많이 일어났던 일이었거나 또는 과거에 연구했던 결과들이다. 만약 교육이 오늘날처럼 지식 많이 암기하고 이해하는데 치우친다면, 그리고 그 성과를 시험이라는 제도를 통해 확인하는 것으로 대학진학이나 사회진출을 결정한다면, 뛰어난 지식인을 배출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그 지식 안에 속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지, 과거를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나는 미래는 지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경우도 많긴 하지만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더 많다. 그것을 보다 현명하게 해결하려면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지혜란 낯선 상황에 대해 직관적으로 분석하고 통합하여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당말(唐末)의 운문문언(雲門文偃)선사는 지혜로운 이의 삶을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즉 ‘나날이 다 좋은 날’이라고 표현했다. 만약 지식만 있는 사람이라면 나날이 다 좋을 수가 없다. 지식으로 풀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 당연히 싫어하거나 괴로워하게 되며, 또한 그 지식으로 인해 시비분별하고 다투는 일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지혜로운 이는 어떤 상황이건 가장 적절한 대응을 하기에 언제나 좋은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이것을 중도(中道)라고도 한다. 

불교의 수행 목적은 해탈에 있는데,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해탈이라고 한다. 괴로움에 이르게 하는 수많은 번뇌가 있지만 가장 근본이 되는 번뇌는 지혜 없는 어리석음(癡)이다. 어리석기에 과도한 탐욕(貪)을 일으키고,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기에 분노(瞋)에 휩싸인다. 만약 분노에 휩싸인 사람이라면 이미 자신을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어떤 이들은 그럴 경우 그 분노를 바라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자신이 어떤 상황을 감당할 수 없어서 분노에 휩싸인 것이기에, 분노를 바라봐서는 결코 그 분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지혜로운 이는 왜 화를 내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라고 조언한다. 조언대로 원인을 찾다보면 결국 자신과 마주하게 되고, 스스로 자신의 감정에 끌려가면서 분노에 휩싸이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 경우 이미 일어난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할 수는 없겠지만, 화를 낸 감정을 일어나기 전의 상태로 되돌릴 수는 있다. 이것이 지혜로운 이가 알려주는 해법이다. 하지만 이것을 이해했다고 해서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지혜로운 이는 애초에 분노에 휩싸이지 않는다. 

복은 좋은 언행을 한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다. 비유컨대 많은 노력으로 크고 작은 그릇에 물을 받아 놓은 것과 같다. 비록 그 물이 많다고 해도 쓰다보면 없어진다. 만약 복을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수단으로 쓰게 된다면 공덕이 되겠지만, 쓰는 재미에 빠지면 윤회를 되풀이 하게 된다. 

지혜란 마치 땅에서 솟구치는 샘물과 같은데, <금강경>의 가르침은 본성(本性)이라는 땅에서 지혜의 샘을 찾도록 도와준다. 쓸수록 줄어드는 그릇의 물과 같은 것이 복이라면, 끝없이 솟는 샘물과 같은 것이 <금강경>의 지혜이다. 복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도 지혜로는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복(福)과 지혜(智)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불교신문3330호/2017년9월16일자] 

송강스님 서울 개화사 주지 삽화 박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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