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 ‘함께 나누고 함께 꿈꾸며’ 걸어온 道伴의 길

종단 최초 재임 임기 8년 성만
종단 안정 바탕 밀린 과제 완수 

최초로 8년 재임 임기를 성만하는 등 종단 역사를 새로 쓴 제33, 34대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8년간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사회 갈등 중재자로 종교 역할을 다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도 각종 쇄신 종책을 다수 마련하는 업적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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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소감은 8년의 약속이었다. 한국 불교가 오늘 가야할 길이며 미래 청사진이었다. “소외된 이웃과 어려움을 나누고 함께 희망을 꿈꾸는 도반(道伴)이 되겠다.”

‘소외된 이웃과 어려움을 나누겠다’던 약속은 용산 평택 성주 진도 제주 밀양 안산, 그리고 서울까지… 우리 사회 아픔과 갈등이 있는 전국에서 목탁과 독경소리로 울려 퍼졌다. 

취임식 전날 당시 우리 사회의 갈등이 집약된 용산을 찾은 자승스님의 ‘예사롭지 않은’ 발걸음은 지난 50년 한국불교가 염원했던 순간이었다. 개혁과 정화, 집안 사정에 얽매여 돌아보지 못했던, 중생과 함께하는 순간이었다. 개발과 약자 보호라는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한 용산을 시작으로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휩쓸고 간 평택 쌍용자동차, 물 관리 이념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낙동강, 안보와 평화가 충돌하는 제주 강정기지, 부정과 부패 정부의 무능이 겹쳐 꽃다운 아이들이 희생된 참혹한 사고의 바다 진도 팽목항... 부처님께서 그러하셨 듯 중생이 있는 곳에 종단이 있었다. 

제33대, 34대 집행부 8년은 새 역사의 연속이었다. 오는 10월30일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면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통합종단 출범 이후 가장 오랜 재임기간을 기록한다. 8년 최장 기록이다. 첫 재임 총무원장으로 기록된다. 법에는 있지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영역이다. 평화적인 인수와 인계 역시 최초 기록이다. 1980년 총무원장 중심제로 종헌을 개정한 후, 그리고 1994년 개혁 종단이 구성된 후 4년 임기를 마치고 인수인계 후 평화롭게 떠난 첫 총무원장은 제32대 지관스님이었다. 2009년까지 30년간 그 이전 종정 중심제 시절까지 50여 년간 한 번도 쓰지 못 한 역사였다. 자승스님은 지관스님으로부터 종단을 평화롭게 인계 받았다. 그리고 종헌에 규정된 첫 재임 역사를 쓰고 제35대 집행부에 평화롭게 인계할 예정이다. 법에 정해진 대로 임기를 수행하고 평화롭게 인수 인계하는 이 하나만으로 33대, 34대 집행부는 한국불교사에서 제 임무를 다했다. 

안정적인 재임 8년은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2009년부터 8년간 종법령 제·개정 수가 144건에 이른다. 대부분 집행부가 주도했다. 그 역사를 한 마디로 규정하면 책임지는 종단, 미래를 여는 종단이다. 스님들의 건강과 노후를 책임지는 승려복지제도가 시행됐고, 종단 법 테두리를 벗어났던 여러 법인을 관리했으며, 젊은 층이 대거 거주하는 신도시에 거점을 확보했다. 그동안 소외됐던 해외사찰 지원을 위해 해외특별교구가 출범하고, 군포교 중심지 논산 육군훈련소에 3500여 명의 장병을 수용하는 새 법당을 건립했다. 필리핀 네팔 아프리카 등 해외에 한국불교가 나서 구호사업을 펼쳤다. 아프리카에는 농업학교가 들어섰다. 서울 조계사와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이 있는 총본산을 성역화 하는 불사에 착수했다. 조선 500년 억불 정책을 끊고 일제하 민족불교 정기를 지키기 위해 전국의 불자들이 건립했던 총본산은 불교 성지를 넘어 경복궁 인사동을 잇는 전통문화 사적지로 서울의 새얼굴로 탄생한다. 종단 안정이 체계적인 계획 수립과 장기적인 사업을 가능하게 했다. 

종단 위상이 높아지니 국가와 협상에서도 많은 성과를 거뒀다. 반세기 동안 종단과 전통사찰을 구속했던 각종 국가법령을 개정하고 시행령을 고쳤다. 대법원등기예규, 전통사찰 보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등 지난 수 십 년 간 정치권의 무관심과 공무원의 고압적 자세로 진척이 없던 난제가 대부분 풀렸다. 문화재분과에 종단인사가 대거 들어갔다.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문화재 정책 수립, 관리에서 소외됐던 역사가 지난 8년간 해소됐다. 불교문화유산보존센터가 건립되면 보존 처리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이 기대된다.

인재들도 챙겼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곳곳에서 국민과 사회를 위해 일하는 불자 인재들을 불렀다. 이들이 그간 쌓은 경험과 지식을 듣고 기억하고 종무행정에 반영했다. ‘불교포럼’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불자 인재들은 매월 총무원장 스님을 비롯한 교역직 스님, 재가종무원들과 국가와 민족 사회 종단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했다. 지난 8년간의 고민이 쌓여 종단의 재산으로 남았다.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문제가 생기면 대화의 장을 열었다. 미흡한 대의제를 보완하는 직접 민주주의 대중공의제를 과감히 도입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출재가가 함께 모여 오랫동안 논의하고 토의하니 종단 안정은 더 굳건해지고 해결방안은 저절로 열렸다. 

총무원장 스님은 매월 현장을 찾았다. 복지관 소방서 한부모가족센터 등 8년 동안 매월 자비나눔 행보를 이어갔다. 때로는 걷고 때로는 눈물의 현장을 찾고 천주교, 기독교 시설을 가리지 않고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면 가서 손을 잡고 함께 울고 웃었다. 사람들을 찾아가자 사람들이 불교를 찾기 시작했다. 세상은 이를 현대판 소도라 칭했다. 정부에 청할 일이 있으면 총무원장 스님을 찾았다. 스님은 따뜻하게 맞았다. 일회성 보여주기가 아니었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끝까지 챙겼다. 한 번 뱉은 말은 기필코 지켰다. 더 많은 사람들이 문을 두드렸다. 

종교 인종 성별 직위를 가리지 않고 따뜻이 끌어안았다. 다른 종교인들이 가장 젊은 총무원장 스님을 두 번 연달아 종교협의체 회장으로 밀었다. 스님은 다른 종교인들을 모셨다. 저절로 종교가 함께 손잡고 웃었다.

바깥을 향해서는 너그러운 웃음과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지만 우리 내부를 향한 목소리는 단호했다. “남을 탓하고 밖의 허물을 구실 삼기보다는 나 자신을 질책하고 안을 바로 세워야 할 때”라고 자성과 쇄신을 촉구했다. “중요한 것은 예산도 아니고 정치 문제도 아니고 인과(因果)의 법칙”이라며 고려 말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定慧) 결사’, 1947년 성철·청담스님 등이 주도한 ‘봉암사 결사’처럼 한국 불교 내부의 자성운동을 선언했다. 

△불교 본연의 모습을 확립하고 종교적 가르침을 세워 나가는 ‘수행 결사’ △민족문화를 바로 인식하고 스스로 보호해 나가는 ‘문화 결사’ △생명공존의 가치를 실현하고 환경을 보존하는 ‘생명 결사’ △사찰이 이웃과 사회와 함께 나누는 터전이 되도록 하는 ‘나눔 결사’ △종교 간 평화와 남북 및 세계평화를 위한 ‘평화 결사’ 등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나눔과 봉사의 불교’ ‘지혜와 자비를 구현하는 사부대중 공동체’ ‘지속적 종단 혁신’을 제34대 총무원 집행부가 추진할 3대 목표로 제시했다. 그리고 8년 내내 이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했다. 환호하는 사람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시끄럽기도 했다. 역사를 쓰는데 흠이 없고 잡음이 없겠는가? 그러나 우리 종단이 여태껏 단 한 번도 쓰지 못한 새로운 역사를 장식한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 종단은 이제 제 궤도에 올랐다. 어느 누구도 되돌리지 못할 굳건한 종단을 세웠다. 그리고 우리가 가야할 길을 밝혔다. 불교신문이 지난 8년의 기록을 남기는 이유다.  

[불교신문3328호/2017년9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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