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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아픔 함께 하고 해결 나서다] ‘용산’에서 ‘세월호’까지
총무원을 방문한 용산참사 구속자 가족들을 위로하는 총무원장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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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원장 스님 8년은 당선 첫 행보에 모두 담겨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9년 11월4일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뜻 밖의’ 장소를 찾았다. 그 날은 취임식 하루 전 날이었다. 용산참사 현장을 찾은 것이다. 당시 용산은 우리 사회의 모순과 갈등이 집약된 곳이었다. 용산은 미군 기지의 평택 이전이 결정 된 후 강북 지역 최대 개발지로 부상했다. 광화문 등 시내로 진입하는 초입이며 한강을 끼고 있는데다 평지인 용산은 정부, 서울시, 민간 기업이 모두 나서 개발을 서두르는 황금광산과도 같았다. 개발을 위해서는 낡은 건물을 철거해야 했지만 그 곳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정당한 보상과 대책을 요구하며 오래 전부터 농성 중이었다. 개발 신화를 앞세운 이명박 정부에서 그들은 발전을 가로막는 작은 장애 정도로 취급됐다. 경찰력을 통한 강제 진압과 화염병 등 물리력으로 맞선 양측 대립은 결국 비극적 결말로 끝났다. 진압과정에서 화재로 인해 경찰관과 철거민이 사망하고 많은 사람이 다치는 참사가 벌어졌다. 용산은 개발을 앞세운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이에 맞서 정당한 보상과 합리적 절차를 요구하는 반대 세력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현장이었다. 

‘용산’에서 ‘세월호’까지

한국 사회는 용산을 둘러싸고 정확하게 반으로 나뉘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용산은 입에 올리는 것 조차 불경스런 금기였다. 이명박 정부를 찬성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거나 정부의 도움이 필요했던 사람들은 용산을 입에 올리기 조차 꺼려했다. 그만큼 정부는 단호하고 반대세력을 억압했다. 

입에 올리는 것조차 두려워했던 장소를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이라는 평을 받는 불교계 대표가 방문했다. 모두 충격을 받았다. 정부는 물론 용산 철거민들을 지지하던 진보 측 인사들 마저 충격을 받았다. 용산참사 현장은 개발과 보존, 건물주와 세입자, 발전과 공생 등 상반된 가치와 이를 둘러싼 좌우이념 논쟁, 도시화의 방향, 도심개발의 방식 등 온갖 문제가 도사리고 있어 제3자는 감히 발길조차 할 수 없는 아수라장이었다. 지키려는 자나 바꾸려는 자 모두 희생자를 낸 상태여서 살벌하기 짝이 없는 현장은 확실한 우군이 아니면 근접할 수도 접근을 허락하지도 않았다. 이해 당사자는 물론 정치 사회 언론 심지어 종교인들까지 모두 어느 한 쪽에 서서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마주 보고 달리는 폭주열차와 다름 없었다. 자승스님은 취임식 하루 전 날 그 폭주 열차 한 가운데를 찾아갔으니 그것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으면서 희생자와 유가족의 아픈 마음을 위무한다는 종교적 이유 하나만으로 찾아간 처음이자 유일한 방문객이었다. 

총무원장 스님의 이날 행보는 8년간 걸어갈 서막이었다. 스님은 이후 2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쌍용자동차 사태, 제주 해군기지 문제로 마을 공동체가 파괴된 강정마을,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 등 우리 사회 아픈 곳과 갈등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거나 관계자들을 보내 위로하고 따뜻하게 손을 잡았다. 

총무원장 스님은 내란음모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9년형을 받은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사면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보내기도 했다. 이념과 사상이 전혀 다른 죄인이라도 종교인의 자세로 보듬은 것이다. 이에 이석기 전 의원은 감사의 편지를 보내 눈길을 끌었다. 

이석기 전 의원이 총무원장 스님에게 보낸 편지.

끝까지 책임지는 종단

이날 용산으로 향했던 발걸음이 갖는 의미는 또 있다. 총무원장 스님의 그날 행보는 일회성이나 보여주기가 아니었다. 총무원장 스님은 한 번 맺은 인연을 끝까지 챙겼다. 용산참사 과정에서 구속된 사람들과 그 가족을 위해 총무원장 스님은 석방과 사면을 요청했다. 특히 이들의 사면을 위해 스님은 청와대에 수차례 요청을 했다. 가족들을 불러서는 위로하고 손을 잡았다. 이명박 정부는 이같은 원장 스님의 행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부처님오신날이나 크리스마스가 되면 과거 정부는 축하하는 의미에서 수감자들을 사면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총무원장 스님의 용산 관련자 사면 요구가 나오자 그 해 부처님오신날 사면 자체를 없애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무원장 스님은 줄기차게 사면을 요구했다. 심지어 신년 기자회견문에까지 용산 구속자 사면을 포함시켰다. 종단 역사상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사회 사건을 두고 총무원장 스님과 집행부가 이처럼 줄기차게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여론을 이끈 적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은 이명박 정부가 끝나갈 무렵 특별 사면 조치됐다. 석방된 이들은 가족들과 함께 총무원장 스님을 찾아 감사 인사를 드렸다.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언제나 가장 먼저 앞장서 사면을 위해 애써주신 총무원장 자승스님께 감사하다. 용산을 잊지 않고 약자들 편에 서서 힘써주신 덕분이다. 용산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없었더라면 사면도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나아가 용산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더 많이 사회 약자 편에서 활동하는 종교가 되기를 바란다며 더 많은 기대를 주문했다. 

불교가 나서 끝까지 챙기면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문제도 해결되는 것을 체험한 사람들이 남은 과제까지 부탁하는 것이다. 총무원장 스님은 그러나 철거민 뿐만 아니라 진압과정에서 희생된 경찰관과 그 가족까지 품에 안았다. 종교는 이념 정치 견해, 가해 피해자 구분을 떠나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보편적 인권을 견지한다. 그래서 양쪽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이 종교다. 하지만 종교가 불편부당한 입장을 견지할 때 비난하던 세상도 막상 자신들이 피해자 약자 위치에 섰을 때는 어김없이 종교를 찾는다. 이것이 종교가 특정 이념과 견해를 표방하는 정치와 다르고, 법률에 따라 잘잘못을 따져 벌을 주는 법관과 다르다. 총무원장 스님은 철거 과정에서 서로 입장이 달랐던 사람들을 모두 하나로 끌어안은 것이다. 

총무원장 스님의 사회를 향한 관심은 당신 개인의 특별한 행동에서 머물지 않고 종단 차원의 행정으로 구조화 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크다. 총무원장 스님은 용산참사 방문 이후 우리 종단이 사회문제에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관심을 갖는 방법을 강구하도록 지시했다. 그리하여 2010년 1월 불교사회연구소 설립이 종책 과제로 등장한다. 같은 해 말 설립 운영에 관한 령이 제정되고 2011년 2월 문을 열어 ‘한국사회의 종교 흐름과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주제로 종단의 사회적 역할을 어떻게 수행해갈지를 본격 연구한다. 이보다 앞서 2010년 6월 사회적 갈등 현안과 종단 내외의 주요 사안에 대해 불교적 대안을 마련하고 사회적 공동선을 실현하기 위해 화쟁위원회를 결성한다. 

사회노동위 출범…불교신뢰도 향상

화쟁위원회는 봉은사 직영사찰 추진을 둘러싼 종단 내부 갈등을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해결을 위해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활동은 사회 현장에서 펼쳐졌다. 4대강, 종교간 갈등, 한진중공업, 쌍용차,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등 한국사회를 분열에 빠트리고 사회면을 장식했던 현장을 빠짐없이 챙겼다. 사회를 향한 관심은 제34대 집행부 들어 다루는 영역이 더 넓어지고 전문화됐다. 노동위원회를 거쳐 사회노동위원회로 발전한 종단 기구를 통해 조직화 됐다. 노동위원회는 제34대 집행부에서 사회노동위원회로 확대 재편하여 약 20여 명에 이르는 실천위원 스님들을 위촉하여 사회 각 현장에서 고통받는 약자들과 함께 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갈등 현장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역할을 맡은 전담기구가 결성된 것은 종단 사에서 처음이며 획기적인 정책이었다. 비정규노동자, 인권, 빈곤, 성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문제 해법을 창출하고 종단의 대사회 활동을 강화하여 불교 근본인 부처님 가르침과 헌법에서 지향하는 차별없는 세상, 불교의 자비정신을 구현한다는 목적 아래 설립된 사회노동위원회는 거의 모든 사회 현장을 찾았다. 노동자 초청법회 및 템플스테이, 합동 천도재, 성소수자 초청 법회, 문화제 및 지원활동, 노동문제 정책토론회, 노동자 경전읽기 참선모임, 심리치유센터 운영, 장애인 차별철폐 연대 지원, 비정규직 사업장 노사문제해결 법회, 송파 세모녀 추모법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기도회, 백남기 농민 부검반대 오체투지 등 수없는 활동을 펼쳤다.   

[불교신문3328호/2017년9월9일자] 

박인탁 기자  parkintak@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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