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비로워야 다른 사람도 자비로워집니다”

 

17년째 매주 경전 강의를 이어오고 있는 서울 반야사 주지 원욱스님.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헤쳐 왔지만 미소가 떠나는 날이 없다.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암 선고 후 ‘경전강의’ 매진 

법문하다 열반하겠다 ‘발원’ 

내가 청정하면 타인도 청정

“경전들의 마지막 귀결은 항상 보현행원입니다. 보현은 실천입니다. 알았다면 실천하라는 것으로 부처님이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원욱스님은 “일체중생이 불성이 있다는데, 우리에게 부처님 씨앗이 있다면 반드시 발현될 것”이라며 “지금까지 내 자신이 중요한 것으로 알았는데 자신을 더 사랑하려면 다른 사람을 똑같은 눈으로 보는 평등한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욱스님은 “문수(文殊) 보다는 보현(普賢)에게서 나오는 가치관”이라면서 “보현은 모든 사람들과 조화와 공존을 통해 평화롭게 살라는 가르침”이라고 말했다. “철학적으로 경전의 고매한 뜻만 찾기보다는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야사 신도들이 승보공양은 물론 다양한 기관에 기부와 보시를 자발적으로 하는 것도 보현을 실천하는 의미다.

원욱스님은 2001년 9ㆍ11 사태가 일어나던 날 목동에 왔다. 이듬해 1월부터 처음에는 목요일, 지금은 수요일에 경전 강의를 하고 있다. 3번째 1000일 기도 중이다. 17년째 강의를 이어오는 배경에는 스님 건강과 관련 있다. 20여 년 전 암 선고를 받으면서다. “솔직히 처음부터 포교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의사가 오래 살기 힘들다고 했을 때 다른데 돌아다니며 신세 지느니, 남들 모르게 혼자 속닥하게 지내면서 병원이나 다니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와 대학생 법회를 20여 년간 지도하며 포교사로 살아온 스님이 전법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어느 날 ‘세 명만 모이면 대중’이라는 기사를 읽은 것이 전환점이 됐다. “몸을 제대로 추수릴 수 없어 몇 십 명, 몇 백 명까지 모으지는 못해도 조금이나마 부처님께 빚을 갚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3명만 모이면 법문을 시작했다. 3명이 6명이 되고 30~40명이 됐다. 2002년 1월부터 정기적으로 법회와 강의를 했다. 

그렇지만 저녁이면 몰려오는 ‘통증’을 이겨내기 쉽지 않았다. 끙끙 앓으면서 간절하게 기도했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는 관세음보살님께 ‘제가 살아 숨 쉬는 날까지 법문을 하다 죽게 해 주세요’라고 발원했습니다.” 그렇게 신도들에게 <관세음보살보문품>을, 한성대 불교학생회 학생들에게 <금강경>을 강의하는 등 여러 경전을 살폈다. “그러고 나니 건강이 점차 좋아졌습니다. 관세음보살님에게 발원한 것이 성취됐으니 더 열심히 정진하겠다 다짐했습니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에 나오는 가르침이다. 원욱스님은 “많은 사람들이 몸에 병이 있다는 이야기만 들으면 무너진다”면서 “아팠던 시절 이야기를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 병이 들었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려”고 했다. “아마 (제가) 아프지 않고 건강했다면 이렇게 ‘성실모드’로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위기와 어려움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과 많은 신도들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두려움과 공포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원욱스님은 지금도 암으로 투병하던 그 때를 늘 자각한다. 그래야 겸손해지고 청정한 마음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목적지를 정하고 운전하지만 길이 막힐 때는 돌아갈까 하는 유혹이 생기지 않나요. 고난을 자각하면 쓸데없는 데 쓰는 에너지가 줄어듭니다.”

동학사 학인시절부터 지금까지 병이 심해져 집중 치료받은 1년 반을 빼고 일주일에 두 번 내지 여섯 번 법문(강의)을 했다. 출가 39년차이니 35년가량 법문을 계속해온 것이다. 반야사가 비록 조그맣고 아담하지만 신명 바쳐 불사했다고 스님은 회고했다. 불사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부채를 정리하는 대로 종단에 등록을 할 계획이다. “40여 년 부처님 은혜로 살았는데 당연하지요.”

원욱스님은 “어려움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라며 “나이 많은 세대들이 젊은이들에게 대안을 만들어주지 않고 꿈을 가지라는 말은 민망해서라도 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꼭해야 할 말이 있다면 “어렵고 힘든 일을 비껴가지 말라는 것”이라며 “장애나 어려움 속에서도 반드시 피는 꽃이 있고 성공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의 다른 점은 성실하게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학에 가고 싶어 세간의 쪽방에 살면서 공부한 경험을 들려줬다.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후원은 고사하고, 출가자가 무슨 세속 공부냐는 눈총을 받았다. 어려운 형편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며 학원을 다녔다. 라면집 주인이 “스님을 위해 오늘의 공양을 드립니다’”라며 건넨 공깃밥을 먹으며 공부했다. 버스 토큰이 떨어져 뒷자리에 앉은 아가씨가 내준 적도 있고, 군밤장수 아저씨가 건넨 군밤을 먹으며 요기를 때우기도 했다. 스님은 “만약 그때 ‘내가 세속에서 왜 이러고 있지. 산으로 돌아가야지’라고 마음먹었으면 현실과 타협하는 사람이 됐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학원 다닐 때 잊지 못하는 일과가 있다. 어느 날 서산에 사는 종수스님이 용산터미널에 나오라고 했다. 지고 온 걸망을 건네주면서 종수스님은 “집에 가서 열어보라”고 했다. 걸망 안에는 쌀을 비롯해 김치, 나물, 장아찌 등 열여섯 반찬이 들어 있었다. 그 때 일이 어제 같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 정성을 잊어선 안 되고, 열심히 잘 살자고 다짐했습니다. 그 마음으로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습니다. 힘이 됐습니다.” 

스님은 지금까지 강의한 것을 보완해 책으로 낼 계획이다. 강의 교안을 부록으로 붙여 다른 스님들이 강의할 때 참고하도록 하고 싶다는 것이다. 사찰의 규모를 더 키우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저의 건강이나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100명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신도들이 강의를 재미있게 듣고 보현보살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보람입니다.”

스님은 “일심청정(一心淸淨)이면 다심청정(多心淸淨)이라는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정진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청정한 상태여야, 즉 내가 자비로워야 다른 사람도 자비로워진다는 의미입니다. 부처님은 대자대비입니다. 부처님 제자로 자비심을 내야지요.”

원욱스님은 “자비심이 있어야 평등과 조화가 이뤄지는데 대부분 남 탓을 많이 한다”면서 “남 탓을 멈추는 것이 ‘일심청정다심청정’”이라고 강조했다. “내 마음이 청정해야 다른 사람도 청정하고, 내 마음이 청정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청정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청정은 나로부터 시작합니다. 자비심으로 내가 있는 이 자리 이 도량에서 세상의 모든 그릇된 것을 물리치고, 청정하게 중생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자비심입니다.”  

■ 특별한 강의 비법  

스님은 유홍준 교수에게 “2시간30분 강의하면 15번은 웃기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5번을 웃기지 못하면 실패한 강의”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느낀바 있어 두 시간 강의를 하면 30번은 웃음을 주려고 한다. 신도들이 웃으며 공부하니 변화가 느껴진다. 웃는 얼굴로 상호가 변하고 마음이 여유로워 진다. 일종의 웃음치료이다. 강의할 때 경전공부에 바로 들어가지 않는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하며 경전의 키워드를 접목시킨다. 일종의 ‘시사법문’이다. 8년간 <법회와 설법>에 집필한 경험이 도움이 된다. ‘A부터 F까지’ 강의 교안을 준비한다. 강의 앞머리 30분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는 입정하고 3분 내에 대중 분위기를 보고 결정한다. 

[불교신문3328호/2017년9월9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