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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임청각과 비운의 법흥사지 칠층전탑일제 아픔 간직한 우리 문화재
법흥사지 칠층전탑 왼편으로 고성 이씨 탑동파 종택이 보인다. 오른편에는 일제 강점기 세워진 중앙선 철로. 철로 너머 보이는 낙동강.

문 대통령 경축사서 임청각 언급
정부, 안동 일제 철길 철거 약속
“오는 2020년까지 복원 하겠다”

중앙선 일제 철길 부근에
법흥사지 칠층전탑도 자리

명칭 변경, 시멘트 보수 수난
지속적 열차 진동 훼손 우려
“복원 관심 적극적으로 가져야”

“임청각은 일제강점기 전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입니다. (중략) 그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는 그 집을 관통하도록 철도를 놓았습니다. 99칸 대저택이었던 임청각은 지금도 반토막이 난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를 하면서 “독립운동의 산실이자,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상류층의 도덕적 의무)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임청각을 언급했다. 경북 안동 임청각(보물 182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이었던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1858~1932) 선생의 생가이자 고성 이씨 가문의 종택이다. 석주 선생을 비롯해 9명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축사를 계기로 정부는 일제가 가설한 중앙선 철길을 2020년까지 걷어내고 임청각을 복원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일제의 민족정기 말살정책으로 전체 집터의 절반이 잘려나간 채 잊혀져가던 임청각이 사실상 국민들의 기억 속에 다시 떠오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임청각 바로 옆, 비운의 국보, 법흥사지 칠층전탑이 있다.

안동댐 진입로를 따라 임청각에서 불과 100m 정도 올라가면 법흥사지 칠층전탑이 나온다. 법흥사지 칠층전탑은 국내에 남아있는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으로 꼽힌다. 높이 17m, 기단 너비 7.75m로 1962년 국보 제16호로 지정됐다. 쉽게 볼 수 있는 석탑과 달리 벽돌을 쌓아 올린 전탑은 전국에 5기만 남아 있는데 그 중 현존하는 최고로 꼽히는 탑이 바로 이 법흥사지 칠층전탑이다.

탑이 자리한 일대에는 통일신라 시대 법흥사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데, 앞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어 사찰 풍광도 뛰어났을 것이라 추정된다. 그러나 실상은 법흥사가 있던 흔적조차 찾기 힘들뿐더러 법흥사지 칠층전탑은 국내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되고 큰 국보 문화재 임에도 제대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법흥사지 칠층전탑은 통일신대 시대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영가지>에 의하면 1487년까지만 해도 법당이 몇 남아있었다고 한다. 법흥사가 있어 이 지역은 법흥골, 또는 법흥이라 불렸는데 그 지명마저 일제 강점기를 지나며 뒤죽박죽 됐다. 일제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을 단행하며 법흥골을 다른 지역인 신세리에 편입시켰다. 때문에 법흥사지에 있는 전탑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법흥동 칠층전탑’이 아니라 ‘신세동 칠층전탑’이라 알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식민지 구역 개편에 유래와 역사 따윈 중요치 않았던 셈이다.

수난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일제는 같은 해 탑을 보수한다면서 법흥사지 칠층전탑 기단 부분을 콘크리트로 발랐다. 탑의 단층 평면기단 위에는 팔부신중상과 사천왕상을 새긴 판돌들이 면석을 이루고 있는데 고르게 분포돼지 않고 기단부 모양이 이상하게 형성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북면과 서면에 면석이 세워져 있고 남면 가운데는 계단이 설치돼 있는데 그 위쪽으로 경사지게 시멘트를 발라놔 원형이 크게 손상됐다. 당시 감실(불상을 모시는 방)에 안치됐던 불상은 1930년 망실됐다.

고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법흥사지 칠층전탑은 임청각과 마찬가지로 일제 강점기 개설된 중앙선 철도로 인해 현재까지도 훼손 우려 속에 아슬아슬 버티고 있다. 탑에서 불과 5m 떨어진 철도 위로 하루에도 수십번 오가는 열차의 진동을 견뎌내는 탑의 모습은 애처로움 마저 불러일으킬 정도다.

불교문화재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법흥사지 중심부로 판단되는 곳에 종택(현 사지내 자리한 법흥동 고성 이씨 종택)이 건립되면서 사지 관련 유구는 대부분 훼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전탑 코앞에 조성된 철도로 인해 칠층전탑이 진동에 꾸준히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철도의 진동과 소음이 계속해서 탑을 괴롭히고 있지만 공간이 협소하고 완벽한 복원이 가능할지 알 수 없어 현재 콘크리트를 없애는 등의 복원 공사는 하고 있지 않다. 보존처리를 위한 공사만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작가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임청각과 법흥사지 칠층전탑의 사연을 이렇게 언급했다. “안동 시내 동쪽을 감싸고 있는 낙동강 강둑으로는 일제 때 중앙선 철길이 놓였는데 그 철둑은 법흥동 칠층전탑을 아슬아슬하게 비켜가고, 그리고 낙동강을 유유히 내다보는 전망 좋은 산자락에 자리 잡은 고성 이씨 종택과 임청각 군자정은 철길로 인하여 행랑채를 잃어버렸고 지금도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지축이 흔들리는 진동과 소음을 감당하고 있으니 그 열악한 환경에서 나라의 국보와 보물이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안쓰럽기 짝이 없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임청각을 언급하면서 이 곳을 찾는 관광객의 발길도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정부 약속으로 임청각을 반토막 내고 법흥사지 칠층전탑을 괴롭히던 중앙선 철로가 사라지는 일도 머지 않았다.

불교문화재연구소장 제정스님은 “탑을 괴롭히던 철로 철거로 인해 임청각에 깃든 석주 이상룡 선생의 정신이 복원되고 탑이 조금이나 훼손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소식이지만 다른 전탑에 대한 관심과 환기도 필요하다”며 “법흥사지 칠층전탑 뿐 아니라 소외되고 왜곡된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는 문화재에 대한 조사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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