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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스님의 부처님 교화공원 이야기] ⑭살인마 앙굴리마라 제도, 부처님의 전도부촉살인마 앙굴리마라를 제자로 받아들이시다
  • 성일스님 화성 신흥사 주지
  • 승인 2017.09.1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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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굴리마라여, 나는 여기 이렇게 멈추어 있다.
너는 나를 해치려 하지만 나는 여기 이렇게
멈추어 있어도 마음이 평온하다”

“악의 갚음을 받았고, 바른 법을 들어 
청정한 지혜의 눈을 떳으며, 
참는 마음을 닦아 다시는 다투지 않을 것입니다” 

앙굴리마라 제도상.

앙굴리마라는 나쁜 스승을 만나 “1백 명의 사람을 죽여서 그 엄지손가락을 잘라 목걸이를 만들어 오면 법을 가르쳐 준다.”는 스승의 말에 속아 99명을 죽이고 100명을 채우려는데 마침 그의 어머니가 나타나 어머니를 죽이려 하는 것을 부처님께서 그곳에 나타나셔서 어리석은 앙굴리마라를 제도하시니 정법을 듣고 새 정신으로 돌아와 부처님께 귀의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부처님의 자비는 적이 없으므로 부처님을 죽이려 하던 살인마도 귀의하게 하였다.

 나는 멈추었다. 앙굴리마라여, 너도 멈추어라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밧티(사위국)에 들어가 밥을 빈 다음 성 밖에 있는 숲길을 지나다가 소치는 사람과 밭을 가는 농부들을 만났다. 그들은 길을 가는 부처님을 보자 가는 길을 만류했다.

“부처님, 그 길로 가시면 안 됩니다. 그 길에는 앙굴리마라라는 무서운 살인자가 있어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입니다. 사람을 죽인 다음 손가락을 잘라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 다닙니다. 제발 그 길로 가지 마십시오.”

이와 같이 거듭거듭 만류하였으나 부처님께서는 “내게는 두려움이라는 것이 없소.”라고 말씀하시면서 길을 떠났다. 얼마 안 가서 앙굴리마라가 갑자기 칼을 치켜들고 나타나 부처님께로 달려왔다. 부처님께서는 태연하게 걸어가셨다. 앙굴리마라는 있는 힘을 다해 뛰었으나 이상하게도 부처님께 가까이 다가설 수가 없었다.

“사문아, 거기 섰거라!” 하고 앙굴라마라가 소리쳤다. 부처님께서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앙굴리마라를 바라보셨다. 그는 부처님의 자비스럽고 위엄 있는 모습을 대하자 한 발짝도 떼어 놓을 수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의 살기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때 부처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앙굴리마라여, 나는 여기 이렇게 멈추어 있다. 너는 어리석어 무수한 인간의 생명을 해쳐 왔고 나를 해치려 하지만 나는 여기 이렇게 멈추어 있어도 마음이 평온하다. 너를 가엾이 여겨 여기에 왔다.”

이 말을 듣자 앙굴리마라는 문득 악몽에서 깨어나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마치 시원한 물줄기가 훨훨 타오르던 불길을 꺼버린 듯하였다. 그는 칼을 내던지고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부처님,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오늘부터 저를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지혜의 눈을 뜬 앙굴리마라

앙굴리마라는 본래 사밧티의 명문가 출신으로 매우 영리하여 장래가 촉망되던 청년이었다. 그의 원래 이름은 ‘남을 해치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아힘사카’였다. 총명한데다 외모도 수려한 아힘사카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그의 스승도 제자들 중에서 그를 가장 믿고 든든히 여겼다. 그런데 아힘사카를 절망에 빠뜨리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스승의 아내가 잘생긴 그에게 연정을 품고 아힘사카를 유혹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힘사카는 스승의 아내를 멀리하였고, 아힘사카에게 거절당하자 그녀는 남편인 아힘사카의 스승에게 아힘사카를 모함하였다. 분노가 치민 그의 스승은 아힘사카에게 “백명의 사람을 죽여서 엄지손가락을 잘라 목걸이를 만들어 오면 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하였다. 이에 스승의 말이라면 모든 것이 진실이라고 여겼던 순수한 청년 아힘사카는 스승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분별할 생각조차 하지못하고 스승이 시키는 대로 살인을 저질러 사밧티를 공포에 휩싸이게 하였다.

앙굴리마라의 이야기를 보면, 나쁜 스승의 삿된 가르침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며 사교(邪敎)의 폐해가 세상에서 가장 큰 죄악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부처님을 따라 기원정사에 가서 설법을 듣고 지혜의 눈을 뜨게 되었다. 이튿날 앙굴리마라는 발우를 들고 마을로 밥을 빌러 나갔다. 그가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고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가 밥을 빌기 위해 어느 집에 찾아갔는데, 그 집 부인이 해산하기 위해 산실에 들었다가 그가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놀란 끝에 해산을 못하고 말았다. 그 집 사람들에게 무서운 저주를 받은 앙굴리마라는 빈 발우를 들고 기원정사로 돌아와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께 도와주기를 호소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앙굴리마라여, 너는 곧 그 집에 가서 여인에게 ‘나는 이 세상에 난 뒤로 아직 산 목숨을 죽인 일이 없습니다. 이말이 사실이라면 당신은 편안히 해산할 것입니다.’라고 하여라.”

앙굴리마라는 놀라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 저는 아흔아홉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도(道)에 들어오기 전은 전생이다. 세상에 난 뒤라는 말은 도를 깨친 뒤를 말한다.”

그가 곧 그 집에 가서 부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했더니 그 집 부인이 편안히 해산을 했다.

부처님교화공원 준공식때 중앙승가대 스님들 전도부촉 시현 모습.

 참는 마음을 닦아 다시는 다투지 않겠나이다

그러나 그에게 원한이 있던 사람들은 돌과 몽둥이를 들고 나와 그를 치고 때렸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겨우 기원정사로 돌아온 그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 저는 원래는 남을 해치지 않는다는 뜻에서 아힘사카(不害)라는 이름을 가졌으면서 어리석은 탓으로 많은 생명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씻어도 씻기지 않는 피 묻은 손가락을 모았기 때문에 앙굴리마라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소나 말을 다루려면 채찍을 쓰고 코끼리를 길들이려면 갈고리를 씁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채찍도 갈고리도 쓰지 않으시고 흉악한 제 마음을 다스려 주셨습니다.

저는 오늘 악의 갚음을 받았고, 바른 법을 들어 청정한 지혜의 눈을 떴으며, 참는 마음을 닦아 다시는 다투지 않을 것입니다. 부처님, 저는 이제 살기도 원치 않고 죽기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때가 오기를 기다려 열반에 들고 싶을 뿐입니다.” 

부처님의 전도 부촉

“비구들이여,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그리고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라.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法)을 설하라. 사람들 중에는 마음에 더러움이 적은 자도 있거니와 법을 듣지 못한다면 그들도 악(惡)에 떨어지고 말리라. 법을 들으면 깨달을 것이 아닌가. 비구들이여, 나도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하여 우루벨라의 세나니가 마(將軍村)로 가리라.”

— 『상응부 경전 45 전도(傳道)의 선언(宣言)』

 비구들이여, 전도를 떠나라

보리수 아래서 지혜의 눈을 뜬 부처님은 하루도 쉬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지혜롭게 사는 길을 말씀해 주셨다. 부처님께서 설법하실 때마다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는 사람의 수는 점점 늘어갔다. 그리고 출가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부처님을 따르는 신도가 되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깨달은 다음 아라한(阿羅漢)의 지위에 오른 제자가 56명이 되었을 때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여러 수행자들이여, 나는 인간을 얽어매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완전히 자유롭게 되었다. 그대들도 인간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이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나아가라. 그러나 같은 길을 두 사람이 함께 가지는 말아라. 한결같이 훌륭한 법문을 중생들에게 들려주고 언제나 깨끗한 수행자의 생활을 하여라. 이 세상에는 때가 덜 묻은 사람도 많으니 그들이 훌륭한 법문을 듣게 되면 곧 깨달아 아라한의 지위에 오를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덧붙여 말씀하였다.

“수행자들이여, 출가한 사람으로서 법을 펼 때 남에게 존경받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남을 도울 줄 모르고 법에 의해 먹고 살려 하는 자는 법을 먹는 아귀와 같은자다. 또 너희들이 전하는 법을 듣고 사람들은 기뻐할 것이다. 그럴 때 교만해지기 쉽다. 사람들이 법을 듣고 기뻐하는 것을 보고 자기의 공덕처럼 생각하면 그는 벌써 법을 먹고 사는 아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법을 갉아먹고 사는 아귀가 되지 않도록 항상 겸손해야 한다.”

※ 위 내용은 불교시대사가 출간한 ‘붓다 콘서트’라는 책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불교신문3322호/2017년8월19일자] 

성일스님 화성 신흥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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