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정치적 이슈를
시로 쓸 때 

회사와 정치권력에 의해 
생계를 위협받지 않을까 

늘 자기점검을 하는 일
내가 아는 이의 
옳은 일을 위해 
열심히 싸워주고 있지 
못하는 현재 일… 

어느 날 내가 저지른 나쁜 짓들의 목록을 생각해보았다. 이런 것들이었다. 길을 가다 개미를 밟은 일, 나비가 되려고 나무를 향해 기어가던 애벌레를 밟아 몸을 터지게 한 일, 풀잎을 꺾은 일, 꽃을 딴 일, 돌멩이를 함부로 옮긴 일, 도랑을 막아 물길을 틀어버린 일이었다.

나뭇가지가 내게 악수를 청하는 것인 줄도 모르고 피해서 다닌 일, 날아가는 새의 깃털을 세지 못한 일, 그늘을 공짜로 사용한 일, 곤충들의 행동을 무시한 일, 풀잎 문장을 읽지 못한 일, 꽃의 마음을 모른 일, 돌과 같이 뒹굴며 놀지 못한 일이었다. 나뭇가지에 앉은 눈이 겨울꽃인 줄도 모르고 함부로 털어버린 일, 물의 속도와 새의 방향과 그늘의 평수를 계산하지 못한 일, 그중에 가장 나쁜 짓은 저들의 이름을 시에 함부로 도용한 일이었다. 사람의 일에 사용한 일이었다.

어느 날 출근길에는 오늘 잘한 일의 목록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출근길에 보도블록에 나온 지렁이를 밟지 않은 일, 아직 영글지 않는 강아지풀 씨앗을 뽑지 않은 일, 버스를 기다리며 무심코 쥐똥나무 잎을 따지 않은 일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 서정마을에서 탄 임산부에게 솔선수범 자리를 양보하고 선채로 광화문까지 간 일, 가난한 작가회의 사무실 직원들에게 점심을 사기로 한 일, 친일문인을 기리는 문학상 심사와 수상 반대 운동하는 후배에게 잘 하고 있다고 응원문자를 보낸 일이었다.

너무 세게 튼 사무실 에어컨 스위치 운전 정지 버튼을 누른 일, 아무도 없는데 켜둔 회의실 전등을 끈 일, 간식으로 먹은 방울토마토를 싸가지고 갔던 비닐봉지를 버리지 않고, 상추쌈을 담아 재활용하려고 집에 가져온 일이었다. 이면지에 이런 목록들을 시로 쓰려고 끼적거리는, 이런 좀 사소하고 시시한 일들이었다. 나쁜 짓이나 잘한 짓이라는 것이 어떤 크고 특별한 짓이 아니고 그냥 일상 속에서 조금 생명을 생각하고 환경을 생각하고 사람을 생각해주는 것들이었다.

지난 주 아내와 ‘공범자들’이라는 다큐영화를 보면서 공영방송을 탄압하는 정치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판사와 검사의 이름을 일일이 언론에 거명하기로 했다는 멘트와, 오늘 저녁 텔레비전을 보다가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과 체면 때문에 촛불집회 등 사회적 쟁점에 대하여 알면서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웠다는 체육계 명사인 차범근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오늘은 내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과 체면 때문에 사람과 사회를 위해 용기 있는 짓을 접어두었던, 접어두고 있는 부끄러운 짓들의 목록을 생각해 보았다. 직장에서 후배를 해고하고 징계하려는 자에게 적극적으로 싸움을 걸지 못한 일이 생각났다. 후배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못한 일, 해고무효소송에서 지고도 증거를 분명히 조작한 비열한 사용자와 노동자 죽이기 전문 변호사와 정치적 판결을 한 고등법원과 대법원 판사의 이름을 적극적으로 공개하지 않은 일이 생각났다. 사회정치적 이슈를 시로 쓸 때 회사와 정치권력에 의해 생계를 위협받지 않을까 늘 자기점검을 하는 일, 내가 아는 이의 옳은 일을 위해 열심히 싸워주고 있지 못하는 현재 일이 부끄러운 짓들의 목록으로 들어왔다. 더 있을 것이다.

[불교신문3329호/2017년9월13일자] 
 

공광규 시인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