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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용성진종조사 ] <32>앞은 무엇이고 뒤는 무엇인가③
  • 글 신지견 그림 배종훈
  • 승인 2017.09.08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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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사람은 나무를 하다 

산삼을 캔다고 

해를 넘기자 

큰 ‘노다지를 만났다. 

사람들이 이 재미로 

금광에 손을 대는지 모르지만

선불교를 포교하는 데 자금이야 

다소 필요하기도 했지만 

많은 양의 금이 

무슨 필요냐 싶은 생각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나라 형편을 생각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왜놈들이 합방 전에는 

조선불교계에 회유와 

포섭으로 나오더니 

합방 후에는 … 

평안도와 함경도는 세계열강의 ‘노다지’ 금광이었다. 연간 수익률이 300%에 이르렀다. 용성은 그 해(1916) 시자로 있던 스님에게 대각교당을 맡겨놓고 함경도 북청으로 갔다. 북청은 운산이나 은산, 종성, 경성처럼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구열강이 광물자원 채굴권을 놓고 벌이는 각축전 밖에 있었다. 

북청 출신 이용익은 젊은 시절 물장수로, 보부상으로 별 볼 일없이 떠돌다 금맥을 발굴해 떼 부자가 된 사람이었다. 어느 권력자가 쇳가루 싫어한 놈 봤나? 썩은 냄새 팍팍 풍기는 대한제국, 이용익은 민씨 일가를 상대로 쇳가루를 뿌려 광무국이 설치되자 함경도광무감리가 되어 그 지역 광산을 관리했다. 

하나 용성이 북청으로 갔을 때는 대한제국과 이용익이 모두 사라진 뒤였고, 강홍도가 북청군수로 있었다. 강홍도는 불교신도로 용성선사를 매우 존경했다. 강홍도의 주선으로 현지에 와서 이야기를 들으니, 어찌 보면 ‘땡추’도 같고, 날치꾼도 같은데, 주로 산에서만 지내는 떨꺼둥이와 별 다른 것 없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그 자가 왜놈이라면 거두절미, 아락바락 그 자리에서 두들겨 패 반 죽여 놓는 딱장대라는 것이었다.

그 사람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범도(範道)라고 했다. 범도는 용성이 수행 열이 한참 맹렬하게 타올랐을 때, 공공혜에 이르신 무융대사와의 인연으로 금강산을 드나들면서 신계사에서 만난 수좌였다. 짙은 눈썹에 눈 꼬리가 약간 올라가, 생긴 값 하겠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그는 지담(智潭  止潭)대사 상좌였고, 조선불교가 일본화 되어가는 것을 으등으등 몸태질도 반항한 수좌였다. 그에게 일본놈은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견련의 원수였다. 그 점이 마음에 들어 서로 터놓고 지냈는데, 그가 뒷날 환속해 북청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름을 범도(範圖)로 고치고 금광을 운영한다는 말도 있고, 금광에서 금괴를 훔쳐 독립자금으로 썼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북청에 도착한 용성은 범도를 수소문 하면서 대덕산 학린사에 머물렀다. 산세를 보니 황수원호수 위에 마을이 있었다. 대부분의 지층이 규석층에서 광층상(鑛層狀)을 이루며 암갈색이나 흑적색을 띈 바위들이 도드라져 보였다. 어떤 것은 육각판상(strontianite)을 형성해 불그스름한 보랏빛 광택이 나기도 했는데, 그곳에 재래식 광산이 있었다. 용성은 강홍도의 도움으로 그 광산을 인수했다.

현지 인부를 고용해 금을 캐보았다. 처음에는 벌흙을 파내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차츰 금돌이 나오면서 ‘먹을알(鑛脈)’을 발견, 소리 소문 없이 노다지를 만났다. 용성은 캐낸 금의 일부만 제련소로 보내 괴를 만들어 운영자금으로 쓰면서, 앞으로 일본세력을 몰아내자면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여겨 대부분의 광석을 차곡차곡 비축해 나갔다.

그 무렵 수소문을 한 범도가 찾아왔다. 그는 이름 앞에 속성인 홍씨 성을 붙여 홍범도로 불렀다.

“어라! 이 사람이 누군가?”

대번 용성을 알아보았다.

“어허허허…!”

용성은 너털웃음으로 대답했다.

“아니 부처가 되었다고 금강산까지 소문이 자자한 대선사가 금광은 웬 금광이오?”

“그 이야기를 하자면 길구만….”

“자 자, 그런 이야기는 차분히 하기로 하고 우선 우리 집으로 갑시다.”

그는 북청면 죽평리에서 살았다. 그가 죽평리로 들어온 것은 처가가 그곳이었기 때문이라고 했고, 아내와 아이까지 거느린 가장이었다. 범도의 아내는 금강산 한 암자의 비구니 스님이었다는 소문도 있고, 북청으로 들어와 새로 장가를 갔다는 말도 있었으나, 그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으므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었다.

“홍 거사가 금광을 한다는 말이 경성까지 자자하드만, 채굴은 해봤소?”

용성은 일단 범도가 머리를 길렀으므로 ‘거사’로 호칭했다.

“금을 캐본 일은 없고, 유인석 의병활동을 지원하다 왜놈들과 전투가 벌어져 김수협 동지는 전사하고, 나는 황해도 연안에 있는 금광으로 피신했었소. 왜놈이 운영하는 금광이라 신분을 숨기고 노동자로 일하다 왜놈군사 세 놈을 때려 없애고, 탄약과 금괴를 모두 빼내 군자금으로 쓴 일이 있는데, 그 이야기가 와전된 것 같소이다.”

“그 뒤로 북청으로 와 가정을 일구었구먼?”

“허허! 무슨 말씀을…, 내 인생은 금강산 산문 밖을 나서면서부터 짓속이 꽹매기 속이었소. 기러기 한평생, 등곱쟁이 허리 펼 새 없다더니, 태산을 넘으면 평지가 아니라 더더욱 험산이었소. 원산에서 까리낮도둑을 만나 안사람을 빼앗겼는가 하면, 다시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희양 덕패장터에서 감돌이, 베돌이, 악돌이, 기문둔갑까지 별의별 재주를 다 갖춘 포수를 만났소. 그 포수를 따라다니다가 창법, 검법을 익혔고, 낭림험산 골짜기에서 곰을 잡으면 웅담, 멧돼지를 잡으면 쓸개를 먹고 호랑이를 고양이 잡듯 하는 무술을 익혔지요.”

“부처가 되어야 할 사람이 신발을 한참 잘못 신었구먼.”

융성은 그날 범도 집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범도도 용성선사가 율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맨 푸성귀요리였다. 가지회, 겨자채, 표고조림, 깨보숭이, 멧두릅나물, 게목나물, 버섯누름적, 화양누르미. 근대나물, 얼갈이김치, 참죽나물, 호박순지짐이, 온갖 푸성귀로 상이 가득했다.

“허! 고종황제가 이런 수라상을 받아 보았겠나?”

“내 생각 같아서는 구룡포 학유정으로 내려가 닭 한 마리 푹 삶아놓고 백주나 주거니 잦거니 하면서 울리는 폭포소리를 풍류로 삼고 싶으나 천생 토끼풀만 먹는 대선사님이라 속이 씁쓸하구만….”

“그런 거 안 먹어도 먹을 걸로 할 테니, 멋스러운 곳이 있으면 길 안내나 하시구려.”

“구경할 곳 많지…. 성대면에 가면 성대금강팔경, 속후면 속후팔경 말고도 북청은 불교가 번성해 광제사, 대인사…, 스물세 개의 사찰이 있소. 그곳만 돌아보려 해도 두어 달은 걸릴 터인즉 시간이나 내보시구려.”

식사가 끝난 후 용성이 물었다.

“전에 이곳 후치령에서 의병을 일으켰단 말을 들었소?”

“참! 내…, 아까 내가 살아온 게 짓속이 꽹매기 속이었다하지 않았소? 자랑이라 할 건 없으나, 정미의병이 일어난 후 차도선, 태양욱, 송상봉, 허근 동지들과 함경도 포수, 또 힘 좀 쓴다는 젊은이들을 700여 명 모아 의병이라 하여 함흥, 북청, 갑산 일대의 일본 수비대를 궤멸시키고, 이원, 단천, 혜산 등에서 서른일곱 차례에 걸친 전투에서 승리했으나 내 아내가 체포되어 처형당한 아픔을 맛보았소이다.”

“아이고 이런…!”

“팔자가 불송곳으로 태어났으니 당연한 일이지 뭐.” 

“그래서 북청에 주저앉았소?”

“팔자 탓이라 하지 않았소? 일본놈이라면 눈에 보이는 족족 때려죽이지 못해 한이 맺혔는데 주저앉다니? 갑산, 무산, 종성에서 전투를 벌이다 아무래도 지속적 무장투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린(吉林)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가 거기서 재충전을 해, 차도선, 김택룡, 홍사현 등 여러 동지를 모아 연해주로 침입해온 왜놈들을 훈춘지부 독립군을 이끄는 조동희 선생 지원을 받아 전투를 벌여 승리로 이끌었소이다.”

조동희는 은엽의 삼촌이었다.

“그러고 이리로 오셨소?”

“말을 하자면 그런 셈이지.”

“앞으로 계획은 있소?”

“있고말고…, 내가 배운 것이 포수질이라 함경도 이쪽 포수들을 다 모을 판이오. 포수도 등급이 있어서 맹수 사냥꾼은 꿩이나 노루, 토끼 그런 것은 돌아보지도 않소. 그런 하찮은 짐승 잡는 자는 포수로 쳐주지도 않지. 맹수라면 호랑이, 곰, 멧돼지를 말하는데, 이런 걸 잡는 포수라야 산을 제대로 타지. 함경도에 내가 아는 맹수 사냥꾼이 꽤 있소. 그들 하는 일이 뭐겠소? 총 쏘아 멧돼지나 호랑이 잡는 것이 일이라 날개를 단 듯 산을 타…, 그들을 모아 독립군으로 조직해 일본놈 사냥에 나설 판이구먼.”

“그런 일을 하자면 자금도 좀 들어가겠구먼?”

“없어도 그만이고 있어도 그만이지만, 있으면 아무래도 좀 부드럽지.”

용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학린사까지 데려다 줘 차를 한 잔 더 마시고 헤어졌다. 

되는 사람은 나무를 하다 산삼을 캔다고, 해를 넘기자 큰 먹을알(노다지)을 만났다. 사람들이 이 재미로 금광에 손을 대는지 모르지만, 출가사문으로 선불교를 포교하는 데 자금이야 다소 필요하기도 했지만, 많은 양의 금이 무슨 필요냐 싶은 생각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나라 형편을 생각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왜놈들이 합방 전에는 조선불교계에 회유와 포섭으로 나오더니, 합방 후에는 사찰령으로 통제와 간섭이 지나쳐 선불교가 대처육식으로 대중화 되어갔다.

대처육식! 이것은 교리 상 파계일 뿐 아니라 사찰의 재산 손실, 나아가 사찰 공동체 파괴, 이거야말로 미래 불교의 모가지를 비트는 행위였다. 일반 사람들도 생각이 조금만 넓으면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독립을 외치며 만주로, 상하이로, 러시아로, 미국으로 가 투쟁을 벌이는데, 일본에 유학까지 갖다온 중이라는 자들이 사찰을 음굴(淫窟)로 만드는 것, 이것만으로도 자주독립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불교신문3328호/2017년9월9일자] 
 

글 신지견 그림 배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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